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서술시사 600년, 16개 선각적 눈으로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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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서술시사 600년, 16개 선각적 눈으로 조망
호남 서술시 사적전개와 미학
최한선 | 보고사 | 3만8000원
  • 입력 : 2023. 12.07(목) 16:54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호남 서술시의 사적 전개와 미학.
 호남 한시단 600년 역사를 16개의 선각적 눈으로 조망한 책이 발간됐다. 전남도립대 명예교수 최한선 교수가 수 년에 걸쳐 야심차게 저술한 ‘호남 서술시의 사적 전개와 미학’이다.

 최 교수는 중2 시절까지 서당을 기웃거리며 한자와 한문을 배웠다. 그것이 운명이 되어 고전문학을 전공해 40여 년 동안 대학강단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쳤다.

 대학원에서 한시, 가사, 시조 등 고전시가에 대해 집중하던 20대 중반 무렵 최 교수는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요청한 고전시가론 강의를 준비하던 중 평소 무심히 흘려들었던 판소리가 달리 들렸다. ‘춘향가’의 하이라이트인 변사또의 잔칫상에서 이몽룡이 내뿜은 이 가슴 시린 시 한 수이다.

 ‘금준미주(金樽美酒) 천인혈(千人血)/ 옥반가효(玉盤佳肴) 만성고(萬姓膏)/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락(民淚落)/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

 판소리의 구구절절 꼬고 비틀며, 당겼다 튕겨서 풀어내는-서술시적 발화-우리네 이웃들의 삶의 이야기 같은 이 익숙한 느낌, 이 백성의 힘, 아니 민중의 힘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오랜 세월 남도인의 가슴에 켜켜이 쌓이고 쌓인 전통의 분출이라는 생각에 깊게 꽂혔다.

 이런 꽂힘은 호남 시단의 모태인 누정에 대한 관심을 낳았고 얼마 후 호남 시단의 오랜 적층된 전통의 힘, 곧 호남 시단을 면면하게 이어온 시학은 무엇일까의 의문으로 이어졌다. 이후 최 교수는 호남 시가운데 특히 한시에 대해 본격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선행 연구자들의 덕분으로 호남 시는 낭만적 서정성, 방외적 저항성, 섬세한 언어미 등이 끊임없이 계승, 발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다.

 현실 비판시, 풍자시, 서사시라 이름한 시편을 통해서는 서술시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한 시작 태도가 도도하게 이어져 뒤틀린 현실의 개혁과 모순의 해결, 불합리한 현실의 고발과 풍자 등을 통하여 애민정신 발현과 우국의 충정 등을 토로한 시편들이 한 조류를 형성하여 부단히 계승되고 발전되면서 다양하게 실현됨을 발견했다.

 책은 1장 호남 서술시단의 창시자요 호남 사림의 거목인 금남 최부의 ‘탐라시 35절’, 2장은 눌재 박상의 ‘애대조’, ‘황종부’, ‘몽유’ 등 5편, 제3장은 면앙정 송순의 ‘문개가’, ‘문인가곡’, ‘전가원’, ‘탁목탄’ 등 서술시, 제4장은 석천 임억령의 ‘송대장군가’, ‘고기가’, 제5장은 송재 나세찬의 ‘애병백부’, ‘나부’,‘부득어군즉열중’ 등, 제6장은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 48영’, 제7장은 행당 윤복의 ‘오국성부’, ‘이남부’, ‘우산부’, ‘남정부’, ‘검려지부’ 등, 제8장은 송천 양응정의 ‘절함’, ‘하백과 추수’, ‘호가’ 등 서술시를 담았다.

 제9장은 풍암 문위세의 ‘위인유기’, ‘예위수신지간’, ‘인불가이무치’ 등, 제10장은 청계 양대박의 ‘면앙정 30영’, 제11장은 칠실 이덕일의 ‘우국가 28수’, 제12장은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40수’, 제13장은 죽록 윤효관의 ‘순산군행’, ‘소거가’ 등, 제14장은 다산 정약용의 ‘도강고가부사’, 제15장은 초의 장의순의 ‘동장봉별 동노김승지 재원담재김승지 경연황산김승지 유근추사김대교정희’, 제16장은 경회 김영근의 ‘화전괴석가’ 서술시 등을 살폈다.

 문화의 힘,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또는 누군가에 의하여 일시에 만들어진 급조품이 아닌, 유구한 전통을 가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학도 마찬가지. 남도를 지키고 이끌어온 시 창작의 힘, 그것은 남도의 뻘밭처럼 진하고 질펀하며 도도한 적층(積層)의 힘이 아니겠는가. 적층이란 다름 아닌 전통이요 전통은 곧 역사이며 앞으로 밀고 나가는 거대한 힘이라 할 것이다. 최 교수는 책을 통해 이런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호남 시, 한국의 시가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우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계승, 발전되기를 소망한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