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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곤음의 시간' 다 지나고 소생의 꽃 설중매 곱게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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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곤음의 시간' 다 지나고 소생의 꽃 설중매 곱게 피다

설중매
죽음으로부터 소생 혹은 환생
'재생의 꽃'으로 여겨져
충절·고결·강직한 마음 상징
시인 묵객들이 사랑했던 소재

소녀의 피로 붉은 기운 불어넣어
놀랍게도 봄에 피어난 홍매화
하여 잉태와 모성의 여성성
재생과 부활의 에너지 응축

게재 2022-02-03 17:14:12
설중매
설중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고려말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이 읊은 매화시이다. 매화를 노래한 우리나라 최초의 시로 알려져 있다. 흰 눈이 수북이 쌓인 골짜기는 필시 고려말의 혼란기를 뜻하는 것이다. 혼란의 구름이 머물러 있으니 눈 속에 피는 설중매를 마주할 길이 없다. 매화를 기다리는 마음은 나라의 혼란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심정을 읊은 것이다. 석양에 홀로 청청하게 서 있었다는 행간을 읽으면, 깊은 눈 속에 매화가 피어있듯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와중의 격변을 그려볼 수 있다. 그저 눈 속에 피는 한 송이 매화를 읊은 것이 아니다. 이색이 누구인가.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이다.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와 더불어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 이름이 길은(吉隱)이다. 큰 스승님들이 지어주신 대여섯 개의 호를 나누어 쓰다가, 한 페친의 권유로 시방은 이 이름을 내 호로 사용하고 있다. 어찌 삼은의 언저리라도 갈 수 있겠는가만, 길하고 풍요로운 본질을 그윽이 품고 초야에 은닉해 남은 삶을 꾸리겠다는 마음만은 변함없다. 옛 선비들이 앞다투어 설중매를 노래하고 그 기운에 의탁해 세사에 더럽혀진 마음을 씻고자 했던 이유도 대개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2008년경 본 지면에 소개했던 내용이기도 하지만, 졸저 <남도를 품은 이야기(다할미디어, 2022)> 한 대목을 다시 가져와 본다. "역학적으로 보면 겨울은 곤음(坤陰)에 해당한다. 시간을 분절하고 공간을 나눠 오행의 의미를 부여할 때 만물이 생장을 정지하는 죽음의 계절을 겨울로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치 해 뜨는 동쪽을 새싹의 색깔인 청색으로 정하고 해가 지는 서쪽을 색깔 없는 흰색으로 정하는 이유와도 같다. 그래서다. 매화는 죽음으로부터 소생하는 혹은 환생하는 재생의 꽃이다. 하고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단연 매화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

고향 산은 아득히 음기가 서려 있고

대지의 바람은 차고 눈은 깊이 쌓였는데

창을 올리고 편히 앉아 주역을 읽노라

가지 끝에 흰 것 하나, 하늘 뜻을 보이네

삼봉 정도전이 노래한 <매설헌도(梅雪軒圖)>이다. 나는 이 시를 호우의 철학으로 풀이하여 정몽주가 읊은 봄비와 비교해본 바 있다. 겨우내 곤음의 동굴 속에서 검은 피와 붉은 피를 튀기며 새로 올 봄에 대한 혈전을 치렀을 그들의 심경을 읽어내 보고자 했던 것이다. 삼봉 정도전은 이후 이성계를 도와 유교 조선을 기획하고 건국에 성공한다. 주역을 읽으며 올려다본 가지 끝의 흰 것, 그것이 새로 맞이한 삼봉의 봄이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목은 이색의 시는 처량하기 그지없다. 분명 백설 잦아진 골 양지바른 어느 언덕에 설중매 만발했을 텐데, 기울어가는 석양을 홀로 바라보며 갈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고려가 망하지 않고 심기일전 불교와 무신권력을 혁명했더라면 목은은 눈 속의 매화를 발견한 기쁨을 노래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삼봉을 승리자로만 읽는 것은 아니요 목은을 패배자로만 읽는 것도 아니다. 목은은 줄곧 김구용 정몽주 이숭인 등을 학관으로 채용해 신유학의 보급과 발전에 기여한다. 유교와 불교의 융합을 주장함과 동시에 도첩제(度牒制)를 실시해 승려의 수를 제한하고 불교의 폐단을 줄이려고도 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이 강화도로 쫓겨나자 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옹립한다. 이성계 세력이 권력을 잡자 여러 곳으로 유배되었고 1392년 정몽주가 피살되자 이에 연루되어 또 유배 생활을 한다. 이성계의 끊임없는 출사 종용이 있었지만 끝내 고사하고 여강(驪江)으로 가던 도중에 생을 마감한다. 문하에 충절을 지킨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조선왕조 건국에 공헌한 제자들도 많이 배출된다. 정도전, 하륜, 윤소중, 권근 등이 그들이다. 변혁이나 혁명의 의미를 서로 달리 해석한 때문이었을까?

홍매화는 어떻게 붉은 꽃이 되었을까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다. 한 임금이 매화꽃을 어찌나 사랑했던지 매화라는 궁녀까지 총애하게 되었다. 이것을 시기한 신하들이 모의하기를, 매화가 역적들과 밀통해 임금을 죽이려 한다고 했다. 매화는 참소를 받고 처형되었다. 매화꽃 때문에 궁녀 매화를 잃었다고 생각한 임금은 전국의 모든 매화나무를 없애라고 명을 내렸다. 하지만 어떤 시골에서 매화나무를 끔찍하게 사랑했던 한 소녀가 몰래 매화나무를 길렀다. 발각되어 심문을 받게 되었다. 소녀는 이것이 일반 매화와는 다른 빨간 매화라고 우겼다. 신하들이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소녀는 매일 밤 손끝을 매화 가시에 찔러 피를 냈다. 꽃망울에 붉은 피를 흘려 붉은 기운을 넣기 위함이었다. 날마다 피를 흘린 소녀는 이내 죽고 말았다. 봄이 되자 놀랍게도 그때까지는 전혀 보지 못하던 홍매화가 피었다. 매화와 관련된 이야기는 주로 충절이나 정절, 고결한 의지, 강직한 품성 등을 나타내는 데 소환되는 특급 콘텐츠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동양의 시인묵객들이 매화를 노래하거나 그림으로 그리고 혹은 도자기 등의 예술품으로 표현했던 이유도 이런 심성을 흠모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녀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잉태와 모성의 여신성(女神性), 봄이 상징하는 재생과 부활의 에너지들이 응축된 콘텐츠라는 점 재론이 필요치 않다. 어찌 이것이 옛일에만 국한되겠는가. 마침 우리집 안마당을 둘러보니 설중매가 이미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하지만 정초 한발의 서슬이 채 가시지 않아서일까. 봄이 아득하기만 하다. 문득 석양에 홀로 서서 갈길 몰라하는 목은을 마주한다. 눈 녹는 그 길에 대통령선거가 있다. 올해도 봄날의 정령 매화가 지천으로 필까? 정치로 말하자면 격조는 언감생심 차마 부끄러워 설중매를 거론할 수조차 없는 현실인데 말이다. 가난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살려고 안빈낙도를 꿈꾸는 일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듯하다. 포은과 목은, 삼봉의 혈전들이 그러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곤음의 시간, 그저 매일 밤 손끝을 매화 가시에 찔러 피를 내야 할 모양이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달리 해석하는 것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예컨대 봄의 전령 매화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는 무모함을 눈 뜨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것은 역사를 거스르는 퇴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