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우리가 잊어버리면 그때 온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데스크칼럼
재난은 우리가 잊어버리면 그때 온다
홍성장 기획특집부장
  • 입력 : 2021. 06.15(화) 13:35
  • 홍성장 기자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아침에 큰아들 생일상을 차려놓고 일터로 향했다. 그의 일터는 2년 전쯤 고생 끝에 차린 작은 식당이다. 코로나19 탓에 줄어든 손님, 그는 점심 장사를 마치면 집으로 향했다. 이날도 평소처럼 식당 반찬거리 장만을 위해 전통시장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불과 두 정거장, 그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집에 들른 막내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석 달 전 수술한 아내가 있는 요양원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그게 딸과의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버지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사랑스러운 막내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한낮에 펼쳐진 기가 찬,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참변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 잘못도 없이 그렇게 9명의 '이웃'이 세상을 떠났다. 사건을 접한 이후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희생된 이들이 남들 같지 않아서다. 주변의 친구일 수 있었고, 가족일 수 있었다. 그만큼 어처구니없는 참사였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참사가 빚어졌던 다음날 밤 TV에 방영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의 주제가 '삼풍백화점 붕괴 참변'이었다. 의도된 편성은 아니었다. 이미 일주일 전 예고됐던 방송이었다. 26년 전 빚어졌던 삼풍백화점 붕괴, 방송에서 소개된 삼풍백화점 붕괴 이유는 충격적이었다. 첫 번째 원인은 잦은 설계변경이었다. 그 중심에 돈이 있었다. 80㎝였던 기둥 굵기는 시야가 가린다는 이유로 60㎝로 변경했다. 그 안에 들어갈 철근 역시 돈을 이유로 절반가량 줄였다. 천장과 기둥을 연결하는 지판 두께 역시 줄였고, 심지어는 설치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모두 서울시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했던 일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모든 것이 며칠 뒤면 다 가능했다. 역시 돈(뇌물)의 힘이었다.

붕괴에 따른 최악의 희생을 막을 수도 있었다. 이미 10일 전부터 붕괴 전 조짐이 있었다. 건물 전체에 균열이 시작됐고, 5층 식당가엔 원인 모를 싱크홀까지 생겼다. 붕괴 당일 시설보수 직원들이 경영진에 이 사실을 알렸고, 경영진도 대책회의를 할 정도로 '비상'이었다. 그런데 경영진의 조치가 어처구니없었다. 처음에는 '입조심 하라'며 직원들의 입단속을 시켰다. 사실이 손님들에게 알려져 매출이 떨어질 것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붕괴 조짐이 심각해졌을 때 경영진은 비로소 '대피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백화점 손님들에게 내려진 대피명령이 아니었다. 귀금속과 고가의 상품을 먼저 대피시켰다. 당시 전시 중이던 고가의 보석류를 시작으로 그림, 도자기 등을 사람보다 먼저 대피시켰다. 삼풍백화점 비극이 중심이었던 당시 삼풍그룹 이준 회장의 이야기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왜 빚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것은 손님들에게도 피해가 가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 그렇게 지상 5층, 지하 4층의 화려한 백화점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사라져버렸다.

제작진의 의도와 달리 이날 방영된 삼풍백화점 참사는 전날 빚어졌던 '광주 동구 참사'와 묘하게 겹쳤다.

'광주 동구 참사'도 삼풍백화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로 명확히 밝혀지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삼풍과 꽤 닮았다. 삼풍백화점처럼 광주 동구 참사의 원인 중 하나도 '돈'이었다. 애초 평당(3.3㎡) 철거비용이었던 28만 원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으로 어처구니없는 금액으로 줄었다. 줄어든 철거비용은 '날림 공사'가 됐고 결국엔 '참사'로 이어졌다.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결정적 기회'가 있었던 것도 삼풍과 닮았다. 위험한 철거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수차례 행정기관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행정기관은 '이행실태를 관리하고 있다''안전조치 명령 공문을 보내 조치했다'는 형식적 답변으로 일관했다.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행정기관이 단 한 번만이라도 위험한 철거현장에 나가봤더라면 어처구니없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터다. 삼풍백화점 참사 방송을 지켜본 이들이 "삼풍과 닮았다. 대체 세월이 지나면서 바뀐 게 뭐가 있냐"며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우리 역시 부끄럽긴 마찬가지다.

'재해와 재난은 우리가 잊어버리면 그때 온다.' 일본 속담이다. '참사를 둘러싸고 누구는 정의와 단죄를 말하고 누구는 회복과 화해를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기록과 기억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기억이 기록되지 않는 이상 진실에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95년 한신 대지진을 기억하기 위한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에 적혀있는 문구다. 수많은 재해와 재난을 겪으면서 그네들이 터득한 교훈이다. 그들이 재난에 대응하는 방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르다. 쉽게 잊어버리고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현재 삼풍백화점이 있는 곳에는 화려한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위령탑을 세우고 싶었지만, 위령탑이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반대에 부딪혀 세워지지 못했다. 현재는 양재 시민의 숲 가장 안쪽 구석진 곳에 삼풍백화점 피해자들의 위령탑이 서 있다. 부정과 부패, 당시 팽배했던 적당주의가 원인이었던 1977년 이리역 폭발 참사도 마찬가지다. 이리역 폭발사고 희생자 위령탑은 익산역 외진 곳 한쪽 편에 세워져 있다. 이게 우리가 재난에 대응하는 방식이고, 세월이 흘러도 어처구니없는 재난이 반복되는 이유다.

"참사는 사람을 가려서 오지 않는다. 오늘 아침 손 흔들고 나간 내 아이가 당할 수 있는 일이고, 내 배우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삼풍백화점 생존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경고'다.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세상을 떠난 9명 이웃의 명복을 빕니다.

홍성장 기자 seongjang.h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