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제로베이스 온라인 경매 프리뷰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옥션 강남센터 지하 1층. 박찬 작가 |
‘제로베이스’는 지난 2020년부터 전남문화재단이 국내 최대 규모 미술품 경매 기업인 서울옥션과 연계해 추진한 프로젝트다. 전남에서 활동하는 미술 작가들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비해 전시·경매·작품 노출 등 모든 부분에서 열악한 환경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제로베이스는 지역 출신 작가들의 수도권 미술시장 진출을 통한 작품 유통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의 회화 세계를 시장에 소개해 그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제로베이스 온라인 경매는 이름처럼 작품가를 0원으로 시작해 시장 가격이 형성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 가격을 전적으로 구매자들이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참가 자격은 전남 출신이거나 전남에 거주하는 작가 또는 관내 초·중·고등 및 대학교 졸업자에게 주어진다.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시작된 이번 제로베이스 온라인 경매에 앞서 작품을 실제로 감상할 수 있는 프리뷰 전시가 지난달 18~20일 화순 하니움스포츠센터, 지난달 25~29일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각각 진행됐다. 이번 제로베이스에 참여한 작가는 전영미, 전정미, 최인경, 이현숙, 임지인, 허정록, 한태정, 강우리, 컬리넌리, 이호국, 여송주, 장정순 등 12명으로 79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올해 처음 출품한 신규 작가는 9명으로 최인경 작가는 지난 2021년, 허정록 작가와 이호국 작가는 지난해에도 참여한 바 있다.
프리뷰 전시 마지막 날인 지난달 29일 찾은 서울옥션 강남센터 지하 1층은 강렬한 화풍과 독창적인 기법으로 표현된 결과물들로 가득했다. 이날 컬리넌리(예명), 한태정, 전정미, 이현숙 등 4명의 작가가 서울옥션 강남센터를 찾아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하고 관계자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로베이스 참여작가 수는 △2020년 8명 △2021년 7명 △2022년 6명 △2023년 10명 △2024년 12명으로 최근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올해 79점 작품이 모두 팔리며 지난 5년간 전시작 총 375점에 대한 낙찰률 100% 기록이 이어졌고 3억4000여만원의 판매고를 올리는 성과를 냈다.
이 밖에도 제로베이스를 통해 스타작가로 떠오르고 서울과 해외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하는 성공 사례가 등장하며 해당 사업의 긍정적인 효과를 등에 업은 인지도도 올라가고 있다.
지난 2020년 첫 제로베이스 경매에 참여한 고차분 작가의 ‘다른 선택’은 48회의 경합 끝에 그해 가장 높은 금액에 낙찰됐고 이어 2021년에는 그의 작품 ‘Good News’가 88회의 경합 끝에 역대 제로베이스 경매 중 가장 높은 금액인 161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그는 현재도 전남과 광주를 거점으로 꾸준히 미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열린 제로베이스 경매에도 참여해 낙찰금 일부를 전남 신진작가들을 위해 기부했다.
컬리넌리 작 ‘다이나믹’. 박찬 기자 |
서울옥션 측은 전남문화재단과 함께 진행하는 경매 사업을 통해 지역 출신 작가들의 수도권 진출을 돕는 가교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정태희 서울옥션 경매사업팀 팀장은 “서울옥션은 널리 알려진 대가들의 작품을 주로 선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미술시장과 지역 작가 발굴을 위해 젊고 새로운 미술작가들을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며 “제로베이스라는 온라인 경매를 통해 지역의 신진작가들과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서울에서 선보일 기회가 주어져 상호 간의 발전을 위해 잘 활용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 팀장은 이어 “내년에는 남도예술은행이 20주년을 맞아 더 특별한 프로그램을 전남문화재단과 함께 구성해 준비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업계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미술 경매 시장에서 이와 같은 사업이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반응이다. 실제 미술 경매 시장의 하락세는 현재 진행형으로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기업부설연구소 카이가 발표한 ‘2024년 3분기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국내 9개 미술 경매사의 낙찰총액은 237억5000여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21억7600여만원보다 26.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미술시장 컬렉터들로부터 기존에 진행했던 작가보다 신진작가의 중저가 작품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김은영 전남문화재단장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수도권 미술시장에 진출하거나 노출되는 기회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제로베이스 경매는 그 활로를 열기 위해 마련된 사업이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전남 작가들의 창작활동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