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마치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친절하고, 때로는 무자비하며, 항상 무한하게 강하다.” 소설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바다는 삶의 원천이면서 경외의 대상이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쿠바의 바닷가에서 보낸 헤밍웨이. 망망대해에 나가 거대한 물고기와 싸운 어부 산티아고를 통해 그는 바다를 광대하고 예측 불가능한 힘의 상징으로 묘사했다. 인간의 강인함과 의지를 시험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나에게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성찰을 자극하는 근원이었다.”는 게 헤밍웨이의 ...
2024.05.30 17:19광주 동구 끝자락인 소태동에 자리를 잡은 ‘왕실의 태가 묻힌 곳’이라는 태봉(胎封)마을은 조용하지만 아름다운 곳이었다. 약 100가구 규모의 주민들이 무등산 자락을 등에 업고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었다. 허나 조용하면서 평화로웠던 이 마을은 그러나 어느해 어느 봄을 기점으로 조용함 부터 더욱 무겁고 깊은 침묵 속으로 40여년간 잠겨 버렸다. 그때가 1980년 5월 봄이었다. 공수부대가 고향 언저리에 도착했고, 뒤어 광주시내를 점령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누구네 집 사촌이 죽었다’, ‘어린 남자애가 총을 맞았다’,...
2024.05.29 18:04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가운데 흐르는 강, 한강은 대한민국의 ‘초고속 경제성장’을 상징한다. 하지만 한강은 흥미롭고 경이적인 역사가 있다. 한강은 태백산맥의 금대봉 정상부 북쪽 비탈에서 발원하여 강화해협 부근의 어귀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본류로 한다. 본류 총연장은 494km에 달한다. 1960년 이전에 모래톱 등이 존재했으며 매우 깨끗했다. 하지만 근대화·산업화로 인해 한강의 수질은 심각하게 악화됐다. 수백 만 명이 모여 사는 도시의 강물을 깨끗하게 회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한강은 기적을 이뤄낸다. 1988년 서...
2024.05.28 17:05개화기 광주 최초의 영적 지도자, ‘오방(五放) 최흥종’. 한 평생을 한센병 퇴치와 빈민구제, 독립운동, 교육활동 등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오방 선생은 광주의 정신적 지주이자 근대 광주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 오방 최흥종기념관 서문에서. 한국의 몽마르뜨라 불리는 양림동은 느릿느릿 한 바퀴를 돌아도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광주의 근ㆍ현대 역사와 문화에 있어 양림동이 차지하는 자리는 결코 작지 않다. 100여 년 전만 해도 돌림병이나 괴질로 숨진 가여운 아이들을 묻던 풍장터였던 양림산 일...
2024.05.27 17:34“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라는 말이 있다. 한 없는 낙천성을 보여주는 속담이 아닐 수 없다. 제 자리에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지만, 어떻게든 해결하게 된다는 긍정성과 희망이 담겨 있다. 미국의 과학자 겸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는 “희망만을 먹고 사는 자는 굶어 죽을 것이다”라는 어록을 남긴 바 있다. 현실적인 목표에 더 집중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전설적인 그룹 너바나 리드싱어 커트 코베인(1967~1994)은 “태양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한 줄기의 빛이 내게 비춰...
2024.05.26 17:28“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화려한 궁전을 지어라.” 1631년 어느 날, 무굴제국 5대 황제 샤 자한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왕비 뭄타즈 마할과 함께 데칸고원 원정길에 올랐던 황제. 하지만 전투지에서 왕비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슬픔에 잠긴 황제는 1년 여를 고민한 끝에 왕비를 영원히 기억하는 ‘궁전 같은 묘지’를 짓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궁전에서 내려다 보이는 야무나 강가에 장소도 마련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타지마할 이었다. 타지마할은 명성만큼 세기의 대역사였다. 타지마할이 축조되는 ...
2024.05.23 17:34대법원은 최근 ‘월성 원자력발전소(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자료를 삭제하고 감사원 감사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공무원 3명에 대해 최종 무죄를 판결했다. 이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있을 때인 지난 2020년 주무 부처인 산업부와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로 시작됐다. 산업부와 한수원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따르기 위해 월성원전 1호기의 경제성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등 조작했다는 혐의였다. 감사원 감사도 진행됐다. 감사원은 산업부 공무원 3명이 감...
2024.05.22 11:05사람은 하루 평균 얼마나 거짓말을 할까? 하루에 3번꼴, 아니면 약 200번. 연구결과마다 수치가 각각 다르지만 ‘인간은 매일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존경의 대상인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 “나는 두 가지 말을 아주 잘한다. 하나는 참 말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말입니다”라고 했다. 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거짓말은 보통 만 3세 전후가 되면 거짓말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는 언어능력과 인지능력이 발달하는 시기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만 어느 범위까지가 거짓말로 봐야 될까? 흔히 “조만간 밥이나 먹자”라는 말을 거짓...
