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디는 경복궁 정문 앞 한 쌍의 해태 석상을 보며 마치 광화문을 지키기 위한 경계 근무자 같다고 생각했다. 밤에 보면 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호랑이랑 코뿔소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해태 같은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 아무리 봐도 얼굴은 호랑이나 사자를 닮았고 머리는 코뿔소처럼 보였다. 비늘로 덮인 근육질의 다부진 몸은 그림 속의 용처럼 보였는데, 얼핏 보면 괴물 같아도 은근하고 귀여운 미소의 소유자였다. 윈디의 눈에는 웃고 있는 해태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처럼 보였다. 체셔 고양이의 미소를 지닌 해태가...
2024.03.07 14:09장독대의 정화수 장독대는 된장이나 간장 등을 야외에서 옹기에 보관하는 우리네 특유의 문화다. 요즘에 와서는 많은 것이 변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바람과 햇볕과 불과 물이 어우러져 숙성되면서 발효를 거치며 장으로 완성되는 것이어서 우리에게 장독대는 부엌만큼이나 모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사람의 역할은 시간과 더불어 가며 자연의 힘을 빌리는 것뿐이기에 만사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주변의 ...
2024.03.07 13:52우리 사이 좋은 사이(김의경, 이영순), 매일매일 행복한 집(김기수, 김왕진), 마음이 먼저 꽃을 피우는 집(강춘자, 최상원), 기적이 일어나는 행복한 집(양행식, 김미선), 슬픔은 없이 오직 기쁨만 있는 곳(최남수, 고영심), 눈꽃처럼 맑고 깨끗하게(김현옥, 이명례)…. 주소와 함께 대문 옆에 걸린 문패(門牌)의 문구다. 얼굴에 옅은 웃음을 짓게 한다. 자연스레 발걸음도 멈춘다. 문패가 집집마다 걸린 곳은 곡성 능파마을이다.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능파리에 속한다. “3∼4년 됐을 거요. 마을사업 할 때 한꺼번에 달았응...
2024.03.07 13:46예술가의 작품은 제작된 시대를 들여다보는 돋보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푸치니는 외세의 지배를 받던 시대를 넘어서 1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왕국 시대, 그리고 전후 경제 사회의 혼란을 틈타 등장한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과 함께했다. 푸치니가 그의 마지막 완성된 단막 작품 가 완성될 무렵, 유럽은 세계 1차 대전의 소용돌이 끝 무렵이었다. 이때 승전국이었지만 이탈리아 왕국은 경제적, 사회적 혼란에 휩싸였으며, 이러한 시기를 틈타 등장한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8~1945)의 전체주의 파시즘은 이탈리아를 삼키게...
2024.02.22 18:19부모는 죽은 아이를 안고 커다란 슬픔으로 울부짖는다. 무슨 악귀가 달라붙어서 어린 목숨을 앗아갔느냐고 소리친다. 아들이건 딸이건 자식은 똑같으며 오늘 아침 숨을 거둔 첫아이 시체 위의 하얀 이불이 눈물로 젖어 있다. 모든 식구들은 아직 시체 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보이지 않는 악귀를 두려워하면서도 죽이고 싶은 마음이다. 이 악귀가 또다시 태어나는 아기를 잡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솜씨 있는 이웃에게 오쟁이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이쁘게 엮어와서 뜰 위에 놓아두었다. 아기 어머니는 깨끗한 보자기로 시체를 싸서 오쟁이를 잡고 있는 ...
2024.02.22 14:17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언제 끝날지 아직 알 수 없다. 그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아니라 나토(NATO)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평화 협정에 대한 전망은 나오고 있다. 2024년 2월 9일 공개된 미국 언론인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르든 늦든 간에 평화적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2024년 1월 25일 미국 언론은 푸틴 대통령이 미국에 우크라이나 휴전에 대한 물밑 대화 제의를 간접적으로 했다고 보도했다. 작...
2024.02.22 10:25전쟁은 이제 만 2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현시점에서 누구에게도 완전한 승리는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것은 위기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갈등이라기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여러 전선에서 벌어지는 세계적인 대결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인명 피해는 늘어나고 큰 반격은 없는 소모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첫째, 가장 심각한 피해는 인명 피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유리 루첸코 전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2024년 1월 7일 우크라이나 TV에 출연해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에서 우크라이나가 50만명의 사...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4.02.15 13:50지난 설날 광주교통방송 아침 인터뷰를 했다. 올해가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이니 남도의 용을 설명해달라는 취지였다. 갑진년 양력설 본 지면에 ‘용보다 소사 아저씨’라는 제목으로 남도의 용을 소개한 바 있는데 종종 질문해오는 사람들이 계시기에 답변 삼아 다시 언급한다. 갑진(甲辰)은 60갑자 중 하나다. 우리 조상님네들은 세상의 주기를 60년으로 계산했다. 하늘의 수 천간(天干) 즉 10간과 땅의 수 지지(地支) 즉 12지를 서로 교직시켜서 최소공배수인 60을 만들었다. 갑자년, 을축년 등으로 조합해 열 번이 끝나면 10간의 첫째를...
