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참회하고 가진 것 줄여 함께 사는 방법 모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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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참회하고 가진 것 줄여 함께 사는 방법 모색해야"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지금의 위기는 인간의 욕망이 만든 사필귀정||소유지족으로 청렴하고 청정한 세상 만들어야||통일 없는 민주화나 평화는 어디에도 없어||낡은 이데올로기 청산·민주정부 선순환 시켜야
  • 입력 : 2021. 01.12(화) 11:07
  • 이용환 기자
지선 스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용환 기자
"반성하고, 참회하고, 가진 것 줄이고, 버리고, 천천히 함께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선 이사장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원년인 2021년을 맞아 전남일보와 신년 인터뷰에서 망념을 버리는 청정심을 강조했다. 이성이 만들어낸 지금의 문명이지만 반성과 초월로 통하는 길이 막힌 만큼 공생공존의 민주적 법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낡은 분단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적폐청산도 주문했다. 종교에 대해서도 그는 "종교가 돈과 조직으로 무장해 괴물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1980년 5·18광주항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지선스님은 1987년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 공동대표를 맡았고 그 해 서울 정동 성공회성당 종탑에 직접 올라 6월 항쟁의 시작을 알렸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잡혀가 내란음모죄로 옥고까지 치렀다. 장성 백양사의 방장직을 내려놓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애쓰는 그를 만나 새해 광주·전남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최근의 근황을 소개해 달라.

△'모든 것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백양사를 떠난 뒤 서울의 한 암자에서 아는 스님에게 방 한칸 얻어 살고 있다. 집세가 필요없고 숙식도 해결할 수 있어 더 없이 좋다. 종단과 총림에 대한 걱정도 줄어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 6대에 이어, 지난해 또 한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직도 맡고 있다. 지난 3년간 나름 성과도 있었지만 미처 못 해낸 과제들도 있는데, 그런 일들을 완수하라고 다시 중책을 맡겨주었다 생각한다.

-2번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꼭 이루고 싶은 현안이 있다면.

△민주인권기념관 짓는 일이 첫 번째 과제다. 지난 2018년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발표가 있었고, 그 해 연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관리를 맡았다. 올해는 착공에 들어간다. 민주인권기념관을 짓고 그 노둣돌이 하나 놓아지면 민주시민교육에도 더욱 힘써야 한다. 4년여 전, 오래 머물던 절집을 떠날 때 '국민 삶에 스며드는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을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영원히 지향해야 할 이상이면서 끝없는 과정이다. 새로운 시대와 세대 속에서 새로운 민주화운동 기념과 계승, 일상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국회에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은 당연히 이뤄져야 할 일이고, 빠를수록 좋다. 지금도 이미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됐다고 바로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이 되리라 보지는 않는다. 40년이 넘은 지금도 5·18의 주범이 누구이고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최근 전두환씨를 보면서 인간이길 포기했다는 생각을 했다.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도 했다. 무엇보다 구태의연한 작금의 정치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민화합과 우리의 미래를 위해 정치권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한국전쟁부터 4·3사건, 노근리사건, 보도연맹사건, 세월호사건 처럼 모든 조작된 사건들, 민주화운동이 희생된 사건 등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만큼 규명되지 않는 일들이 여전히 많다. 계속 관심을 갖고 해결해나가야 한다.

-코로나부터 조류인플루엔자까지 지구촌에 온갖 바이러스가 극성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조류인플루엔자, 이뿐 아니라 기후위기와 환경파괴까지 모두 인간이 만든 자업자득이다. 우리가 역사 안에서 받고 있는 모든 고통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만들어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극복할 길도 있다고 본다. 오늘날 인류역사상 가장 발전했다고 하는 현대 문명은 욕망을 바탕으로 한 무분별한 업보로 반성과 초월로 통하는 길이 막힌 것이 문제다.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가진 것을 줄이고, 버리고, 천천히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합리적 이성이 만들어낸 현대 문명이지만 반성과 초월로 통하는 길이 막혔으므로, 소유지족으로 청렴한 마음 청정한 국토, 청정한 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2017년 촛불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지만 갈길은 아직도 먼 것 같다.

