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서석대>함무라비 법전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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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서석대>함무라비 법전의 교훈
박간재 전남취재부장
  • 입력 : 2023. 08.21(월) 09:22
박간재 전남취재부장
‘1.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2. 사람을 다치게 한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 3. 강도 짓을 한 자는 그 집의 노비가 된다.’

학창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배웠던 ‘고조선 8조(금)법’ 중 일부다. 신라 최치원이 쓴 ‘양위표(讓位表)’에도 고조선 8개 법을 의미하는 팔조지교(八條之敎)를 이어받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도 등장한다. 8조법 자체가 한반도 국가들이 오랜 법치 문명국가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자부심의 근원으로 여겼던 조항인가 보다.

서양에도 비슷한 법률이 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잘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이다. 기원전 1780년에 새겼으니 3800년 전의 법률인 셈이다.

바빌로니아의 국신(國神) 마르둑의 신전(바빌론)에 세워졌으며 섬록암 비석에 새겼다. 282개 판례법에는 경제관련 규정(가격·관세·무역·통상)·가족법(혼인·이혼)·형사법(폭행·절도)·민법(노예제·채무)이 포함돼 있다. 이 중 혼인, 이혼 관련 판례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결혼과 이혼인 듯 싶다.

이 법전은 한 국가를 넘어선 광범한 지역에 적용하며 셈족과 수메르인의 전통과 민족을 통합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함무라비 법전은 가족의 유대나 지역적 책임, 신판(神判) 재판,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등 원시적 잔재로 지적되는 부분도 있지만 부족적 관습을 넘어 혈족간 집단적·사적 복수, 약탈혼 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조항 덕택에 평화로움 속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그 법이 없었다면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까. 눈을 다친 아이를 보고 부모 형제가 가해자를 가만 뒀을까. 아마도 폭력을 넘어 살인, 가족간, 부족간 전쟁으로까지 치달았을 지도 모른다. 이 조항 덕택에 사건이 확대되지 않았으며 가해자의 눈만 다치게 하는 수준으로 끝났으리라.

함무라비 법전은 1901년 프랑스 동양학자 장 뱅상 셰유가 수사에서 발견한 비석으로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최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농촌융복합산업 선진지 취재를 다녀왔다. 프랑스 취재 중 짬을 내 파리 루브르 박물관 투어를 했다. ‘함무라비 법전’이 보고 싶어서였다. 오래 전 함무라비 법전이 1층 앞쪽, 평범한 바닥에 세워져 있다는 얘기를 듣고 소름이 돋은 적 있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배치하지 않았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2m 높이의 비석을 마주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새까만 비석에 촘촘히 새겨넣은 글씨가 서릿발 처럼 강렬하게 느껴졌다.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신상필벌 하라는 불호령을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귀국해보니 국내 정치판도는 목불인견이다. 어느 누구하나 봉합에는 관심이 없고 둘로 쪼개기에 바쁜 모습들이다. 그 흔한 유머도 없다. ‘기울어진 법의 잣대’는 오히려 4000년 함무라비 법전 당시 때보다 더 후퇴하는 듯 하다. 이를 어찌해야 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