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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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산수국
  • 입력 : 2022. 07.03(일) 16:38
  • 최도철 기자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의 정표로 꽃 선물을 하는 문화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어쭙잖은 연서(戀書)보다 한 묶음 꽃다발에 더 진한 의미가 담겨 있으니 꽃은 때때로 언어로, 문자로 역할도 한다.

꽃은 종류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연인들이 가장 많이 건네는 장미는 '사랑과 우정'을 나타내고,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백합은 '순결'을 뜻한다.

노란 프리지어의 꽃말은 '당신을 응원합니다'이고, 히야신스는 '겸손한 사랑'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늦봄이나 초여름에 결혼하는 신부 손에 들리는 하얀 수국의 꽃말은 '진심'이다.

우리 조상들도 꽃말로 교신하는 문화가 있었다. 기방의 기녀들은 마음을 주고 싶은 임을 보면 자신의 화선(花扇)을 그 앞에 넌지시 밀어 놓았다. 하지만 수청들 뜻이 전혀 없으면 하얀 박꽃을 머리에 꽂고 자리에 앉았다.

여염(閭閻)에서 연정을 호소할 때도 간혹 꽃이 쓰였다. 꽃말이 수줍음인 앵두꽃을 신발속에 남몰래 넣어두었던 것.

안개비 오락가락하는 날, 수제비 한 그릇 먹을 요량으로 지산동 분식집에 가다가 녹슨 양철 지붕 아래 터질 듯 피어있는 수국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햇살과 물에 따라 색이 변한다하여 팔선화(八仙花)라 부르는 수국을 보노라면 한 일간지에 실렸던 시가 생각난다. 허형만의 '산수국'이다. 여름날 새벽 숲길을 걷다가 탐스럽게 핀 산수국을 만난 시인은, 꽃을 보는 순간 사랑스러웠고 오달졌던 시절이 떠올라 두레박으로 샘물 퍼 올리듯 그 시절의 그리움을 써내려간 것이다.

"흐벅지게 핀 산수국 오져서/ 차마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가담가담 오시어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우비 갈맷빛 이파리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가슴 졸이는 물방울/ 나에게도 산수국처럼 탐스러웠던/ 시절 있었지 물방울처럼 매달렸던 사랑 있었지/ 오지고 오졌던 시절/ 한 삶이 아름다웠지/ 한 삶이 눈물겨웠지" ('산수국'-허형만)

비 그치고 초록이 짙어지자 여기저기서 수국 축제가 한창이다. 수국명소로 이름난 제주 휴애리와 사려니숲, 부산 태종사는 물론 이 지역 해남 포레스트 수국, 도초 섬수국도 가히 볼만하다고 한다.

여름 한낮 땡볕에 물가는 끝없이 올라 팍팍하기 그지없는데, 한가롭게 꽃타령이라니…. 세상살이 힘들지만 그래도 수국처럼 조롱조롱, 올망졸망 서로 가까이 손 내밀고 마음 내주면 이내 좋은 날 오지 않을까.



최도철 기자 docheol.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