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균의 사찰문화재 바로알기 25>【광주 약사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00호)】② 完  대좌 바닥에 펼쳐 놓은 널따란 부채꼴 옷 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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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균의 사찰문화재 바로알기
황호균의 사찰문화재 바로알기 25>【광주 약사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00호)】② 完  대좌 바닥에 펼쳐 놓은 널따란 부채꼴 옷 주름
  • 입력 : 2020. 12.23(수) 14:50
  • 편집에디터

사진1. 약사암 석조여래좌상 옛 사진(1979년 이전, 사진 '한국의 미 ⑲ 불상', 중앙일보사)

가체같은 나발 머리에 두르고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螺髮) 위에는 사발처럼 넓은 살 상투(肉髻)를 나지막이 얹어 과도하게 높아가던 비현실성을 극복하였다. 눈과 코·입술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약사암 석불에 구현된 나발은 그동안의 8~9세기 불상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주목을 끌어왔다. 이마 위와 후두부 쪽에만 굵직하게 머리카락을 꼬아서 가체加髢 머리처럼 나발을 둘렀다. 이에 비해 머리 정중앙은 나발 형태가 희미할 뿐이다.

선정禪定의 경지에 이른 자비스러운 미소

반쯤 감은 눈과 편안한 표정의 얼굴에서는 선정禪定의 경지에 이른 자비스러움이 배어나고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양쪽 귓불은 더 길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끝이 모두 파손되었다. 코도 마찬가지로 끝이 깨졌다. 이는 득남을 기원하며 돌부처의 코를 갈아먹는 풍습은 과거 이 나라 곳곳에 성행하던 민간 신앙으로 이른바 비슷한 것끼리는 감응한다고 믿는 유감 주술 영향이다. 코는 남성의 상징이니 아들을 낳기 위해서는 코를 떼어먹으면 효험이 있을 거라고 믿는 민간의 '기자치성祈子致誠'의 오랜 풍습이다.

오른팔 겨드랑이 아래를 파내는 석굴암 본존불 이후의 전통 계승

몸집은 전체적으로 당당한 편이나 어깨선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양 팔꿈치를 최대한 내리는 바람에 어딘가 약간 주저앉은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자세이다. 오른팔 겨드랑이 아래를 파내어 맨살의 청량감을 주는 석굴암 본존불 이후의 전통을 충실하게 담아냈다. 허리는 가늘게 묘사하여 상대적으로 가슴 쪽의 입체감이 풍만하다. 오른쪽 어깨는 맨살을 드러내고 등 뒤에서 왼쪽 어깨를 걸치고 내려온 옷은 가슴 앞에서 한 번 접은 뒤 몸에 얇게 밀착되어 상체의 굴곡이 잘 드러난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가리키고 왼손은 배 부분 아래 오른발 위에 얹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석가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마귀를 항복 받고 정각을 성취하였을 때의 깨달음을 지신地神이 증명했다는 항마촉지인.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표현이다. 돌 재질의 재료적 한계 때문인지 땅을 가리키는 '촉지觸地' 표현이 평면적으로 그치고 말았다. 왼발은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얹고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는 결가부좌이다.

상체보다 교차하여 얹은 두 다리의 폭은 넓고 낮아서 전체적인 비례는 정수리로부터 양어깨와 무릎으로 이어지는 정삼각형에 가까운 구도를 이뤄 매우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상체가 상대적으로 짧아지면서 촉지인을 취하는 팔이 자연스럽게 굽어지지 않고 'ㄴ'자에 가깝게 무릎에 붙인 경직된 모습은 9세기라는 시대와 광주라는 지역적인 특성이 모두 담긴 결과로 해석된다.

상대석에 펼쳐진 부채꼴 문양은 엉덩이에 깔고 앉은 옷자락 방석 끝 매무새

상대석 윗면에 넓게 펼쳐진 부채꼴 옷 주름. 우리나라 석불상 중에서 석굴암 본존불 다음으로 가장 아름답고 세련된 조형성을 완성한 빼어난 형태미이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왼쪽은 왼쪽으로, 오른쪽은 오른쪽으로 옷자락을 접어 넘긴 좌우 대칭으로 펼쳐 놓았다. 엉덩이 뒤쪽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이 가부좌하는 양다리 사이로 나와 부채꼴 모습을 입체감 넘치게 돋을새김하였다. 말하자면 엉덩이에 깔고 앉은 옷자락 방석 끝 매무새이다. 이러한 옷 주름은 신라하대의 석굴암 본존불에서 보이는 특징적 요소로 그다음 세기에도 그대로 계승된 것이다. 이러한 부채꼴 모습은 인도 초기 불상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석굴암 본존불(8세기)에서 등장하여 마애불이나 조선 후기 목불에 이르기까지 부채꼴 옷 주름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대좌에 새겨진 14기 사례를 분석해 보면 양다리 사이에 직접 조각해 연결한 경우와 상대석 윗면에 별도로 표현한 경우로 나누어진다. 약사암의 경우는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처럼 상대석 윗면 바닥에 널따란 옷 주름을 부채처럼 펼쳐 놓았다.

