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가거도 투어>"외로운 섬, 행복의 섬 신안 가거도로로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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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가거도 투어>"외로운 섬, 행복의 섬 신안 가거도로로 떠나요"
양영훈·여행작가·여행사진가·(사)한국여행작가협회 전 회장
명승지 섬등반도 최고 절경
독실산 오르면 한라산 조망
교통수단 불편…도보 시도를
갯바위 등지서 낚시 해볼만
  • 입력 : 2023. 09.17(일) 18:18
2섬등반도 아래 항리마을 전경
가거도 섬등반도
대한민국 최서남단 끝섬, 중국 땅의 닭울음소리가 들리는 섬. 절해고도(絶海孤島) 가거도를 처음 찾아간 때는 가을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지난 2000년 어느 늦가을이었다. ‘너무 멀고 험해서/오히려 바다 같지 않는 거기/있는지조차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으로 시작되는 시 ‘가거도’가 나를 그 머나먼 섬으로 이끌었다. 고 조태일(1941~1999) 시인은 1982년 동료 문인들과 함께 가거도를 다녀오고 나서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시인이 다녀온 뒤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거도는 여전히 멀고 외로운 섬이다.

●국가명승 지정 절경 중 절경 섬등반도

처음 찾은 가거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야성미 넘치는 자연풍광이었다. 독실산, 회룡산·장군봉, 돛단바위·기둥바위, 섬등반도·망부석, 구곡의앵화·빈지암, 소등의일출·망향바위, 남문·해상터널, 구굴도·칼바위 등 가거도 8경은 외딴 섬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정식 유람선이 없는 가거도의 해안절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낚싯배나 어선을 빌려 타야 된다.

가거도 대표 자연풍광은 지난 2020년 국가명승 제117호로 지정된 섬등반도가 첫손에 꼽힌다. 이 작은 반도는 천혜의 바다 전망대다. 칼등처럼 좁은 능선에 올라서면 가거도항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회룡산과 섬등반도 사이 가거도 서쪽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도 조망이 상쾌하고 바람이 시원하다.

섬등반도에서 시선을 북쪽으로 돌리면 아득한 벼랑 위에 위태롭게 올라앉은 항리마을의 민가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저 멀리 바다 위에는 ‘구굴도(국흘도) 바다새류 번식지’(천연기념물)가 떠 있다. 구름이나 해무가 낮게 깔린 날만 아니면 사시사철 짙푸른 원시림에 뒤덮인 독실산 정상(571m·정상 표지석에는 639m) 부근까지 올려다 보인다. 섬등반도는 산책하듯 걷기에 좋다.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초원길을 걷노라면 알프스 산자락이나 대관령 어느 목장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원시적 자연미 물씬 풍기는 독실산

독실산은 섬등반도와 함께 가거도 2대 필수 경유지다. 가거도까지 가서 섬등반도와 독실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가거도 여행을 안 한 거나 다름없다. 한라산이 곧 제주도이고 성인봉이 울릉도인 것처럼 독실산은 가거도 그 자체다. 독실산이 끝나는 곳에 바닷물이 찰랑거리고 파도가 부딪치는 갯바위에서 바로 독실산이 시작된다.

독실산 정상에 오르기는 수월하다. 국가보안시설이 설치된 정상 바로 아래까지 시멘트포장도로가 개설돼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 대부분은 민박집을 타고 손쉽게 독실산 정상에 오른다. 독실산은 숲이 좋아 꼭 한번쯤은 걸어서 올라가거나 내려와봐야 된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때죽나무, 구실잣밤나무, 굴거리나무, 참식나무 등이 들어찬 독실산 상록수림은 원시적 자연미를 만끽할 수 있다. 해무나 구름이 뒤덮이면 신비감마저 풍긴다. 날씨 쾌청한 날 수평선에 아스라이 떠 있는 제주도와 한라산도 보인다.

현재 7개 구간으로 이뤄진 가거도 탐방로 가운데 4구간(독실산 정상~가거도등대)과 7구간(항리마을~독실산 정상)이 도보로만 이용 가능한 독실산 등산로다. 4·7·6구간(가거도등대~항리마을)을 순서대로 걸으면 환상적인 독실산 숲길 탐방코스가 완성된다.

독실산 자락에서 가장 흔한 건 후박나무다. 가거도 주민들에게 소득을 안겨주는 고마운 나무다. 후박나무 껍질, 즉 후박피는 건위(健胃), 강장(强壯)에 효험이 있는 한약재다. 말린 후박피를 끓여 보리차처럼 마시면 호흡기질환이나 소화불량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현재 가거도 후박피 생산량은 우리나라 전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가거도를 제대로 여행하고 싶다면?

가거도에는 택시 같은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 지난해부터 공영버스 운행이 시작됐지만 주민들만 이용할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단, 이용하는 주민들이 있으면 관광객도 동승할 수는 있다.

현실적으로 가거도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튼튼한 두 다리와 민박의 소형 트럭이 유일한 교통수단인 셈이다. 가거도 세 마을, 즉 가거도항이 있는 1구(대리), 섬등반도를 품은 2구(항리), 등대 가는 길목 3구(대풍리) 마을과 마을 사이를 왕래하기가 어렵다. 가거도 관광 활성화를 위해 시급한 게 바로 섬 내부 교통편의 확충이다.

일정과 체력의 여유가 있다면 걸어서 가거도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칠 때 미처 보지 못한 풍경과 생명체가 종종 눈에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여행자의 감성은 샘처럼 솟아나고 여행의 추억은 더 깊고 넓어지게 마련이다.

가거도 맨 북쪽 해안에는 가거도 등대가 있다. 해발 84m 산등성이에 올라앉은 이 등대는 1907년 12월 불을 처음 밝혔다. 이곳 등대의 포토존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등대 앞 바다에는 무인도인 구굴도가 떠 있다. 슴새, 바다제비 등 해조류가 날아들어 짝짓고 둥지 틀어 알을 낳고 번식하는 곳이다. 등대나 구굴도 주변 갯바위, 무인도 등지 대물을 꿈꾸며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을 볼 수 있다. 돌돔이나 감성돔 같은 고급어종이 대상어다. 하지만 가거도에서 배타고 갯바위나 무인도까지 멀리 가지 않아도 짜릿한 손맛을 볼 수 있다. 마을 근처 선착장에서 대나
3가거도 등대
무 낚싯대만 드리워도 볼락, 우럭, 쥐노래미 등이 곧잘 걸려든다.

가거도에서 하루는 맨 서쪽 항리마을에서 마무리 해야 된다. 바닷가 절벽 위 올라앉은 섬누리펜션 방안에서도 섬등반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해넘이와 저녁노을 장관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메가(Ω) 형상을 만든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춘 뒤에도 서쪽 하늘에는 태양보다 더 붉은 노을이 오래도록 스러지질 않는다. 그러나 가거도에서는 해넘이와 저녁노을 없어도 머무는 내내 더없이 아름답고 행복하다. 그곳 바다와 바람과 파도만으로도 사나흘간 여정은 꿈결처럼 흘러가기 때문이다.

글·사진=양영훈 여행작가·어행사진가·(사)한국여행작가협회 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