서석대> 眉巖과 전주부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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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眉巖과 전주부성길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3. 08.16(수) 15:25
최도철 국장
삼례에서 사는 지인의 부음에 조문하고 내려오는 길에 일행들과 함께 전주에 들렀다. 누 천년의 고도 전주는 늘 그랬듯 시간여행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용비어천가’의 설화가 담긴 오목대·이목대와 경기전, 전라감영…. 조선 왕조의 본향 전주의 고건축물에 스며있는 역사의 주름을 대할 때마다, 그 시간의 깊이와 넓이에 경탄이 절로 나온다.

이번 시간여행은 전주부성길로 잡았다. 부성길은 조선 선조 4년, 전라감사로 임용된 문신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이 이틀 여정으로 걸었던 길이다. 그해 유희춘의 ‘미암일기(眉巖日記)’에서 시작된 부성길이 4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진 것이다.

알려진 대로 보물 제260호 미암일기는 유희춘이 사화에 연루돼 귀양살이를 하다가 해배되어 재입각할 때인 1567년부터 죽을 때까지 11년에 걸쳐 매일 썼던 일기다.

미암일기는 나중 조선왕조실록의 사료가 된다. 임진왜란으로 1592년 이전의 ‘승정원일기’가 모두 불타 없어져 ‘선조실록’을 새로 편찬할 때, 이이의 ‘석담일기’와 ‘경연일기’, 기대승의 ‘논사록’과 함께 기초사료가 된 것이 이 일기다.

유희춘은 1571년 3월 13일 선조께 절을 하고 전라감영으로 출발한다. 전주에 다다른 미암은 풍남문을 거쳐 경기전 진전에 들러 태조 어진 앞에 다시 배례함으로 봉직을 시작한다.

유희춘은 이어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의 전설을 품은 풍패지관, 전주객사로 향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객리단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객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이튿날 전주향교를 찾아 문묘의 공자 신위에 참배하고 감영으로 향한다.

시간을 거슬러 유희춘이 걸었던 부성길을 따라 느릿느릿 걷노라니 전각의 기둥 한 주, 담벼락의 기왓장 한 장에도 천년의 역사와 내력이 오롯이 담겨있는 듯 했다.

전주에서 돌아오는 길. 몇해 전 담양의 미암박물관에서 봤던 유물들과, 박물관 관장의 품위있고 해박한 해설을 떠올리며 지인들과 유희춘에 관한 이야기를 더 했다.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일재 이항, 죽천 박광전 등과 함께 호남 5현으로 불리는 미암은 해남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표해록’을 남긴 금남 최부(崔溥)의 딸이다. 면앙정 송순의 중매로 혼인한 부인 송덕봉도 대단한 문재이다.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와 함께 조선 4대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송덕봉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문집인 ‘덕봉집’을 남겼다.

발길이 닿는다면 미암박물관에 들르시길 권한다. 목판집, 일기, 여러가지 고문서와 함께 미암이 탔던 가마, 신발 등 방대한 유물이 그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펴내면서 서문에 적은 글이다. 우리 문화 유산들을 하나라도 더 보고, 알고, 느끼고, 전하는 것은 결코 그 의미가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