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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 있다', 2010, 출처 테이트 모던 홈페이지 뉴욕현대미술관에서는 2010년 3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매일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장장 736시간 30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와 관람객은 작은 목재 테이블에 앉아 서로 말없이 마주보기만 한다. 그런데 정동의 수행성을 보이던 작가가 흔들리던 순간이 있었다. 한 때 옛 연인이자 작업 파트너였던 울레이(Ulay)가 앞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직 응시만 해야 한다는 규칙을 깨고 작가의 내민 손을 울레이가 맞잡았다. 1975년 처음 만나 10여 년 넘게 함께 해온 커플은 1988년 봄날 3개월 간 만리장성의 양 끝에서 서로를 향해 걸어오는 이별 퍼포먼스 '연인-만리장성 걷기'를 기점으로 헤어졌다. 2,000㎞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절반씩 걸어 중간지점에서...
편집에디터2021.04.11 14:19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 모습.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아시아 최대 미술 축제인 광주비엔날레 개막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애초 지난해 9월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공동체의 안전과 회복에 동참하고자 두 차례 연기를 했던 터이다. 올해로 26돌 맞은 광주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의 동향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측정하는 바로미터로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모더니즘 시기 흐름을 주도했던 사조의 쇠락과 함께 영향력을 행사했던 미술관이 변화와 위기를 겪는 동안 비엔날레라는 미술 제도가 1990년대 이후 담론을 생산 및 확대하는 통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1995년 세계화의 기류 속에서 광주비엔날레 태동 즈음 아시아 미술의 부상이 감지되었다. 아시아 작가 16인이 참여한 퐁피두센터의 '대지의 마법사'(1989년)전을 비롯해서 후 한 루(Hou Hanru)와 한스 ...
편집에디터2021.03.28 14:56장 미셀 바스키아 'Cabeza', 1982, 출처 장 미셀 바스키아 홈페이지 신디 셔먼, '무제', 2010,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시대의 온도는 저마다 다르다. 19세기 과학적 합리성과 진보, 이성 중심의 차가웠던 모던 시대를 통과하고 1960년대는 사회적·정치적 열기로 뜨거웠다. 그 발화점은 파리였다. 1968년 5월 샤를르 드 골(Charles De Gaulle) 정부의 교육 제도에 반대해 수업을 거부하는 학생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는 노동자와 연대로 확산되었다. 프랑스 뿐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미국 등 세계적으로 연결되었던 68혁명은 견고하게 지탱해온 기존 체제에 균열을 일으켰다. 베트남전 등 전쟁과 냉전에 대한 반발과 함께 그동안 주류였던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담론에서 제 3세계, 여성, 성 소수자 등 주...
편집에디터2021.03.14 15:01데미안 허스트 작 '살아있는 누군가의 마음에서 불가능한 물리적 죽음' (1991). 데미안 허스트 홈페이지 1988년 7월 런던 남동부 도크랜드 항만청사의 빈 창고에서 도발적이고 불경스러운 전시가 열린다. 꾸깃꾸깃한 금속 더미, 총탄에 머리가 골절되는 것을 보여주는 라이트 박스, 흙더미에서의 나체 퍼포먼스 등 모호함이 난무하는 미술학도들의 아마추어 전시였음에도 이목을 끌었다. 영국 현대미술 아이콘이 된 'yBa'(young British artists)의 태동인 '프리즈'전이다. 골드스미스 대학 재학 시절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기획했고 동급생이거나 졸업생이었던 사라 루커스(Sarah Lucas), 게리 흄(Gary Hume) 등 16명이 참여했다. 당시 23세에 불과했던 허스트는 영리하게도 흥행을 위해 공략할 이들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전시회...
편집에디터2021.02.14 14:09앤디 워홀, '블랙 빈', 1968, 출처=휘트니 미술관 홈페이지 도시의 현란한 네온사인과 각종 광고는 소유 욕구를 부추긴다. 스타들의 화려한 일거수일투족이 담긴 이미지들도 연일 쏟아져 나온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기호에 의해 소비가 강요되는 자본주의 시대 허상을 말했듯이, 우리는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가상과 실재의 경계가 모호한 현실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소비하며 살아간다. 최근에는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온라인 다매체를 유영하며 소비사회는 더욱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미래에는 누구나 14분 안에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팝아트 대명사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도래를 일찌감치 예감한 듯하다. 이젠 유명인 뿐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의 먹고 구입하고 즐기는 일상들이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가 되어 소셜 네트...