화려함 극치 앙련과 입체감 절정 복련이 이룬 앙상불

불상이 앉은 자리인 대좌臺座는 전형적인 연꽃무늬 대좌로 각각 한 개의 돌로 상·중·하대를 마련하였다. 상·하대석은 원형이고 중대석은 팔각형이다. 원형과 팔각형이 어우러진 연화대좌의 비례는 조화롭고 상·하대석에는 만개하는 연꽃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였다. 상대석은 밑으로 좁아지는 원반형으로 활짝 피어나는 홑꽃잎 연꽃(仰蓮) 여덟 개를 도드라지게 새겼고 연꽃 안에도 또 다른 꽃무늬를 새겨 매우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연꽃 사이사이 간판間瓣이라는 꽃잎을 표현하여 연못에서 가득 찬 연꽃의 충만함을 연출하였다. 간판과 앙련 중앙에 각을 주어 마치 16면처럼 장식하였다. 상대석 밑면에도 중대석과 만나는 괴임대를 두었다. 중대석은 8각으로 겹치는 두 모서리에 두툼한 모기둥을 두었을 뿐 장식은 없다. 하대석은 위가 좁은 원반형으로 상대석과 대칭되며 중대석과 만나는 부분에 4단의 괴임대를 두었다. 엎어 놓은 겹꽃잎 연꽃(覆蓮) 열여섯 개를 돋을새김하였다. 상대석과 마찬가지로 연꽃 사이사이 간판間瓣이라는 꽃잎을 표현하여 연지의 만개한 모습을 입체감 넘치게 재현하였다. 다소 평면적인 상대석의 앙련과는 달리 하대석 복련의 연꽃잎 표현은 굴곡진 조형성으로 인해 입체감과 생동감 넘친다. 더구나 연꽃 끝이 살짝 치켜 올라가 입체감이 절정을 이룬다. 일반적인 상․하대석의 연꽃잎은 같은 모양으로 대칭되게 배치하는 데 비해 약사암의 경우는 형태나 돌 재질까지도 다르다. 이러한 차이가 왜 발생하였는지는 의문이다.

지대석은 정방형으로 한 변의 길이가 153㎝이다. 지대석은 지대갑석․중석․저석으로 이루어졌으며 중석은 한 면에 양 모퉁이 기둥(隅柱)과 2개의 버팀 기둥(撐柱)으로 3등분하고 그 사이에 안상眼象을 새겼다. 이러한 지대석에 1단의 팔각받침을 만들어 팔각하대석을 올려놓았다.

석굴암 본존불 전통을 이어 온 9세기 불상

가는 허리에 상체가 짧고 넓은 무릎에 무릎 높이가 낮아지는 등의 시대적 특징을 잘 표현한 석굴암 본존불의 전통을 이어온 신라하대 9세기경의 대표적인 불상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경주 석굴암 본존불(국보 24호)과 유사하다. 원만한 상호와 당당한 어깨, 부드러운 의습의 표현에서도 신라하대 전성기 불상 양식의 특징을 잘 반영한다. 하지만 가슴의 옷깃이 반전된 모습에서는 9세기 불상인 '비로사 아미타 석불좌상'이 연상되고 유난히 길게 표현된 눈과 짧은 코, 도드라진 짧은 인중, 심하게 잘록한 허리, 앞으로 숙인 머리 등에서 균형감이 상실된 9세기 불상의 특징들도 발견된다.

발굴조사는 9세기 사찰 이름을 밝혀낼 유일한 방법

약사암 불상은 불상 명호를 밝혀줄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아 그냥 보편적인 부처상이란 뜻의 여래상이라 이름하였다. 더구나 9세기 이 절의 이름이 무엇인지에 관해 어떤 자료도 찾을 수 없어 막막하다. 다행히 석불과 같은 시기인 9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3층 석탑재가 마당에 복원되었고 절 주변에서 신라하대의 막새기와들이 발견되어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통한 접근을 간절히 소망해 본다.

무등산 약사암의 보물 돌부처와 삼층석탑. 증심사보다 역사가 더 오래된 고찰로서 이제라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야 한다. 돌 표면의 세척작업과 연꽃 대좌가 전부 드러나는 공양대로의 교체작업, 나아가서 효율적인 LED 조명을 통해 약사암 돌부처의 조형적 우수성이 잘 드러날 수 있게 하는 것도 문화재의 효율적인 관리의 한 방법이다.

2. 약사암 석조여래좌상 상호(사진 문화재청)

3. 약사암 석조여래좌상 상체(사진 문화재청)

4. 약사암 석조여래좌상 왼손(사진 황호균)

5. 약사암 석조여래좌상 대좌와 무릎(사진 문화재청)

6. 화려함의 극치 상대석 앙련(사진 문화재청)

7. 입체감의 절정 하대석 복련(사진 황호균)

8. 상대석 부채꼴 옷 주름(사진 황호균)

9. 석불암 본존불(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한석홍 촬영)

10. 약사암 삼층석탑(사진 황호균)

11. 약사암 삼층석탑 상륜부(사진 황호균)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