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고법 김명환. 한국학중앙연구원 2013년 흥미로운 뉴스가 한 일간지를 장식했다. 크라운해태제과, '판소리 100인 떼창' 세계 기록 인증이라는 한겨레신문 기사였다. 윤영달 회장과 임직원 100명이 함께 부른 판소리 '사철가' 떼창(합창)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100인의 판소리 떼창은 윤회장이 도창(導唱, 창을 이끄는 사람)으로 판소리 단가 첫 도입부 를 선창하고 임직원 100명이 각자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추는 형식이었다. 사철가 떼창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사실은 100명의 고수들이 각자 북을 잡고 앉아 행한 고법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간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이 국악에 쏟은 정성과 관심이 이런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고수(鼓手)는 무엇이고 고법(鼓法)은 무엇인가. 판소리는 신재효가 정리한 '광대가'를 통해 그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고...
편집에디터2021.12.23 16:20순창성황대신사적현판 조사. 이윤선 "무격(巫覡)의 무리들이 어지럽게 무리 지어 모이고, 춤패와 노래패를 나열시키고 돌아다니며 제사를 받드는 것도 역시 지금껏 폐지되지 않은 것은, 그 영신(靈神)의 덕이 사람들의 눈마다 엄숙하였기 때문이다." 「순창성황사적현판」의 내용 중 무격과 관련된 부분이다. 무격(巫覡)은 무당(여자)과 박수(남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성황당의 의례에 많은 무당과 박수들이 모여들었다는 정보를 담고 있다. 성황제 의례 때문에 모였을 터인데 궁금한 것은 이들의 역할이다. 춤패와 노래패는 춤을 추고 노래했을 것이므로 그 기능이 짐작되는데 무격의 역할이 딱히 드러나지 않는다. '제사를 받드는 것도 역시 지금껏 폐지되지 않은 것은'에 나타나는 정보는, 당시에도 제사가 왕성하게 연행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영신이 사람들의 눈마다 엄숙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은...
편집에디터2021.12.19 14:31낙지의 부화, 줄탁동시(啐啄同時)에 기대어 지난 11월 26일 해남 신활력플러스추진단 강당에서 괄목할 만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름이 '땅끝 제철 진미 파티', 현재 5회째, 매달 한 번씩 연다. 11월 주제가 '낙지'였다. 남도 어느 지역이고 다르겠는가만 해남은 특히 사시사철 먹거리가 그치지 않고 순환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좋은 땅에서 좋은 먹거리가 순환되니, 제철의 맛있는 음식 나눔이라는 게 당연하고 또 마땅한 발상일 것이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수준이 아니다. 모이신 분들의 생태적인 태도와 의지, 또 실천의 이력들을 보니 바로 이것이 지역을 살리는 첩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선 김에 낙지에 대해 몇 마디 축하 말씀을 드리고 왔다. 낙지를 소재로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할 때 늘 인용하는 말들이다. 낙지 한 마리를 먹으면 쓰러진 소도 벌떡 일어난다는 말. 남도 ...
편집에디터2021.12.09 15:37해남윤씨종가 미인도 가체 외손자의 태내머리카락으로 만든 태모필(문상호) 배냇머리붓(胎毛筆)에서 모유필(母乳筆)까지 "연하디연한 세필,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자란 머리털로 붓을 만들었습니다. 짜박짜박 걸음걸이 할 때부터 그 내력을 그렸습니다. 길고 긴 곰할머니의 동굴, 마늘냄새 쑥냄새 진동하는 흑암의 자궁으로부터 빛과 어둠이 나뉘고 궁창이 나뉘고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와 별들과 새들과 육축들과 남자 사람 여자 사람이 태어나서 소멸하기를 거듭한 그림 말입니다. 하지만 내 칠하는 문양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을 한지 삼고 쌀뜨물 먹물 삼아 칠하기 때문일까요. 무수히 많은 글자가 셀 수도 없는 이야기가 구름처럼 보프라지다가 엉기다가 하기 때문일까요. 태모필(胎毛筆) 일필휘지 그은 선들은 흩어져 구름이 되고 칠한 색들은 시나브로 무색이 되었습니다. 빛 가운데로 나를 밀어...