2024.05.21 17:31“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제5공화국 청문회에서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전직 대통령, 재벌 회장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질의하는 모습이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이른바 청문회 스타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고 노무현 대통령의 초선의원 시절 소개글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패기와 열정 넘치는 의정활동을 통해 정치적 존재감을 강렬하게 각인시켰고 이후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 자리에 올라섰다. 제22대 국회가 오는 30일 임기에 들어간다. 18명의 광...
2024.05.20 18:49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93년 ‘열반’에 든 성철 스님은 한국불교 근현대를 대표하는 선승이다. 1968년 여름, 해인사 백련암 법당. 수백명의 남녀 대학생들이 땀이 범벅이 돼 절하고 있었다. 스님을 만나려면 누구나 불전(佛前)에 3천 배를 해야한다. 그런데 학생들의 옷이 땀에 달라붙어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이를 본 법정 스님은 숫자 채우기에 급급해 절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러자 다른 젊은 스님들이 발끈해 법정 스님 방의 물건을 치워버렸다. 논란이 커지자 법정은 서울로 수행처를 옮겼다. 1982년, ...
2024.05.19 18:17지난 2001년 개봉된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는 서로 도우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거라는 한 소년의 믿음이 사회를 바꾼다는 내용이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찾아보자는 선생님의 숙제를 받은 11살 트레버. 다른 학생들은 숙제에 무관심했지만 트레버는 한 사람이 3명에게 도움을 베풀고, 도움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3명에게 무언가를 나누면 세상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누구도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를 향한 도움의 손길은 미국 전역으로 번져 나갔고, 기적과 같은 ...
2024.05.16 17:09다시 또 오월이다. 어쩌자고 오월이 다시 왔다. 지난해도 똑같이 말했다. ‘다시 또 오월이다’라고. 우리는 지난 1년간 무엇을 했는가.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이 수록 됐는가? 오월의 전국화는 얼마나 진행됐는가. 때만 되면 오월을 입에 걸던 정치인들은 올해 5·18 앞에서 떳떳한가? 사적지는 보존됐는가. 억울함은 풀렸는가. 묘지의 풀 꽃은 봄이라고 고개를 내미는데, 왜 광주의 오월은 오월이어서 봄을 맞음에도 이리 처연하게 하는가. 44년이다. 한 아이가 태어나서 중년이 될 기간이다. 총알이 빗발치던 때 ...
2024.05.15 22:08순창에서 사는 지인에게 호박 모종을 얻어오면서 녹두도 조금 가져왔다. 녹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니 5월말이나 6월초 아무 데나 뿌려놓으라며 한 움큼 봉지에 담아줬다. 작고 단단한 진녹색 알을 보니, 백 가지 독을 다 풀어준다는 녹두의 효능과 함께, 어릴 적 의미도 모른 채 불렀던 민요가 생각났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민요는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민중가요였으며, 죽은 자를 애도하는 구슬픈 만가(輓歌)였다. 만가는 상여...
2024.05.13 17:08‘보이콧(Boycott)’은 정치·경제·사회·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행위에 맞서 집단이나 조직적으로 벌이는 각종 거부운동을 말한다. 얼핏 보면 영어 합성어쯤으로 짐작될 수 있지만, 보이콧의 어원은 실존 인물이었던 찰스 커닝엄 보이콧(1832~1897)으로부터 나왔다.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찰스 보이콧은 군 장교로 임관하면서 아일랜드로 가게 된다. 그는 제대 후에도 아일랜드 지역의 한 경작지 지배인으로 토지 관리에 대한 경험을 쌓다가 메이요(Mayo) 주에서 토지 대리인으로 활동하며 생활을 꾸려나가게 된다. ...
2024.05.12 18:26“바다 속 해조류는 바다의 숲이다. 지구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탄소 흡수와 산소를 생산하는 육지의 숲보다 더 중요하다.” 지난 2017년 BBC가 방영한 ‘블루 플래닛 2’는 바다 속, 화려한 영상미가 압도적인 다큐멘터리다. 생동감 있는 산호정원과 신비하고 화려한 해조류 군락, 온갖 해양생물이 모여 사는 바다 숲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심해에서 발견된 미지의 생명체, 밀물과 썰물이 이어지는 해안가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해조류의 끈질긴 생명력도 경이로웠다. “해조류를 비롯한 모든 해양 생명체를 보호하는 것은 곧 지구를 지키는 ...
2024.05.09 1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