△정치권의 부조화나 검찰개혁, 코로나, 집값 등이 국민을 힘들게 한다. 특히 정치권은 근본적으로 함께 살자는 공존의 법칙을 잃어버린 사람들 같다. 상대편을 이겨야 하는 적으로만 생각하고 민주화에 의한 법이나 윤리, 도덕적인 면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국민들은 생존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이기고 지는 약육강식의 구태의연한 모습들만 보여주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낡아빠진 분단 이데올로기와 군사독재가 민중을 착취하는 구조, 재벌과 권력이 민중과 싸우는 현실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혁신과 개혁이다. 좋은 정권을 창출했던 만큼 믿고 따라줬으면 좋겠다.

-광주군공항 이전으로 광주와 전남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지혜를 달라.

△광주와 전남이 각자의 입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따질 것이 아니라, 현재 실제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 살아야 하는 사람들과도 이익을 나눠가지면서 미래 광주·전남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지역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자들이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다 보면 좋은 지혜가 나올 것이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광주시와 전남도의 고민이 깊다.

△얼마 전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밝혔다. 광주·전남도 주도적으로 인프라 등을 고민하는 균형발전을 세울 수 있으리라 본다. 무엇보다 이런 문제는 광주시와 전남도가 시·도민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 요즘 방탄소년단과 트롯 열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고 세계화됐다는 것을 실감한다. 약소민족의 경험을 되새겨 BTS처럼 자신감을 갖고 더 큰 미래,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남북관계가 좀체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새해 남북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반통일 반민주적인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통일이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고, 기껏 하는 소리가 평화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통일이 담보되지 않는 민주화나 평화가 어디 있겠는가. 특정 이데올로기나 특정 국가를 적대시키는 사고방식은 과감하게 벗어야 한다. 민족이라는 말도 요 근래에는 구태의연한 소리로 취급하는데, 민족이나 통일, 평화나 민주, 이런 것은 다 하나의 개념으로 통한다. 따로 전속할 수가 없는 말들이다. 낡은 이데올로기나 남북 간에 해가 되는 언행들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평화와 통일, 민주와 인권은 모두 하나의 개념인데 이런 의식이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일부 종교인의 지나친 정치적 행보에 논란이 많았다. 종교인으로서 종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종교가 현실참여나 시대정신에 맞춰 지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종교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좋지않은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돈과 조직을 갖고 정치 세력화되고 사회의 압력단체로 전락한 모습도 보인다. 상징조작, 대중조작, 처세주의, 개인주의, 신비주의를 신도들에게 내세워 철저한 기복신앙으로 변질된 것도 안타깝다. 행세주의나 인기주의가 만연하고 자기 종교의 이익을 위해서 사회 전체 구성원에게 해가 되는 법이나 제도를 만들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모습도 보인다. 정치나 경제, 교육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종교 특유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종파가 대오각성해서 공생공존의 민주적 법칙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반성하고, 참회하고, 화해하는 정신으로 지금까지 지구촌 모든 생명에 대해 지어온 업보를 고민해야 한다.

-광주·전남 지역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해 코로나19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새롭고 낯선 환경에 놓였다. 또 코로나 시대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일상의 민주주의를 잘 실천하는 것이 곧 나라와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주변에 힘없고 약한 이들이 소외되고 있지는 않은 지 한번쯤 살펴볼 수 있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해가 밝았다. 지역민에게 덕담을 부탁한다.

△올해 신년사를 '위국민주'라 썼다. 민주시민이 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우리 모두가 민주시민이 돼서 더 좋은 나라를 만들 길 기대한다. 내가 어렸을 때 한국전쟁으로 피난을 갔다. 누구나 못입고 못먹어 구호물품에 의존했던 어려웠던 시절, 굶어 죽는 사람도 지켜봤다. 하지만 지금은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 국력 또한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두가 함께 사는 것'이다. 민주정권이 계속 집권해서 세계에서 하나뿐인 분단 국가가 통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 지금보다 더 각성된 민주국가, 통일국가가 완성될 때까지 허리띠를 졸라 매고 민주정부를 도와주자. 민주시민이 하나로 뭉쳐서 군사독재정권의 잔재나 비민주적인 언론, 부와 권력을 대대로 이어받는 세력을 견재해 민주정부를 선순환시켜야 한다. 올해 신년사처럼 모두가 '위국민주'의 자세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글·사진=이용환 기자

◇지선 스님 약력

△장성 출생 △백양사 출가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이사장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공동의장 △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