편집에디터2021.01.18 14:50폴 세잔 작, '사과와 와인 잔이 있는 정물', 1877-1879. 필라델피아 미술관 제공 팬데믹 시대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한 해의 끝자락에 위태롭게 서있다. 2020년은 그 여느 해보다 혼란스러웠고 혹독했다. 학생, 주부, 자영업자, 직장인 등 모두가 낯선 일상에 적응하고자 이토록 분투했던 적이 있었던가. 이처럼 예측불가한 일들이 평온하던 삶의 영역을 침범해왔듯, 인생의 어느 순간에 난관과 역경은 초대받지 않는 손님처럼 불쑥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시점과 감도, 통과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혹한기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현대 미술사를 개화한 예술가들에게도 힘든 시절은 있었다. 예술을 향한 열정과 끈기로 감내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현대 미술사에 기록되고 기억되고 있다. 후기인상주의자 폴 세잔(Paul Cézanne)은 모더니즘의 기초를 제공하면...
편집에디터2020.12.27 14:04코로나-19가 불러온 생활의 변화들은 지대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공간과 정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단다. 쓸모없는 물건들은 치우고 구매를 절제하는 미니멀라이프 또한 각광받고 있다. 일상을 간소화하고 소유에 가치를 두지 않는 소박한 삶의 태도는 절제력 없이는 수행하기 어려울 듯하다. 미술에서도 불필요한 요소를 없애고 사물의 본질만을 추구하는 사조가 있다. 정제된 기하학적 형상의 절제미와 단순함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미니멀리즘이다. 1960년대 초 미국 미술계는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환점에 있었다. 현대미술의 중심축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동시킨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을 중심으로 한 추상표현주의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형식주의 모더니즘 담론이 도전 받던 시기였다. 반격은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주도했다. 미니...
편집에디터2020.11.29 14:47바실리 칸딘스키, 'Swinging', 1925, 출처 테이트 갤러리 홈페이지 잃어버린 1년이라고 해야 할까. 연 초 시작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한 해가 어느새 끝자락에 들어섰다.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다니던 평범했던 일상이 그리워진다. 인간은 유약한 존재인지라 외부 환경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코로나 블루'에 이어 '코로나 레드'라는 신조어가 공감이 간다. 이럴 때일수록 미술로 침체된 기분을 다독여보는 것은 어떨까. 인류 최초 작품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이래로 예술은 사회적 요구에 반응하면서 변화해왔다. 구석기에는 사냥의 성공을 위한 주술과 염원이었고 중세에는 교리를 전하는 수단 이었듯, 시대의 파고 속에서 예술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감성과 소통을 위한 역할로 확장되었다. 현대미술이 태동한 19세기 말 과학의 발전으로 ...
편집에디터2020.11.15 14:26리처드 세라, '기울어진 호', 1981-1989, 권미원 저 '장소 특정적 미술' 책 발췌 1981년 뉴욕 맨해튼 연방 광장에 길이 36m, 높이 3.6m의 오목한 강철판이 설치되었다. 일상적 공간을 대담하게 가로 지르는 이 녹슨 대형 철판에 대해 "보행을 방해하는 폭력적 점거", "정부청사로 대변되는 국가권력을 향한 정치적 투쟁" 등 존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이 작품은 법적 소송과 공청회 등의 과정을 거쳐 철거되었다.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기울어진 호'는 8년 간 논쟁 끝에 추방의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이 때 리처드 세라는 법정에서 "작품을 설치된 장소에서 제거하는 것은 그것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리처드 세라가 각인시킨 '장소 특정성'은 1970년대 이후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다. 20세기 초 모더니즘 미술...
편집에디터2020.11.01 14:03히토 슈타이얼, '태양의 공장' 설치 장면, 2016,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발화된 20세기 초는 진보와 개발의 화려함을 누리고 있었다. 도시화가 심화되었고 과학과 기술, 통신, 산업 등 전 분야가 급속히 발달한 고속화의 시기였다. 입체주의와 미래주의는 당대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이 주창한 격변의 시대를 대변하는 시간 개념을 추종하면서 '가속의 미학'을 화폭에 반영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들의 파편화되고 분절된 이미지에서는 에너지와 역동감이 발산되고 있다. 러시아의 구성주의 또한 근대 공업에서 파생된 신 재료를 사용하면서 역학적·기하학적 표현으로 기술을 찬양했다. 이탈리아 시인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가 '미래주의 선언'에서 기계 문명을 예찬하고 속도감을 새로운 미(美)로 표현하려 했듯...
