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려인>러시아 시장을 떠나기로 결정한 서방 기업들 1,030억 달러 이상 손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려인
[전남일보]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려인>러시아 시장을 떠나기로 결정한 서방 기업들 1,030억 달러 이상 손실
<32>러시아에서 떠나는 기업과 떠나지 않는 기업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국가의 기업 철수하는 경향
2024년 2월 기준, 외국 기업 철수 완료 357개 추산
현대차, 러시아에 진출한 지 13년 만에 철수 결정
  • 입력 : 2024. 03.21(목) 14:28
소련 붕괴 전 1990년 1월 30일 모스크바에 문을 연 최초의 맥도날드가 32년 만에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였다. 사진 출처: 비탈리 아르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다수의 서방 기업들은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러시아 경제 제재 조치는 러시아로의 상품 수출과 러시아로부터의 원자재 수입을 금지하게 했다. 기업 철수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순으로 많이 이루어졌다. 상대적으로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국가’의 기업 또는 상장된 기업의 경우 철수하는 경향이 크며, 러시아에 ‘우호적인 국가’의 기업 또는 규모가 작은 기업의 경우 남기로 하는 경향을 보였다.

2023년 12월 7일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운영되는 외국 기업의 수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다고 했다. 2022년 3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이러한 회사의 수는 24,100개에서 25,600개로 거의 1,500개 증가했다. 그는 서방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외국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떠나기 프로젝트’(Leave Russia project)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2월 기준 총 3,746개 외국계 기업 중에서 러시아 시장에서 남아 정상 운영 중인(stay) 기업은 1,644개이며, 신규투자 중단 및 사업 규모 축소(wait) 기업은 506개, 운영 중단 및 철수 선언(leave) 기업은 1,203개, 그리고 철수 완료(exit) 기업은 357개로 추산하고 있다. 철수 기업은 전체 대비 9.5% 미만이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입수한 ‘러시아 현지 한국 기업 현황’에 따르면 2023년 12월 20일 기준 총 140개 기업이 러시아 현지에서 활동 중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3월 3일 러시아 내 한국 기업은 총 151곳이었다. 전쟁 이후 11개만 줄어들었다.

이처럼 서방은 러시아에서의 많은 사업 활동을 제한하는 제재 조치를 취했으며, 많은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실제로 러시아 사업을 완전히 매각한 기업은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기업 철수는 산업 부문에서는 자동차 산업, 제지 생산, 담배 제품 및 음료, 기계 공학 및 목재 가공 등에서 주로 나타났다. 특히 외국 기업의 이탈은 자동차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 제조사들 사이에서도 대규모 손실이 기록됐다. 기업 철수로 인해 파트너에게 가장 큰 재정적 문제가 발생한 산업의 순위를 매기면 분명히 석유 및 가스 부문이 될 것이다. 또한 큰 피해를 입은 산업은 금융 부문이다.

더불어 러시아 시장을 떠나는 것은 외국 기업들에는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다. 전문가들은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을 떠나기로 한 결정은 이들에게 극도로 슬픈 결과를 가져왔다고 결론지었다.