2024.02.15 13:21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읍내에서 마을로 가는 길처럼 반듯하게 쭈-욱 뻗었다. 그다지 길지 않지만, 품새는 유명 가로수길에 버금간다. 새봄을 부르는 비가 내리면서 안개까지 내려앉아 몽환적이다. 가로수길 입구에 문학비가 서 있다. 소고당 고단(1922~2009)의 규방가사를 새긴 비다. ‘고향이 그리워서 서둘러 온 친정길/ 우리친정 장흥평화 수려한 산천이여/ 사면을 바라보니 신구감회 갈마든다...’ 이 마을을 친정으로 둔 고단은 조부에게서 한학과 신학문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저수...
2024.02.15 10:35시베리아와 만나는 몽골의 서북쪽 ‘홉스골’ 호수 인근의 타이가 숲속 순록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소수민족 ‘차탄족’을 찾았다. 원래 북쪽의 시베리아에서 몽골 쪽으로 넘어 온 유목민족이다. 오늘날 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몇백 명 정도에 지나지 않기에 인류학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부족이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집들과 흡사한 ‘오르츠’라는 이동식 움집을 짓고 산다. 살림살이라곤 그저 엉성한 이부자리와 장작 난로, 그리고 밥그릇 몇 개가 전부다. 이들의 일상은 오로지 ...
2024.02.15 10:13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작품 속 창작 과정 속 영감의 원천에 대해서 많은 대중들은 신비스러운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매번 독자적 세계관의 예술을 발견하고 보여주어야 하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늘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는 과연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그 창작의 원천은 예술가의 일상과 경험 그 어디에서 인가로 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보고, 국내외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발견되는 영감은 어떻게 표현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예술가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는 요소들은 더욱 다양하다. 정형화 되지 않은 자연의 풍경들, 새로운 심신...
2024.02.12 15:48서거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는 “나는 정열의 사냥꾼이다. 먼저 거위를 쫓고, 최고의 오페라 대본을 쫓고, 매력적인 여성을 쫓는다!”라는 말을 했다. 지난 연재에서는 매력적인 여성을 쫓는 푸치니, 막장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의 가정사와 여성 편력을 다루며, 그의 작품과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이번엔 ‘최고의 오페라 대본을 쫓는’ 푸치니의 모습을 살펴보려 한다. 푸치니 오페라의 대본은 이탈리아의 문학보다는 프랑스나 독일, 미국 등의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단테의 , 와 를 빼놓고는 거의 이탈리아 이외...
2024.02.01 17:57진도군 의신면 내동마을 뒷산에 윷판바위가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삼별초군들이 윷놀이하면서 새겨두었다고 한다. 졸저 『산자와 죽은자의 축제』(민속원)을 쓰면서 이 정보를 얻게 되었으므로 답사한 지 꽤 되었다. 하지만 책이 편집 완료된 시점이어서 졸저에 싣지는 못했다. 이후 전남지역의 윷판바위를 추적하던 차에 광양에도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에 있는 성혈 바위에도 윷판바위와 유사한 패턴들이 있다. 다만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나지 않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는 중이다. 전북 임실의 윷판바위에 대해서도 본...
2024.02.01 10:31세이레는 아이를 낳은 지 스무하루째 되는 날을 말한다. 출산일부터 대문에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아이가 출생한 첫 7일째를 초이레, 14일째는 두이레, 21일째는 세이레라고 한다. 7일을 세 개로 묶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이레마다 새벽에 삼신(三神)에게 흰밥과 미역국을 올린다. 세이레째 금줄을 내리게 되면 비로소 일가친척이나 마을 사람들이 실과 돈 등을 가지고 와서 아기를 대면한다. 세이레를 보통 ‘삼칠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군신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칠일, 백일을 비롯해 천부...
2024.01.25 13:30최근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는 해외로 피란한 자국민의 모국 귀환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 인구학적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쟁에 나가 싸울 군인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피폐해진 국가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숙련된 노동력 또한 부족하다는 점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이전에도 인구 통계학적으로 심각한 쇠퇴를 겪었다. 수년 동안 사망률은 출생률을 크게 초과했으며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다른 나라에서 살고 일하기 위해 떠났었다. 우크라이나의 인구가...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4.01.25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