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문화향기·박관서>『면성풍아』로 읽는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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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문화향기·박관서>『면성풍아』로 읽는 詩
박관서 시인·무안학연구소장
  • 입력 : 2024. 03.19(화) 14:24
박관서 시인
짬짬이 시간을 내어서 근 한 달 가까이 고문헌을 읽었다. 필자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무안의 옛 시문집인 『면성풍아(綿城風雅)』이다. 무안은 예전에 면성(綿城)이라고 불렸고, 풍아(風雅)란 속되지 않고 고상한 품격을 지향하는 시를 말한다. 따라서 《면성풍아》는 무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시인들의 시를 골라서 묶은 시문집 곧 엔솔로지(Anthology)이다.

시문집의 간행이 1938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이면서 동시에 당시로부터 약 500여 년 이전의 시들까지 모았다고 한다. 이는 무안에 초대현감 나자강이 부임한 1423년으로부터 약 600여 년이라는 무안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여기에서 이러한 연대 추정이 중요한 이유는 《면성풍아》에는 단지 옛 한시문만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무안이라는 지역의 역사는 물론 정신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그대로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과 인격을 형성한다.

물론 이 문집은 순전히 한자로 쓰인 한시 문집이다. 그래서 무안문화원에서 간행하고 있는 <무안향토문화총서>라는 형식을 빌려서 한글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에 필자는 감수와 교열을 담당하며 이를 만나는 중이다. 하지만 오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절구, 칠언율시 등 옛 한시의 형태로 쓰인 문집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무안이라는 지역에서 간행된 문집이면서 석천 임억령,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옥봉 백광훈, 망우당 곽재우, 하서 김인후, 면암 최익현, 무정 정만조, 송사 기우만 등 문학과 역사의 영역에서 충분히 눈과 귀에 익은 이들의 이름과 문학작품을 확인하는 일이다. 또한, 자신만의 서정과 개인의 자유에 얽매이지 않았던 중세 이전의 시인들은 주로 문학의 세계를 공간으로 구현하였다. 영산강변의 식영정을 노래한 시문을 통해서 은일과 은거에 관한 생각을 다시 해 보았고, 며칠 전에는 지금은 광활한 농지와 들녘으로 펼쳐진 일로의 관해정(觀海亭)을 찾아서 흐르는 시공간의 변화를 크게 느껴보았다.

물론 개인적으로 문학적인 성찰 내지는 모색의 기회로 삼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의 한국문학 특히 시문학의 경우는 위기에 봉착해있다. 시를 쓰는 시인들은 물론 시를 읽는 독자들 모두 힘들어한다. 시가 가지는 본질적인 성격으로서의 자기해방성은 물론 근원적인 소통감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사실 서구를 통해서 들어온 근대문학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서구 근대의 주인공인 부르주아문학 자체가 그들을 이루는 시장성과 학문 곧 상업성과 아카데미즘을 통한 ‘구별짓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듯이 지금의 한국문학은 시장과 학교에 갇혀서 ‘인정받기’에 목말라 있다. 시 삼백 편을 읽으면 사특함이 없다는 공자의 이야기는, 극도로 부풀린 개인의 서정과 자유 그리고 타인을 의식한 언어의 조탁에 짓눌린 시들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시를 통하여 자신을 수신하고 타인을 이롭게 함은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나라의 풍속을 교화하여 안전하고 즐거운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공리성은 흔한 말로 후지게 여기고 있다. 한마디로 작금의 한국 시문학은 사회적인 효용성은 물론 문학을 통한 자기해방성까지 잃어버리고 타자의 문학을 하고 있다는 혐의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시는 사람의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잘못을 원망할 수도 있게 하지만, 즐거워하되 음란함에 이르지 않고, 슬퍼하되 마음을 상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여, 그 성정의 바름을 얻도록 함으로써, 선을 드러낸 시는 사람의 선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악을 드러낸 시는 사람의 방탕한 뜻을 징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부터 선현들이 시로써, 부모에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형제간에 우애하고, 부부 사이에는 떳떳한 도리를 두게 하는 등 오상(五常)의 인륜을 두터이 하고, 감화와 교화를 펴서 풍속을 선하게 바꾸어 왔던 것이다. 시가 이처럼 세도(世道)에 미치는 영향이 중차대한 것이다.’라는 역자 김형만 선생의 이야기를 눈여겨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