편집에디터2021.12.02 15:17대지의 노래 연주자들 "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의 찬 자리에 생각 난 것은 임뿐이라~ 보고 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 후로 일장서를 내가 못 봤으니 부모 공양 글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는가~" 유장한 선율이 광주전통문화관 서석당을 잔잔하게 울렸다.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있는 '쑥대머리' 대목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선율이 마치 시조와도 비슷하고 우리 전통의 가곡, 가사와도 비슷하다. 반주악기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악기편성 가믈란이다. 우리의 징과 비슷한 악기(공이라 한다)를 작은 것에서 큰 것 순으로 놓고 치는 주물 악기는 물론 우리의 고대 북을 닮은 듯한 너비가 기다란 북, 우리의 편경이나 편종을 연상하게 하는 크고 작은 악기들의 편성이 이채롭다. 우리로 치면 '궁중음악'이나 '삼현육각 잡힌다'라고 하는 악기편성을 닮았다. ...
편집에디터2021.11.25 13:52나주 동강 옥룡마을 할머니들의 한다리만다리. 이윤선 "한다리 두다리 거청대청/ 어록저록 막대 짚고 건네가/ 느그 삼촌 어디가 지장밭에 총 노로가/ 까투리 한나 투드렁 퉁 땡" 2002년 한 해 동안 목포대학교신문에 내가 연재했던 '영산강 민중생활사' 중 한 꼭지다. 명산나루 건너고 잿빛 물비늘 따라 영산강을 치올라 가면 강이 막힌 듯 다시 이어지는 곳, 곡강의 끄트머리 봉추와 옥정리, 장동리, 그리고 더 멀리 곡천리 등이 크게 에워싸고 있는 곳이 있다. 그 가운데 마을 몽송리에 들렸다. 90이 훨씬 넘거나 혹은 80객, 아니면 70객이다. 여기서 60객은 그야말로 청춘이다. 당시 영암댁으로 불리던 박청명(78세)씨, 가장 총(聰)이 좋은(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때때로 기억나는 옛노래들을 부르며 유년의 창을 두드리곤 했다. 그녀에게 노래는 타임머신이었을까. 열여...
편집에디터2021.11.18 16:14중국 연변 창극단 출범식. 이윤선 전통적인 판소리나 그 형식을 빌려 만든 가극(歌劇)을 창극(唱劇)이라 한다는 점 지난 연재에서 소개해두었다. '소리극', '뮤지컬' 등을 포괄한다. 하지만 '판소리극'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판소리를 기저 삼고 있는 노래극인데 왜 판소리를 걸어 호명하지 않았을까? 판소리 발생 300여년, 창극 발생 100여년, 수많은 호명들이 이 장르를 수식했다. 민요창극, 악극, 가극, 가곡, 국극, 여성국극 외에 딸딸이, 포장극장, 나이롱극장, 약장수극장 등을 포함 시킬 수 있다. 그 시초에 협률사라는 100여 년 전의 구성물이 있다. 20여년 전 내가 진도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있을 때, '민요창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노래극을 만든 적이 있다. 자세한 내력에 대해서는 졸고, 「민요창극을 통해서 본 지역문화콘텐츠 포지셔닝-진도에 또 하나 고려 있었네를 사례로...
편집에디터2021.11.11 16:43언제부터 창극(唱劇)이란 장르가 생겨났을까? 창극은 문자 그대로 창(唱)과 극(劇)의 복합 장르다. 창은 판소리를 가르키는 말이고 극은 연극을 말한다. 판소리로 하는 음악연극이라는 뜻이겠다. 오늘날로 말하면 뮤지컬이니 음악극이니 하는 따위가 이 범주에 속한다. 20여년 전 내가 진도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있을 때, '민요창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노래극을 만든 적이 있다. 극본은 고 곽의진 작가에게 맡기고 노래는 유장영 감독에게 맡겼는데, 내 의도는 판소리가 아닌 진도의 민요를 매체 삼아 연극을 꾸며보자는 것이었다. 방송 등 언론에서...
편집에디터2021.11.04 15:31사람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야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얀 비둘기는 얼마나 넓은 바다를 날아야 모래 위에서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들이 오가야 그것이 영원히 금지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답은 불어오는 바람에 있네. 이것은 노래일까 시(詩)일까? 음악일까 문학일까? 아니면 음악이나 문학이라는 장르일까, 사회현상으로서의 행위일까? 국립국악원에서 펴내는 '국악누리'에 올해 1년간 연재를 했다. 그 마지막 질문을 이렇게 던졌다. 독자들을 향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나 자 남도발라드 가수 김정호 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위 밥딜런의 노래, 아니지 시(詩)들을 줄곧 묵상해왔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를 노래로 호명해야 하나, 문학으로 호명해야 하나. 마르셀 그라네는 이렇게 얘기한다. "...
