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작가' 박범신, 일흔이 돼 독자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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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작가' 박범신, 일흔이 돼 독자곁으로
성추행 논란 아픔 딛고 두번째 시집 출간
  • 입력 : 2021. 03.18(목) 13:35
  • 박상지 기자
구시렁구시렁 일흔

박범신 | 창이있는작가의집 | 1만8800원

성추행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은교'작가 박범신이 두번째 시집을 들고 돌아왔다. 신간 '구시렁구시렁 일흔' 속 140여편의 시에는 희노애락애오욕 그리고 그 너머의 시간들이 담겨져있다.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에 대한 고마움과 작가로서 독자곁에 머물고싶은 간절함을 시를 통해 전하기도 했다.

"평생 감금되어 있던 나의 시인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 아침이에요. 만약 용서받을 기회가 있다면 당신의 식탁 위에 시인이 된 내가 '가시 많은 생선'으로 눕도록 허락해주세요. 당신은 '슬로비디오로 내 몸의 가시를 바르고' 그럼 먼 데서부터 비가 내리고, 그리고 저기 저 호수가 한 뼘씩, 감청색으로 돌아눕는 꿈을 지금 꾸고 있답니다. 당신이 내 몸의 가시를 천천히 바를 때 시인이 된 내가 얼마나 행복할지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이 지나가요.-꿈 중에서-"

'청년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시집엔 '일흔'이라는 나이를 붙이게 된 까닭에 대해서도 밝혔다. '구시렁구시렁 일흔'은 '성게' '생막걸리' '부작용 없는 슬픔' 등 많은 과정을 거쳐 완성된 제목이다.

이에대한 대답은 '제목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감수성도 예민하게 유지해야 되고, 현역으로 계속 써내야 되고" 웃으며 나는 덧붙였다. 반은 참말이었고 반은 엄살이었다. 그 말을 할 때조차 기실 내 안에서는 숨이 다 죽지 않은 '청년작가'가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러나 짐짓 그 자의 눈빛, 말티즈의 날갯짓을 무시했다. 내가 오래 겪어온 고통의 연원이 거기에 있었다. 너로 인해 더 이상 비명을 지르고 싶지 않아. 나는 속으로 말했다. 더구나 시집이 아닌가. '아마추어시인'의 권리로 '프로청년작가'를 소금에 절여 숨을 죽이려는 시도가 나를 위해 나쁠 건 없다고 여겼다. 기운을 좀 더 빼서 되롱되롱 무심해질 수만 있다면 일흔 살이든 여든 살이든 나이가 왜 축복이 되지 않겠는가. -제목이야기 중에서"

140여편의 시들은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등 9개 주제로 엮었다.

박 작가는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여름의 잔해' 당선으로 데뷔했다. 초기에는 주로 소외계층을 다룬 강렬한 사회 비판적 중·단편소설들이 담긴 소설집 '토끼와 잠수함' '덫'을 펴냈고, 이어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들 중 한사람으로 활동했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