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쪽방촌 290세대… “하루하루 힘들게 견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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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광주 쪽방촌 290세대… “하루하루 힘들게 견뎌요”
성인 한 명 누울 공간서 일상생활
‘경제적 결핍’ 주거비 저렴해 입주
기초생활수급 등 정부 지원 의존
폭염·한파 노출… 기후재난 고통
  • 입력 : 2023. 09.20(수) 18:10
  • 정상아 인턴기자
20일 광주 동구 대인동 쪽방촌 내부 모습. 성인 한 명이 누울만한 공간에 이불 등 생활물품이 쌓여있다. 나건호 기자
광주 도심 한복판인 동구 대인동과 계림1동에는 290세대의 쪽방촌이 존재한다. 가족과 친구, 이웃과도 단절된 채 외로움과 싸우는 쪽방촌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한줄기 빛조차 허락하지 않은 ‘쪽방촌’은 도심 빈곤자(貧困者)들의 작지만 소중한 거주지다.

20일 찾은 광주 대인동의 한 쪽방. 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들이 즐비했다. 쪽방 문을 열자 최근 습한 날씨 탓인지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올 여름 폭염과 사투를 벌인 듯한 선풍기가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 방 한켠에 놓여 있었다. 비좁은 방안은 성인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과 이불 등 각종 생활물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광주지역문제해결플랫폼의 광주 동구 대인동·계림1동 쪽방촌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인동(180세대)과 계림1동(110세대)에 총 290세대의 쪽방촌 거주민이 존재한다.

플랫폼측은 이번 실태조사 응답자 160가구 가운데 90%는 경제적 결핍으로 주거비가 가장 저렴한 쪽방촌에 들어왔고, 대체적으로 노동력이 없는 고령인들이 다수를 이룬 것으로 분석했다.

쪽방촌 거주민의 월평균 소득은 84만9000원으로 ‘절대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쪽방촌 160가구 가운데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 79%, 비수급자 21%에 달했다.

주소득원은 정부의 보장수급이 60%를 차지했고, 근로활동은 31%, 나머지 2.5%는 지인의 도움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사와 관련해 직접취사는 76.3%(122명), 음식을 사서 먹음 18.8%(30명), 무료급식소 이용 1.3%(2명) 등이었다. 직접 취사 장소는 방 84.4%(103명), 건물 내 취사장 7.4%(9명), 기타(건물 내 전자레인지, 방 옆 베란다 등) 등이었다.

빨래는 쪽방 내 화장실 93.7%(150명), 공용세탁기 5%(8명), 빨래방 0.6%(1명)였고, 씻는 공간은 쪽방 내 화장실 95.6%(153명), 건물 내 세면장 3.8%(6명) 등이었다.

쪽방촌 거주민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폭염과 한파다. 에어컨 등 냉난방기가 없는 쪽방촌은 여름엔 선풍기, 겨울엔 전기장판만으로 버텨야 한다. 겨울철 난방에 대해 응답자 46%(72명)가 ‘추운 편이다 ’, ‘매우 춥다’고 답했다.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과 의료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 61.3%(98명)이 ‘건강이 매우 나쁘다'고 응답했고, ‘보통 ’30.6%(49명), ‘좋다’ 7.6%(12명) 순이다.

건강 위협요인은 만성질환 31.9%(51명), 음주, 흡연 21.9%(35명), 우울증 및 스트레스 16.9%(27명) 순이다. 아파서 병원을 가고 싶으나 가지 못했던 경험을 묻자 19.4%(31명)가 ‘있다’고 응답했다. 병원을 못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 71%, 거동이 불편해서가 9.7%였다.

월세를 내고 쪽방촌에 거주하는 권모(69)씨는 “한 달에 60만원을 지원받지만, 가만히 있어도 돈이 줄줄 나간다. 생활비로 돈을 다 지출하다 보니 그냥 집에만 박혀 있는다”며 “목표를 가지고 산다기보다 버틴다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쪽방촌 주민인 김점열 씨는 “혼자 살다 보면 외로움이 커지는데, 경제적 부담 또한 증가하다 보니 이웃·가족에 대한 관심을 끄게 됐다. 당장 우리 가족만 봐도 내가 죽으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다. 죽음(고독사)에 대해 매일 무서움을 느끼고 있다”고 울먹였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건강 악화 등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절대 빈곤층으로 내몰린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복지 대책 강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쪽방촌 주민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한파와 폭염의 강도가 거세지면서 기후 빈곤층으로까지 내몰리고 있어 혹서기·혹한기 지원도 요구되고 있다.

김용희 광주지역문제해결플랫폼 사무처장은 “이번 여름에는 폭염과 폭우로 인해 쪽방촌 사람들이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동구에는 무더위 쉼터나 상담소 등의 복지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고, 여름철 더위를 피하거나 쉴 수 있는 공원조차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기후 재난에 고통을 받는 쪽방촌 사람들이 소외받지 않고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자세한 정책과 지원을 만들고 지자체뿐만 아니라 모두 다 협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아 인턴기자 sanga.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