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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도 전염병도 균형발전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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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도 전염병도 균형발전이 답이다.

게재 2020-02-24 15:22:12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 대제국도 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 로마제국은 낮은 출산율과 전염병 창궐로 멸망했다.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출산 포기는 살인에 버금가는 중죄"라며 '미혼세'까지 걷었지만 인구는 급감했고 나라는 쇠락했다. 5세기엔 말라리아 전염으로 군대는 전투력을 상실했고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로마제국 흥망사는 국가가 존속하려면 출산율이 적정선에서 유지돼야 하고 국민이 건강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사람 없는 국가는 상상할 수 없으며, 질병에 휩쓸리는 나라는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 조건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그 당위성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이 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고 전염병의 창궐 주기가 빨라지고 있지만 마땅한 해법이 없다는 점이다.

해법을 찾으려면 근본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 저출산과 전염병이란 난제를 추적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공통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밀집이다.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저출산 해법 마련이 쉽지 않고 전염병 대응이 어렵다.

저출산 문제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는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등은 사회적 밀도와 과도한 경쟁 때문에 젊은이들이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인간은 본인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과 후세대를 위한 재생산 본능이 있는데, 주변 환경이 경쟁적이거나 사람이 몰려들어 물리적 밀도가 높아진 곳에선 생존 본능이 앞선다고 한다. 먼저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후세를 위한 출산 의지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경쟁이 치열한 나라다. 서울이나 수도권의 물리적 밀도 또한 매우 높다. 좋은 일자리가 그 곳에 집중돼 있어 인구 과밀화가 심화되고 있다. 더욱이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구직자들이 몰리다보니 청년들은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많구나"하고 느낀다. 그로 인해 심리적인 밀도가 높아지게 된다. 심리적 밀도가 높아지면 압박감이 커지고 본인 생존에 급급하게 된다. 조 교수는 물리적인 밀도와 함께 심리적인 밀도가 높아진 것이 바로 한국 초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전염병 또한 인구가 밀집되고 숙주가 많을수록 창궐하기 쉽다. 로마제국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세계교역의 중심지 아니었는가. 그런 측면에서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은 취약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전체 인구밀도는 1㎢당 513명이지만 서울은 1만6136명에 달한다. (통계청 2017년 기준)

진단이 내려졌으면 신속하게 처방을 해야 한다. 도시 밀도를 낮추려면 청년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고향에서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굳이 집도 친구도 없고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 서울로 오지 않게 된다. 서울 등 특정 지역의 물리적 밀도가 낮아지고 청년들의 심리적 압박감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여유가 생겨야 출산이라는 재생산 본능은 가동된다. 이와 함께 도시 밀도가 낮아지면 전염병이 발생해도 감염속도를 늦출 수 있고 그 사이 방역과 감염자 치료가 가능하게 된다.

도시 밀도를 낮추는 방법은 정부와 정치권이 이미 잘 알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지방거점 도시를 육성하고 지역에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된다.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을 추진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강화해 각 지역별로 특색 있는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이유다. 지방분권을 이뤄지면 전염병 조기 종식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의 초동대처 능력도 훨씬 강화된다. 질병관리본부는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은 뒤 "감염병 대응은 지방정부의 역량이 최대 결정요인인 만큼 신속한 대응을 위해서, 지방정부의 대응·대비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초 연방제 수준 자치분권 국가 만들겠다고 공언한 것은 그런 효과를 역대 어느 정권 못지않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이 정부도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안타깝게도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는 희미해져 보인다.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제2 혁신도시 구상을 발표한 지 오래됐지만 오리무중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지역균형발전이 구두선에 그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김기봉 디지털콘텐츠·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