편집에디터2021.10.28 13:32고대도 귀츨라프 선교기념비와 기념비문, 이윤선 1816년 바질할 대령과 머레이 멕스웰의 영국 국적 군함 프리키트함 알세스트호(Alxeste)와 범선 리라호(Lyra)를 최초 영어성경 전래사건으로 비정한다. 16년 후, 귀츨라프의 애머스트호를 한문성경 전래와 실질적인 최초의 개신교 전도라고 한다. 지난 칼럼에서 이를 다루었는데 한 페친으로부터 조언을 받았다. 제너럴셔면호 사건과 대동강변 순교로 알려진 1866년 토마스 선교사의 한문성경 전래 이야기다. 이때의 성경을 어떤 병사가 벽지로 사용했다가 전도로 이어졌으며 개신교에서는 이를 큰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정보였다. 당시 서구의 침략에 분노한 조선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점과 더불어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오늘 짚어두고 싶은 것은 귀츨라프 일행이 도착했다는 정박지다. 이를 두고 충남 원산도와 고대도 간 다툼이 있었다. ...
편집에디터2021.10.21 16:27사전에서는 항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배가 안전하게 드나들도록 강가나 바닷가에 부두 따위를 설비한 곳'. 포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언제부터 이런 용어들이 사용된 것일까? 조선시대까지 '부두(埠頭)'를 항구(港口)로 표기한 예는 거의 없다. 고종 이후에야 무안항(務安港) 등의 용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것이 지금의 목포항이다. 1897년 10월 개항한 이후 무안항이었다가 1910년 목포부로 개칭하면서 목포항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배를 대어 사람과 짐이 뭍으로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라는...
편집에디터2021.10.14 17:03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서천군청 제공 6월 25일 어느 나라 배인지 이상한 모양의 삼범죽선(三帆竹船) 1척이 홍주(洪州)의 고대도(古代島) 뒷 바다에 와서 정박하였는데, 영길리국(英吉利國)의 배라고 말하기 때문에 지방관인 홍주 목사(洪州牧使) 이민회(李敏會)와 수군우후(水軍虞候) 김형수(金瑩綬)로 하여금 달려가서 문정(問情)하게 하였더니, 말이 통하지 않아 서자(書字)로 문답하였는데…. 1832년, 「순조실록」 32권 7월 21일 기사 내용이다. 지난 칼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전래자로 알려진 귀츨라프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이것을 이양선의 출몰과 관련하여 풀어본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성경을 전래한 사람이 귀츨라프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른바 대항해시대로 불리는 격동의 시기,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 유럽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동양을 침탈하던 때이다. 무역을 빌미 ...
편집에디터2021.10.07 17:17"외기러기 날아가 쉬는 곳이 어디냐/ 구름아 물어보자 너만은 알고 있지/ 외기러기 날아가 앉을 곳이 어디냐/ 바람아 물어보자 너만은 알고 있지/ 어릴 적 옛친구 지금은 무엇할까/ 내 고향 앞산에는 뻐꾸기 울겠지" 잘 알려진 김정호의 노래다. 매년 가을이 되면 이 노래를 떠올린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가을 우수(憂愁)와 자연의 섭리가 이 노래를 호출하는 모양이다. 기러기 노래는 미련의 정조(情操)를 반영한다. 찬바람 나는 계절, 이루지 못하거나 풀지 못한 심사를 기러기에 투사했다는 뜻이다. 기러기는 가을에 ...
편집에디터2021.09.30 17:03"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나는 오늘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주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합니다.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9월 21일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 문재인 대통령이 행한 기조연설 중 한 대목이다. 각국의 언론들이 주목했다. 지지하거나 ...
편집에디터2021.09.23 16:44명절 두부탕(소고기). 블로그 꾸니쑤니의 소확행에서 캡쳐 해마다 명절이 되면 어머니는 '밀백기'를 만드셨다. 추석과 설은 물론 유두 백중에도 빠짐없이 준비하셨다. 설날 필수적으로 장만하는 것이 조청(엿)이고 추석날 필수로 준비하는 것이 송편이라면 모든 명절을 통틀어 준비하는 음식이 '밀백기'다. 송편도 각각의 명절마다 준비하던 것이었지만 어느 시기부턴가 추석 음식으로 정착되었다는 점, 몇 차례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설날 가래떡을 찍어 먹기 위해 조청을 준비한다는 점도 지난 칼럼에서 소개해두었다. 그렇다면 왜 명절에 밀백기를 해야만 했을까? '밀+백기'에서 '밀'은 명절을, '백기'는 두부조림 혹은 두부탕을 말한다. 진도, 해남 등 남도 일부 지역에서 명절을 '밀'이라 한다. '밀'이란 명칭의 분포권은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잔존지역보다 훨씬 넓었을 것이다. ...
편집에디터2021.09.16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