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 |
어떻게 된 것일까. 마술이라도 부린 것일까. 대부분 견제구가 빠지면 무탈하게 한 베이스를 더 진루하는 것이 야구다. 심지어 볼이 상대편 더그아웃으로 날아가기라도 하면 거기에다 또 원 베이스를 더 허용한다. 그런데 그날 그 견제구는 1루 펜스를 맞고 곧장 튀어 되돌아왔고, 1루수가 곧장 2루로 달리던 주자를 태그아웃시킨 것이다.
요즘 지은 야구장은 참 아름답다. 예술작품 같은 야구장의 관람석과 운동장에는 수많은 기하학적 각도가 숨어 있다. 내야의 각도와 달리 외야의 기울기는 다르다. 홈 뒤편은 좁고 수직에 가깝게 높지만, 내야에서 외야로 갈수록 넓어지면서 완만하다. 외야는 훨씬 간격이 넓고 심지어 열려있기도 한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구조이고 내려다보기 맞춤한 각도이다. 그라운드는 홈 베이스를 중심으로 부채를 펼쳐놓은 각도로 외야를 향해 있다. 내야는 사각의 베이스가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각기 각도를 가지고 제 자리를 잡고 있다. 각 베이스는 각도로 연결되어 있고, 선수들은 각도를 효율적으로 이용해서 달리거나 수비를 한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도 각도가 중요하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 한다. 하체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각을 이루며 던져야 좋다. 어깨로만 던지는 선수의 수명은 오래가지 않는다. 좋은 구질은 대체로 좋은 투구 자세, 즉 좋은 각도에서 나온다. 타자의 헛스윙을 끌어내기 위한 변화구 역시 다양한 각도로 떨어지기거나 솟아올라야 좋은 공이다. 투구 각이 중요한 것이다.
비디오 판독 제도는 경기중 순식간에 일어난 일을 심판의 시각으로만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대체로 아웃과 세이프를 판결할 때, 각도의 차이에 따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양한 각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카메라에 찍힌 여러 장면을 통해 판독한다. 외야 폴대를 향해 날아가는 공도 홈런이 되느냐 파울이 되느냐는 것도 마찬가지다.
야구는 선의 경기라고들 한다. 라인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야구는 선보다 그 위 공간에서 펼쳐지는 4차원 세계의 향연이다. 선들과 공간 사이의 수많은 각도와의 싸움, 즉 그만큼 각도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경기인 것이다.
수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각도이다. 수비를 잘하는 선수의 특징은 각도를 잘 좁힌다는 것이다. 대부분 스포츠가 그렇듯 방어보다 공격에 매력이 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최선의 방어가 공격이다. 아무리 수비를 잘해도 공격을 못 하면 이길 수 없다. 타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타격이다. 타격할 때는 날아오는 공을 바라보는 선구안, 즉 각도가 중요하다. 좋은 선구안이 좋은 타격을 만들고, 좋은 타격은 높은 타율을 유지하는 바탕이 된다. 선구안은 직구와 변화구를 구별하고, 변화구 중에 꺾이는 각도를 보는 시각이다. 좋은 타격 자세는 날아오는 공의 각도를 잘 볼 수 있는 자세일 것이고, 좋은 타자 역시 공의 각도에 대응하여 타격 각도를 잘 잡는 선수일 것이다.
구단이나 감독 역시 경기를 운영하는 안목과 더불어 선수를 보는 남다른 각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매해 선수를 선발할 때나 트레이드를 할 때 선발 기준이 중요하다. 좋은 구단이 가지고 있는 것은 선수 관리나 운영 못지않게 선수를 보는 안목 역시 각도이다. 좋은 코치는 선수의 잘못된 각도를 파악하여 선수가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각도를 수정해 주어야 한다. 감독과 코치의 각도에 따라 팀이 강팀이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달린 것이다.
야구뿐인가. 우리 삶 속에는 인간관계 속에, 생활 속에 수많은 각도가 숨어 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각도나 상대를 공손하게 대하는 존중의 각도는 클수록 좋을 것 같다. 욕망의 각도, 사랑의 각도, 침묵의 각도, 관계의 각도 등 감춰진 각도를 찾아 자신의 시각에 맞게 사는 것도 지혜롭게 인생을 사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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