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고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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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고래 꿈
  • 입력 : 2021. 01.14(목) 11:12
  • 편집에디터

일본 오키나와 '혹등고래 '. 뉴시스

고래 꿈을 꾸었다. 고래 뱃속으로 들어갔던 것 같은데, 집채만한 그 안에 또 하나의 마을이 있었다. 신년 벽두의 어떤 기다림이 있었던 것일까? 휴식이 필요하다는 무언의 경고였을까? 기억을 뒤져 옛 칼럼을 찾았다. 2017년 이 지면을 통해 고래 고기를 먹지 않는 흑산도 사리 사람 박유석씨 집안의 고래 이야기를 썼더라. 작년에는 한 종교 월간지에 고래의 신화세계를 다루기도 했다. 그랬구나. 고래에 대한 지극한 생각들은 왜 내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던 것일까. 깊디깊은 고래 뱃속, 넓디넓은 고래 등에 대한 무슨 함의라도 있었던 것일까? "어떤 사람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고래에게 잡아먹혔다. 뱃속을 들어가 보니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도박판을 벌이고 있었다. 곁에서는 옹기장수가 옹기지게를 세워두고 도박구경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도박을 하던 사람이 옹기 짐을 잘못 쳐서 박살이 났다. 옹기 파편에 찔린 고래가 날뛰다가 죽고 말았다. 고래 뱃속에 있던 사람들이 옹기파편으로 고래의 배를 째고 탈출하였다." 손진태가 조선 각지의 민담을 모은 '조선민담집'(1930)의 한 내용이다. 이보다 앞선 기록이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 제6권 만물문(萬物門)이다. '한 어부가 고래 뱃속으로 삼켜졌고, 그 속에서 칼로 창자를 그어 고래가 토해내는 덕분에 살아나왔으며 이후로 머리가 벗겨져 다시는 털이 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탄주어(呑舟魚)' 즉 배를 삼킨 물고기라는 별칭이 그래서 나왔다. 큰 인물을 비유할 때 '탄주지어(呑舟之魚)라 한다.

배를 삼킨 물고기, 고래에 대한 전언(傳言)

"울진 둔산진에 사는 한 백성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전복을 작살로 찔러 잡다가 고래를 만나 배와 함께 고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래 배속에 들어가 보니 작살을 휘두를 만큼 넓었으므로 온 힘을 다해 사방을 찌르자 고래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를 토해냈다. 그가 밖으로 나와 보니 온몸은 흰 소처럼 흐물흐물해졌고 수염과 머리털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구십이 넘도록 살다가 죽었으니, 천명이 다하지 않았기에 고래 배 속에 들어가서도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성대중(1732~1809)이 쓴 '청성잡기(靑城雜記)'에 나오는 내용이다. 성대중은 서얼가문 출신으로 박지원, 박제가, 남공철 등과 교유했던 인물이다. 100여 편의 국내외 야담을 모아놓은 책이다. 취언, 질언, 성언 세 부분으로 나뉜다. 이병도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1964년 잡지 '도서' 제6호에 김화진이 전문을 소개하였고,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하였다. 살이 흐물흐물해지고 수염과 머리털이 하나도 없었다는 대목이 흥미롭다. 다시 태어났다는 비유일까? 마치 갓 태어난 아이를 설명하는 듯하다. 고래 뱃속에서 살아 돌아온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일까? 고래가 생명을 구해준 이야기를 연전에 소개했으나 그 일부를 다시 옮겨둔다. 흑산도 사리에 살았던 박유석씨 얘기다. 한번은 혼자 물고기를 잡으러 먼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배가 망가져 표류하게 되었다. 그 때 고래 한 마리가 다가와 박유석씨 배를 등에 태우고 왔다. 박씨를 해안에 안전하게 내려준 고래는 유유히 풍랑 속으로 되돌아갔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이다. 그 이후부터일 것이다. 박씨 집안은 고래 고기를 먹지 않는다. 생명의 은인인 고래를 고기로 먹을 수 없어서였으리라.

