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빈 작가가 2022년에 완성한 ‘부석사 설화’라는 작품이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와 그가 중국 유학 시절 만난 선묘 낭자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배를 타고 신라로 돌아가는 의상 대사를 바라보며 선묘 낭자는 ‘용이 되게 해달라’고 빌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 용이 된 선묘 낭자는 의상이 탄 배를 보살폈다고 한다.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용을 ‘미르’라고 불렀다. 미르는 물(水)을 의미한다. 채소 중 하나인 미나라의 ‘미’가 곧 물의 옛 말에서 나왔다. 용은 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깊은 물에 사는 이무기가 천년을 묵으면 용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용은 수신(水神)으로 숭배됐다. 옛 이야기 속에도 바다의 왕은 용왕(龍王)으로 등장했다. 용이 물을 지배하는 신으로 신앙시되면서 우리에겐 농경민족의 특성에 따라 용을 섬기는 용신신앙이 전국 각 지역에서 발생했다. 신라시대 때부터 가뭄이 들었을 때 용의 화상을 그려놓고 비가 오기를 빌었고, 어촌에서는 안전한 항해와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를 지냈다.
용은 최고로 높은 자리에 있는 ‘제왕’을 상징하기도 한다. 임금의 얼굴은 용안(龍顔), 입는 의복은 용포(龍袍), 앉는 평상은 용상(龍床)이라 불렀다. 세종대왕이 조선 왕조를 건국한 이성계를 포함한 6대 조상을 칭송한 서사시에 ‘용비어천가’란 이름을 붙인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이런 용의 상징성은 현대 정치판에서도 심심찮게 사용되는데 대통령의 뜻을 거역한다는 뜻에서 흔히 쓰는 ‘역린’(逆鱗)을 거스른다는 말도 용에서 따온 표현이다. 역린은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하는데 이 부분을 건드린 사람은 화를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된다.
용은 복을 불러오는 존재로도 인식됐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출입하는 대문 왼쪽에는 ‘龍(용)’을, 오른쪽에는 ‘虎(호)’를 크게 써서 붙여놓고 가정의 행복과 안녕을 빌었다. 조선시대에는 용의 그림을 문에 붙여 악귀를 쫓아냈다.
용은 민간신앙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일상생활 속의 용은 무당들이 행하는 ‘용왕굿’, 가정신앙에서 사용되는 ‘용단지’, 세시풍속인 ‘용궁맞이’, 민속놀이인 ‘용마놀이’ 등에 많이 활용됐다.
용에 대한 속담도 많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변변치 않은 집안에서 인물이 나왔음을 뜻한다. ‘용 가는데 구름 간다’는 바늘과 실처럼 항상 같이 가는 것을 비유하고, ‘미꾸라지 용 됐다’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 훌륭하게 됐음을 비꼬는 속담이다.
용에 관한 사자성어도 눈길을 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용두사미(龍頭蛇尾)는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란 뜻으로 처음 시작은 그럴 듯해도 끝맺음이 시원치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용을 그릴 땐 맨 마지막에 눈동자를 그린다’는 말로 가장 핵심적인 내용, 요긴한 부분을 가르킨다. 화용류구(畵龍類狗)는 ‘용을 그리다가 개같이 그림을 그렸다’는 뜻으로 서투른 실패작을 말한다.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용은 우리에게 좋은 기운과 복을 가져다주고 인간을 지켜주는 의로운 동물이다. 용이 구름을 박차고 하늘로 승천하듯, 모두가 한단계 도약하고 힘찬 기운이 가득한 한 해를 만들어보자.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