러시아에서 철수하여 가장 손해를 많이 본 10대 기업으로는 네덜란드에 등록된 지주회사인 베온(Veon)이 있다. 2023년 10월 베온은 러시아 통신회사 빔펠컴(VimpelCom) 매각 계약을 마무리하고 러시아를 떠났다. 손실은 37억 달러였다. 프랑스 회사 르노(Renault)는 러시아 아브토바즈(AvtoVAZ)에 지분을 이전했다. 6년 이내에 복귀를 결정하면 르노는 주식을 다시 살 수 있다. 손실은 25억 달러였다. 맥도날드(McDonald)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체인은 2022년 5월에 러시아 시장을 철수하였다. 바로 6월에 새로운 러시아 체인인 ‘브쿠스노 이 또치카’(Вкусно и точка. 맛 끝내준다는 의미) 레스토랑이 이전 건물에 문을 열기 시작했다. 맥도날드는 850개 레스토랑을 지역 프랜차이즈에 매각했고 그 과정에서 12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석유 거래업체 글렌코어(Glencore)는 손실액이 11억 달러였다. 닛산 자동차 제조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포함해 모든 러시아 지분이 국유화됐다. 손실은 8억 3천900만 달러로 추산되며 이 거래는 6년 이내에 자산을 환매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다. 브리티쉬 아메리칸 토바코(British American Tobacco)는 기업 매각으로 인한 예상 손실액은 6억 1천200만 파운드로 추산되었다. 독일의 지멘스(Siemens AG)는 러시아 사업을 매각하고 마침내 러시아에서의 운영을 중단한 후 6억 5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탈리아 석유 및 가스 회사인 에넬(Enel)은 러시아 사업 매각으로 인해 4억 9천700만 유로의 손실을 입었다. 영국 석유회사 셸(Shell)은 4억 5천6백만 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회사는 거의 모든 주유소와 로열티 프로그램을 폐쇄하고 러시아 사업을 루코일(Lukoil)에 매각했다. 세계 최대 석유 서비스 회사 중 하나인 베이커 휴즈(Baker Hughes)는 러시아 사업 일부 매각으로 4억 5천1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러시아 회사가 주식 100%를 인수했다.

또한 현대자동차가 러시아에 진출한 지 13년 만에 철수를 결정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인해 부품 조달이 멈추면서 사실상 가동이 멈춘 상태였다. 공장을 건설하고 운용하는데 지금까지 1조 원가량이 투입됐지만, 현대차가 러시아 현지 공장을 1만 루블(약 14만 원)에 매각했다. 2023년 상반기 손실액만 2천200억 원이었다. 현대차는 공장을 매각하되 2년 내 지분 재매수가 가능한 ‘바이백 옵션’을 넣어 복귀 여지를 남겼다. 그리고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러시아 공장은 전쟁 이후 2년 동안 모두 멈춰 있다. 상품 수출과 대금 결제 모두 막히다 보니 전자 제품도 판매가 막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외국 기업이 러시아를 떠나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사울 에스트린(Saul Estrin)과 아이비 비즈니스 스쿨의 클라우스 메이어(Klaus Meyer) 교수는 외국계 기업의 러시아 시장에서의 철수가 늦어지는 원인으로 글로벌 운영의 상호의존성, 윤리적인 고려(고용 문제, 취약 계층 및 의료적 치료 등 인권 문제, 러시아 경제에 부정적 영향 등), 사업체 매각에 따른 운영상의 어려움, 러시아 정부의 정책 등을 언급했다. 특히 러시아 정부의 정책으로 인한 철수 비용이 많이 들어 철수가 지체되거나 포기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가 서방 제재에 대한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기업들에 불리한 철수 조건을 추가함에 따라 외국계 기업의 철수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러시아에서 사업 지속에 대한 결정은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재정적 지급 능력(수익) 때문이다. 수익을 늘리고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은 모든 기업, 특히 러시아 소비자에 의존하는 기업에는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떠나게 되면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시장을 떠나지 않는다. 외국 기업의 철수를 복잡하게 만드는 러시아 법률을 고려하면 특히 그렇다.

2023년 3월 제정된 현행 규정에 따르면, 비우호적 국가 출신 기업의 러시아 자산 매각 거래는 러시아 재무부 장관이 이끄는 정부 외국인 투자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해당 자산은 독립적인 평가 시 결정된 가치에서 최소 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되어야 한다. 또한 회사는 예산에 대한 자발적 기여금을 지불해야 한다. 판매 할인이 90%를 초과하지 않는 경우 자산 시장 가치의 5% 이상, 판매 할인이 90% 이상인 경우는 자산 시장 가치의 10%를 세금 명목으로 일반적으로 자산 판매자가 지불해야 한다.