이 어둠이 내게로 와서

이 어둠이 내게 와서/ 요나의 고기 속에/ 나를 가둔다./ 새 아침 낯선 눈부신 땅에/ 나를 배앝으려고/ 이 어둠이 내게 와서/ 나의 눈을 가리운다. / 지금껏 보이지 않던 곳을/ 더 멀리 보게 하려고 / 들리지 않던 소리를/ 더 멀리 듣게 하려고/ 이 어둠이 내게 와서/ 더 깊고 부드러운 품안으로/ 나를 안아준다./ 이 품속에서 나의 말은/ 더 달콤한 숨소리로 변하고/ 나의 사랑은 더 두근거리는/ 허파가 된다./ 이 어둠이 내게 와서/ 밝음으론 밝음으론 볼 수 없던/ 나의 눈을 비로소 뜨게 한다!/ 마치 까아만 비로도 방석 안에서/ 차갑게 반짝이는 이국의 보석처럼/ 마치 고요한 바닷 진흙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김현승의 시 '이 어둠이 내게 와서' 전문이다. 재론의 필요가 없는 성경 요나의 물고기(요나 2:10)와 부활을 노래한 시다. 시인의 죽음 체험이 반영되어 있다. 요나의 상징적인 죽음과 고래의 의미들을 적절하게 읊었다. 고래는 이미 문학적으로나 설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일종의 은유가 되어 있다. 포경수술을 고래잡이에 빗대는 이유는 따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실제로 고래 경(鯨)자에는 고래의 수컷, 들다, 쳐들다 등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여름만 되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며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불렀던 것일까? 베트남의 고래 제사 사례와 페로어의 잔인한 고래 사냥 사례도 연전 언급해두었으니 참고 바란다. 우리도 울주 반구대 암각화가 있고 동해를 경해(鯨海) 즉 고래의 바다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또 문화권마다 내면화된 고래들이 있다. 신화와 문학으로 고래를 노래한지 오래다. 저마다의 가슴 속에 고래 한 마리씩 키우고 있는 셈이다. 새해 벽두에 고래 꿈을 꾸었던 것은 성경의 요나를 염두에 두고 재생하는 고래를 톺아보기 위한 것이었을까. 고래에 투사된 이름은 모든 문명권을 횡단하여 추출하더라도 '재생'의 의미들을 포획할 뿐이다. 여러 가지 신화와 의례들, 종교적 상관물을 관통하는 고래의 속성이 재생과 부활의 은유라는 뜻이다. 코로나로 인한 곤핍과 경제적 궁핍이 가중된 시절을 가로지르며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꿈꾸는 것은 이 어둠이 내게로 와서 건네는 한 마디 주문인 것일까. "지금껏 보이지 않던 곳을 더 멀리 보게 하려고/ 들리지 않던 소리를 더 멀리 듣게 하려고"

남도인문학팁/ 고래의 섬 흑산도

고래 하면 누구나 장생포를 떠올린다. 울주 반구대가 있고 고래축제까지 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주사람 백호 임제도 <풍악록(楓岳錄)>에서 "큰 새처럼 생긴 몸집이 새까맣고 물을 뿜어대며 눈발 같고 소 울음소리를 내는" 고래를 언급했다. 강원도 간성을 여행하며 남긴 기록이다. 동해 외에 남도에서 고래가 거론되는 지역은 어디일까? 대표적인 곳이 흑산도다. 사람을 살린 고래 이야기 때문만이 아니다. 다시 인용해둔다. 1900년도 초기 흑산도는 참고래, 대왕고래, 귀신고래, 혹등고래 등 대형 고래들을 포획하는 기지였다. 이주빈이 쓴 학위논문을 보면 일제가 설치한 대흑산도 포경근거지에서 1926년부터 1944년까지 한반도 근해 1/4이 넘는 27.4%의 고래를 포획했다. 주강현의 논의를 빌어 독도의 강치 멸종사와 흑산도 고래 집단 학살사건을 동일한 의미로 독해하고 있다. 관련 근거들이 많다. 고래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흑산도 예리 뒷산은 지금도 곤삐라산(金比羅, 비를 오게 하고 항해의 안전을 수호하는 신)이라 부르는데, 이곳에 신사를 세우고 도리이(鳥居)의 좌우 양 기둥을 고래턱뼈로 세우기도 했다. 흑산도를 다시 고래의 섬으로 부르게 하자는 이주빈씨의 제안은 단지 마을역사 추적이나 마을 가꾸기의 차원을 넘어서는 얘기다. 지금의 황폐해진 어로환경과 해양환경을 뒤집어보는 성찰의 제안이다. 환경을 생태나 경제로 읽는 눈이 필요한 것처럼 풍경을 문화로 읽는 눈이 필요한 시절이다.

지난 2016년 울산고래축제 개막을 앞두고 장생포 고래바다여행선이 울산 남구 장생포항 남동쪽 6.2마일 해상에서 참돌고래떼 2000여마리를 발견, 돌고래들이 바다에서 유영하고 있다. 뉴시스

1960년대 흑산도 예리 곤뿌라산 입구 고래뼈-흑산 전시관에서 촬영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는 여름철 동해안 소형고래류 목시조사를 벌인 결과, 지금까지의 소형고래류 조사 중 가장 많은 돌고래와 밍크고래가 관찰됐다고 16일 밝혔다. 참돌고래 무리가 유영하고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