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집 방치 개 50마리… 끊임없는 동물 학대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사회일반
쓰레기집 방치 개 50마리… 끊임없는 동물 학대
남구 주택서 수년째 ‘애니멀 호딩’
푸들 33마리 눈 괴사 등 긴급치료
주민들 “악취·소음 시달려 고통”
견주 “소유권” 남구 “사건 송치”
“학대 매뉴얼·구호자금 등 필요”
  • 입력 : 2023. 04.12(수) 18:04
  •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
최근 유기동물보호단체 ‘유엄빠’에 의해 구조된 50여마리의 푸들이 방치돼 있던 광주 남구 월산동 한 주택의 내부. 유엄빠 제공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잤어요.”

최근 유기동물보호단체 ‘유엄빠’가 ‘개들이 계속 울부짖는다’는 신고를 받고 찾아간 광주 남구 한 주택의 모습은 처참했다. 입구에 산처럼 쌓여있는 오물투성이 종이 상자에서는 악취가 진동했고, 부서진 대문 한쪽은 나무판자로 어설프게 막아져 있어 마치 ‘폐허’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 사이로 ‘비명’ 같은 개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박민희 유엄빠 대표는 “사람은 물론 동물도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구조가 시급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광주 남구에서 수년째 집에 푸들 수십 마리를 방치한 ‘애니멀 호딩(animal hoarding, 자신의 보살핌 능력을 벗어나 동물을 키우는 행위로 학대의 한 유형)’의 사례가 적발됐다. 전문가들은 애니멀 호딩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눈 없고, 다리 절고…’

지난 10일 찾은 광주 남구 월산동 한 주택. 이곳은 동물단체 유엄빠에 의해 구출된 푸들 50여 마리가 갇혀 살던 곳이다.

이 앞을 지나던 주민들에게 해당 주택에 대해 묻자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인근에서 거주하는 70대 나모씨는 “개들이 짖기 시작한 지 4~5년은 된 것 같다. 밤에는 개 울음소리가 골목 안쪽까지 들린다”며 “민원도 넣어보고, 직접 (견주에게) 말도 해봤는데 견주가 되레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 모두 포기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박모씨는 “관리가 안 되니 냄새가 심해 주민들이 질색을 했다. 옆집은 창문도 못 열고 살 정도였다”며 한숨 쉬었다.

유엄빠에 따르면 견주는 “길에서 한두 마리씩 데려왔던 개들이 교배하면서 최대 80마리까지 늘어났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들이 서로를 물어 죽이자, 견주는 ‘머리가 나빠지거나 힘이 없으면 개들이 서로 물지 않을 것’이라며 개들을 때리고 굶겼다고도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주택에선 총 53마리의 푸들이 구조됐고, 이 중 33두가 눈이 괴사하거나 종양이 있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긴급 치료에 들어갔다. 박 대표는 “구조견 대부분이 아사 직전의 영양실조 상태에다 질병까지 앓고 있었다. 전형적인 ‘애니멀 호딩’의 사례다”고 말했다.

남구는 견주에게 동물학대 혐의가 있다고 보고 격리 조치를 한 뒤 경찰 수사를 진행, 지난달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지난 1월 유기동물보호단체 ‘유엄빠’에 의해 구조된 50여마리의 푸들이 방치돼 있던 광주 남구 월산동 한 주택의 외부. 강주비 기자
●‘격리·치료·보호’ 세부적 근거 마련 필요

동물보호법 제46조에 따르면 반려동물에게 최소한의 사육공간 제공 등 사육관리 의무를 위반해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을 유발시키는 행위를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광주·전남 경찰의 동물보호법 위반 검거 인원은 증가하는 추세다. 광주의 최근 5년간 동물보호법 위반 검거 인원은 △2018년 8명 △2019년 14명 △2020년 23명 △2021년 14명 △2022년 30명으로 지난해 급증했다. 전남은 △2018년 29명 △2019년 30명 △2020년 24명 △2021년 28명 △2022년 40명 등이다. 하지만 이중 기소 송치된 인원은 같은 기간 광주 40명·전남 107명에 그친다.

특히 남구에서 적발된 ‘애니멀 호딩’의 경우 고의성이나 상해의 정도를 입증하기 어려워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임용관 광주동물보호협회 위드 대표는 “애니멀 호딩을 적발해도 견주가 ‘밥을 줘도 안 먹는다’, ‘아파서 죽었다’는 식으로 말하면 조처를 할 수 없어 사실상 법이 무용지물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애니멀 호딩 문제를 단순 ‘동물 학대’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애니멀 호딩 주인의 대부분은 고령이거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등 취약계층이 많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애니멀 호더는 인간관계가 단절된 노인이거나 저소득층인 경우가 많다. 이들에 대한 치료 및 생활을 보전해주기 위해 동물복지와 사회복지 주무 부처가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며 “지자체별로 애니멀 호딩 의심 신고 접수 시 학대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고, 피학대 동물에 대한 긴급 구호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동 동신대학교 반려동물학과 교수는 “(애니멀 호딩이 발생한) 지자체의 동물보호소가 포화 상태라면 구조견들을 다른 지자체로 보내 격리·보호할 수 있도록 지자체 간 연계를 가능케 하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