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爲人)과 위민(爲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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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위인(爲人)과 위민(爲民)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 입력 : 2022. 09.04(일) 14:25
  • 서울=김선욱 기자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위인설관(爲人設官)이란 한자성어가 있다. 사람을 위해 원래는 없는 관직을 만든다는 뜻이다. 특정한 사람을 위해 불필요한 자리를 만드는 것이니 정실인사를 꼬집을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자기가 총애하는 누군가에게 벼슬을 주기 위해 직책을 억지로 만드는 꼴인데,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억지로 맞추려는 것과 관련된 그리스신화가 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다. 프로크루스테스는 힘이 엄청나게 센 거인이자 노상강도다. 아테네 교외의 언덕에 살면서 강도질을 일삼았다. 그의 집엔 철로 만든 침대가 있었다. 나그네를 붙잡아 침대에 눕혀 놓고 키가 침대보다 길면 그만큼 잘라내고, 침대보다 짧으면 침대 길이에 맞추어 키를 늘여서 죽였다고 한다. 사실 그의 침대엔 길이를 조절하는 장치가 숨겨 있었다. 어떤 나그네도 침대의 길이에 맞을수 없어 죽임을 당했다. 자기의 기준이나 생각에 맞춰 타인의 생각을 바꾸려는 독단, 아집, 횡포 등을 말할 때 쓴다. 나라의 근간인 법과 원칙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제멋대로 해석하고 '재단'하면 우리의 법치주의 사회는 무너지게 된다.

요즘 정치권에 위인설관을 빗댄 '위인설법'(爲人設法) 논란이 뜨겁다. 특정인을 위해, 혹은 특정인을 제거하기 위해, 법을 바꾼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28전당대회 과정에서 '당직자 기소시 직무 정지' 내용을 담은 당헌 80조를 개정했다. 당직자가 비리 혐의로 기소됐을 때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당헌에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당무위원회에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문구를 넣었는데, 이게 논란이 됐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을 위한 꼼수 당헌 개정'이란 비판이 거셌다.

국민의힘은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과정에서 당헌 96조를 개정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를 당대표 직무대행 권한으로 비대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했는데, 결과적으로 법원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큰 혼란에 빠졌다. 비대위는 다시 새 비대위를 띄우기 위해 당헌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있다. 이 또한 '이준석 축출'을 위한 개정이란 비판이다. 집권여당은 축출이란 이름으로, 제1야당은 방탄으로 논란을 자초했으니, 국민들의 시선이 따가울 수 밖에 없다. 덩달아 민생도 뒷전이다. 지금 국민들은 '위인'이 아닌 '위민(爲民)'을 묻고 있다.

서울=김선욱 기자 seonwook.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