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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농민운동 현장을 가다-(4)도초도, 항일 공동체 정신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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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농민운동 현장을 가다-(4)도초도, 항일 공동체 정신의 고장

게재 2022-08-07 15:49:12

1956년생인 조도일 씨는 할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태어난 다음 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 부모에게서 "암울한 시대, 생전 고문으로 수난을 겪었다"고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그러다 1982년 발행된 한 신문에서 할아버지 이름 석 자 '조상수'를 봤습니다.

"1925년 도초에서 …조상수 등이 중심이 되어 소작인회를 결성했다. 이듬해 9월 소작인회는 청년회관에서 300여명의 소작인들과 함께 소작료 부당징수 거부를 결의한 후 그해 소작료를 지주들에게 납부하지 않고 마을 앞에 야적시켜 놓은 채 지주들에게 소작인들의 결의를 통보했다."

평생 농사짓는 법만 배웠던 조 씨는 "도초의 농심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다른 섬에 비해 도초의 소작쟁의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며 "젊은 날 수배돼 도망 다니느라 이름도 없이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위해 도초 명예가 하루빨리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