편집에디터2020.10.18 15:05올라프 엘리아손, '날씨 프로젝트', 2003, 출처 올라프 엘리아손 홈페이지 2003년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터빈 홀에는 2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렸다. 거대한 인공태양과 뿌연 안개로 가득 찬 공간에서 사람들은 빛의 파동 안으로 소멸해가는 듯하다. 노란 빛을 발산하는 수백 개 램프로 만든 둥근 인공태양은 인간을 압도하며, 공기 중에 미세한 안개는 시야를 가려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환경 문제 등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뤄온 올라프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의 대표작 '날씨 프로젝트'이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순식간에 수증기 마냥 증발해버린 인류의 오늘을 작가는 예측이라도 했던 걸까?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거대한 가속도의 시대를 거치...
편집에디터2020.09.27 14:09앤디 워홀, '타임 캡슐–27'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팝아트의 아이콘 앤디 워홀(Andy Warhol)에게는 매우 비밀스러운 작품이 하나 있다. 그의 사후까지 극소수 지인들 외에는 아무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 온갖 기념품과 잡동사니 컬렉션 '타임캡슐-27'이 바로 그것이다. 앤디 워홀은 1974년부터 영수증, 신문 기사 등 잡다한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1987년 사망하기까지 13년 동안 상자 가득 채워나갔다. 창고에는 600개 이상의 박스가 쌓여갔다. 그는 인생 전체를 아카이브 한 것이다. 당대 최고의 부와 명성을 누렸던 앤디 워홀은 왜 그토록 자신을 수집하고 기록 했던 걸까?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1995년 출간한 '아카이브 열병 : 프로이트적인 흔적'에서 부재하는 기록과 기억의 근원을 찾아 회귀하려는 아카이브를 향한 반복적인 강...
편집에디터2020.09.06 14:09어셈블 작, '그랜비 포 스트리츠 프로젝트', 2013~, 어셈블 홈페이지 제공 2015년 말 국제 미술계가 한차례 들썩였다. 2010년 결성된 20대의 젊은 건축가와 디자이너 18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 어셈블(Assemble)의 터너상 수상은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토니 크랙(Tony Cragg),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등 시각 예술 분야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이 상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상을 주관하는 테이트 브리튼은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등 통상적으로 여겨지는 현대미술 매체가 아닌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선택한 것이다. 유기적인 집단 어셈블 스튜디오는 쇠락해져가는 영국 항구도시 리버풀의 그랜비에 2013년 예술적·민주적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한 때 번화가였지만 철거 위기에 놓인 그랜비의 낡은 주...
편집에디터2020.08.23 14:44미얼 래더맨 유켈리스, 메인터넌스 아트 워크 설치 장면. Ronald Feldman Gallery 홈페이지 4월부터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이 병행되더니 벌써 여름방학이란다. 초등학생 아들은 '집콕' 생활에 매우 흡족해한다. 코로나-19 여파의 최대 수혜자는 아들이 아닐까한다. 아이를 돌봐주는 시댁이 있어 그나마 수월하게 직장은 다니고 있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 배로 늘어난 가사와 육아로 엄마들의 고충은 여느 때보다 최고치이다. 그런데 돌봄 노동은 삶을 유지하는 필수조건이건만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이처럼 저평가된 가사와 양육의 정당한 사회적 가치를 요구하는 여성 노동에 대한 예술적 개입이 시도되어왔다. 1970년대 페미니즘 미술의 맥락 속에서 여성의 전통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수공예를 비롯해서 그동안 변방에 머물렀던 '집...
편집에디터2020.08.02 17:40코로나19 여파로 일상이 달라졌다. 직장, 학교, 쇼핑, 여가 등 삶의 전 분야에 걸친 패러다임이 순식간에 전환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대적 요구 속에서 연결 방식도 진화 중이다. 생생한 대면의 현장이었던 공연과 강연, 전시 등도 디지털 기술을 장착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면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연결되고 소통하는 새로운 트렌드인 '온택트(Ontact)'가 가속화된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인간의 속성을 협업이라고 봤듯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초유의 힘든 상황 속에서도 획기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미술 현장에서는 1990년대 이후 다층적인 관계의 탐색이 본격화됐다. 지난 수 십 년 간 협업, 공유, 만남, 상생, 협력, 상호작용, 참여, 매개 등의 관계지향적인 용어가 유행처럼 생산되었다. 미디어와...
편집에디터2020.07.19 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