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글로벌에세이·최성주>한국과 베트남 ‘포괄적 전략 동반자’ 미래 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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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글로벌에세이·최성주>한국과 베트남 ‘포괄적 전략 동반자’ 미래 열어야
최성주 원자력대학원 교수·전 주폴란드 대사
85)베트남, 월남, 그리고 한국
  • 입력 : 2024. 02.26(월) 13:21
최성주 교수
베트남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라다. ‘베트남’하면 연상되는 단어는 월남과 베트콩, 호치민, 국군 파병, 양민 학살, 베트남 신부 등이다. ‘월남’은 현재의 베트남이 아닌 남부 베트남을 의미한다. 20세기 들어 한국과 베트남 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975년 베트남이 공산 통일된 후 거의 50년이 지난 오늘날, 베트남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도 특별한 나라다. 한국은 누적 기준, 베트남에 대한 외국 투자 건수와 액수가 모두 1위를 점한다. 특히,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 수는 1만 개가 훨씬 넘는다. 또한, 작년 베트남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은 360만 명으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베트남은 과거 약 1천 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당-송 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939년에 독립을 이룩한다. 그런데, 독립 이후에도 오랫동안 중국을 종주국으로 인정하고 조공 관계를 유지한다. 이는 조선-중국과의 관계와도 흡사하다. 그런데,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한 중국(청나라)은 1842년 난징조약을 체결한 이후, 제국주의 열강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 결과, 중국은 베트남에 대한 종주국 지위를 포기하며,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는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에 대한 식민 지배를 공고히 한다.

20세기 들어, 베트남은 프랑스, 미국, 중국의 군대를 차례대로 물리친 바 있다.

먼저, 프랑스군은 1954년 베트남 북쪽의 디엔비엔푸 지역에서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남군을 맞이하여 일대 교전을 벌인다. 그러나, 우세한 병력을 동원한 베트남군은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여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이를 계기로 인도차이나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지배가 종식된다. 한편, 미국은 동남아시아 지역에 공산 세력이 뻗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월남(남부 베트남) 정권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 정권은 부패하고도 무능하여 민심을 잃는데, 베트콩은 땅굴과 게릴라 전술 등을 통하여 월남 정권에 대한 공세를 지속한다. 베트콩과 북부 베트남은 1960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공세를 버텨내며, 1975년 4월 사이공을 함락한다. 공산 통일 이후, 베트남은 중국과도 전쟁을 벌인다. 중국은 등소평 정권 출범 초기인 1979년 동맹국인 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을 ‘응징’하겠다며 베트남의 북부를 침공한다. 그러나, 미국과의 장기간 전쟁을 통해 축적된 실전경험을 토대로 군사력 측면에서도 우위에 있던 베트남을 상대하기가 버겁다고 판단한 중국은 침공 1개월 후에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이처럼 3개 강대국을 물리친 베트남 사람들의 민족적 자부심은 대단하다.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한국 및 중국, 일본과 함께 ‘한자 문화권’에 속하고, 한국 및 중국, 몽골처럼 구정(설)을 최대의 민족 명절로 삼고 있다.

한국은 1956년 월남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지만, 1975년 수립된 공산 베트남은 우리와 단교하고 북한과만 외교관계를 유지한다. ‘월남전’ 당시, 우리나라는 1965년부터 8년간 연인원 30만 명 규모의 해병(청룡), 보병(맹호), 공병(비둘기) 부대를 월남에 파병한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필자는 친구들과 함께 파병부대의 군가를 부르면서 뛰어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월남 파병은 박정희 대통령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동맹국 지원 차원에서 내린 조치로 해석된다.

동시에, 우리는 파병을 통해 실리도 챙긴다. 군수품을 수송하기 위해 우리의 조선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또한, 우리의 파병은 신식 소총 등의 도입을 통해 무기를 현대화하고 무기체계의 호환성을 높임으로써 한미 공동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데도 크게 기여한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외교관계를 맺는데, 그 과정에서 베트남은 한국의 월남전 파병 시절(즉, 한국의 적대 행위 및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부 불행한 사건)을 문제 삼지 않으면서, 미래를 향해 공동 노력할 것을 제시한다.

양국 국민교류의 대표적인 사례는 고려 때 한반도에 정착한 베트남 왕족이 세운 ‘화산(花山) 이씨’와 ‘정선(旌善) 이씨’다. 양국 간 우호 협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양국 국민들 간의 교류가 확대되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 남성들과 결혼하고 있어서, 양국은 ‘사돈의 나라’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한국에 시집온 일부 베트남 여성이 가정 폭력을 당하거나, 또는 한국 국적 취득 수단으로 사기 결혼하는 일도 발생한다. 두 민족 간의 접촉면이 넓어지다 보면, 이처럼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2022년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된 양국 관계의 미래가 훼손되지 않도록, 거시적인 관점에서 함께 노력하며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