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꽁꽁 얼어붙은 겨울, 화목난로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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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꽁꽁 얼어붙은 겨울, 화목난로 같은 영화
알렉산더 페인 감독 ‘바튼 아카데미’
  • 입력 : 2024. 02.25(일) 14:38
알렉산더 페인 감독 ‘바튼 아카데미’.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알렉산더 페인 감독 ‘바튼 아카데미’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바튼 아카데미’를 보면서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 보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것은 영화의 서사적 배경 때문이었다. 실제로 북미지역 개봉은 11월이라서 적절했을 터였지만….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가장 큰 명절로 여기는 것 같다. 한 달 전부터 현관과 정원을 꾸미는 문화가 그러했다. 어느 집이 저리 잘 꾸몄나 반짝이는 장식을 보러 일부러 밤에 차를 몰고 주택가를 돌아보았던 기억은 잔잔한 설렘을 주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시즌 직전의 상가들은 연중 최고의 북적북적함을 문 닫고 가족들 지인들과 함께하는 휴가에 돌입한다. 그러면 번화가 주변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적막 속으로 침잠한다.

미국에 있을 적, 필자에게 크리스마스 할러데이란 그저 휴일·휴가 가운데 하나라서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도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는 일상이었다. 그러다 캠퍼스 내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알바 학생이 팔고 있던 파스타 샐러드를 주겠다고 했다. 왜 그러지 싶으면서 그러고 싶으면 그러라 했더니, 남은 샐러드를 투고우 박스에 한가득 담아주었다. ‘동양인이라 불쌍해 보였나’ 의아로워 하다가 텅 빈 캠퍼스를 보고서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마도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미국에서의 크리스마스 추억은 ‘캠퍼스의 공동화’와 겹쳐 있다.

영화 ‘바튼 아카데미’의 원제목은 The Holdovers, 남겨진 자들이란 의미다. 1970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학교 바튼 아카데미는 모든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방학을 떠난다. 금수저들이 다니는 학교라 남겨진 학생은 불과 5명. 집이 한국 또는 남미라서, 머리 자르기 전에는 집에 오지 말라 해서, 말썽쟁이라 부모로부터 심리적 버림을 받아서…, 등등 개개인의 사유가 있다. 그 중 테디의 부친이 항공회사 대표라 헬기로 아들을 데리러왔다가 다른 친구들의 스키장 동행을 허락한다. 단지 앵거스(배우 도미닉 세사)만 신혼여행 떠난 엄마와 연락이 안 되어 거듭 남겨지고 말았으니 질풍노도의 시기에 얼마나 상처받고 엇나가고 싶었겠는지 짐작이 간다.

앵거스는 남겨진 학생 담당인 역사교사 폴(배우 폴 지아마티) 그리고 주방장 메리(더바인 조이 랜돌프)와 함께 원치 않은 동고동락을 시작한다. ‘아무도 나를 원치 않는다’는 외톨이 느낌은 단지 앵거스만의 것이 아니었다. 폴은 하버드 대 재학시절의 상처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상흔이 많아 우울증 약을 먹고 있고, 메리는 아들을 잃은 크나큰 슬픔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서러움, 분노, 서글픔, 쓸쓸함, 우울함, 자괴감, 체념…. 세 사람을 사로잡고 있던 감정들은 함께 밥을 먹고, 어거지를 부리고, 고함을 지르며 티격태격하다 사고도 내가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 마음을 열기까지 잔잔한 사건이 거듭되면서 각자의 개인적 상흔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세 사람의 상처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2주간의 크리스마스 방학에 남겨진 것뿐 아니라 과거의 상처로부터 남겨져 더욱 씁쓸하기 짝이 없다. 메리가 차린 크리스마스 아침식사 그리고 폴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앵거스에게는 처음 느껴보는 따스함이다. 내킨 김에 작은 일탈을 시도한 이들에게 직접 만든 달콤한 체리주블레가 씁쓸함을 위로할 줄이야. 폴은 앵거스와의 허풍 케미스트리로 과거의 상처에 대한 복수 비슷한 것을 한 듯하고, 앵거스의 슬픔을 함께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된다. 메리는 여동생의 태아를 위한 대학등록금 마련이라는 삶의 목표를 세운다. 묵은 상처와 함께 남겨진 사람들. 씁쓸한 이들에게 온기가 스며들었다면 이들의 크리스마스 방학은 꽤나 근사한 것이 되었으리라.

감독은 외로움이 어디에나 있다면, 그것을 함께 나눌 온기도 어디에나 있을 것이라는 따뜻한 의도를 내비친다. 가족과의 갈등, 가족이 주는 외로움은 대안 가족으로도 따뜻하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페인 감독의 설명이다. 이를 설득하기 위해 현재가 아닌 1970년대를 빌려온 것은 각박한 현대사회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철 군고구마 구워먹고 싶은 화목난로 같은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앞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TV에서 만나게 될 만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을 것 같다. 2월 21일 개봉.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