독일 동부 비즈니스 협회(German Eastern Business Association)의 전무이사인 마이클 함스(Michael Harms)는 기업들이 일종의 ‘EU 제재, 미국 제재, 러시아 제재 사이의 버뮤다 삼각지대’에 있다고 말했다. 개인과 단체에 대한 서방의 제재로 인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며 합법적인 구매자를 찾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들은 서방이 승인하지 않은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러시아의 대기업은 대부분이 정부와 잘 연결된 사람들이다.

이외에도 사실 러시아를 떠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서방 기업이 감히 러시아 시장을 떠나지 못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러시아를 떠날 의사를 밝힌 대부분의 서방 기업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떠나지 않은 나머지 회사도 현지 사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재정적 손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러시아 영업 활동을 축소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즉, 많은 회사가 투자한 돈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에 남아 있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지난 20~30년 동안 고된 노동으로 얻은 모든 것을 감히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재 대상이 아니며 물류를 재건할 기회가 있는 소규모 기업들도 러시아에 남는 것을 선호한다. 그들은 현지 시장에서 확실한 네트워크를 구축했기 때문에 계속 운영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의 조치로 인해 부동산과 자산을 시장 가격으로 매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러시아는 외국 기업이 자국 내 기업 매각에서 얻은 이익을 달러와 유로로 인출하는 능력을 제한했다. 러시아를 떠날 때 기업은 판매 가격을 루블로 합의해야 하며, 외화 수령을 고집하는 판매자는 지연과 심지어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러시아를 떠날 경우 서방의 기업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재산도 손실을 보게 된다. 따라서 러시아 시장을 떠나면 서방 기업은 이익, 관련 인프라, 러시아의 개발 전망을 잃게 된다.

그리고 현재 러시아 사업은 상업적인 것보다는 국내외의 정치적 영향으로 인해 기업에 대한 신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에 의해 기업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사업가들은 기업이 정치적 문제를 배제하고 시장에서 자유로이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은 기업 철수가 글로벌 시대 상호의존성을 유지하는 국가들이 점점 더 군사 및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관련 측면에서조차 신냉전 모델을 발전시켜 가치와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고 동시에 보호주의로 공동번영을 저해하는 가혹한 패권적 현실의 피해 사례로 보기도 한다.

한편, 뉴욕 타임스는 “특별 군사 작전이 시작된 후 러시아 시장을 떠나기로 결정한 서방 기업들은 1,03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수익성이 좋은 기업들을 할인된 가격으로 러시아에 넘겨주고 이 회사들은 또한 최소 12억 5천만 달러의 출국세를 러시아 국가에 넘겼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신문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시장에서 서구 기업의 이탈을 ‘금광’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는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내에서 가장 큰 부의 이전(wealth transfer) 중 하나를 감독했다”라고 썼다. 사실 푸틴 대통령은 기업이 러시아를 떠나기를 원하는 기업에게 정부, 엘리트, 전쟁에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조건을 설정했다. 그는 서방 대기업의 러시아 시장 철수를 충성스러운 러시아 엘리트와 국가 자체에 이익이 되도록 전환시켰다. 이러한 경제적 조치는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엘리트층의 지지를 강화하고 서방의 고립 효과를 둔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로 인한 러시아 경제가 상대적 회복되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장기전을 펼칠 수 있었다.

서방 기업의 이탈로 인해 러시아 연방에 새로운 비즈니스 엘리트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러시아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며 대부분은 러시아 외부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전쟁이 러시아 비즈니스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말해주는 예이다. 이들은 미국이나 EU의 제재 목록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인물들은 최근 자산 재분배의 물결로 인해 러시아가 점점 더 폐쇄화 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이익을 얻는 아이러니한 사건인 셈이다. 최초의 과두재벌(올리가르흐)들은 30여 년 전 소련이 붕괴된 후 광업과 은행업에서 부를 쌓았다. 푸틴 치하에서 서방 기업의 자리는 ‘신 엘리트’가 차지하며 부(wealth)는 다음 세대로 대체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서방 기업의 철수에 대응한 방식은 사업하기 위험한 곳이라는 러시아의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있다. 일부 러시아 고위 관리들조차도 경쟁과 외국인 투자 감소가 장기적으로 일반 러시아인과 경제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