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의 주요 격전지 중의 하나인 장흥 석대들 전투. 이곳은 순절한 동학농민군을 안장한 곳이다. 1894년 가을, 3만여 명의 농민들이 관아를 점령하는 등 초기에는 사기가 올랐으나 근대 무기로 무장한 관군과 일본군 앞에 낫과 죽창을 들고 뛰어든 농민군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다. 막 추수가 끝난 들녘을 피로 물들여가며 쓰러져 간 이들이 수천이다. 1989년 공설운동장을 만들면서 무더기로 발견된 1,699기의 유골을 뜻있는 자들이 힘을 모아 이곳 제암산에 이장했는데 대부분...
2024.11.28 16:21내몽골의 서부 깊숙한 곳이다. 칭기즈칸의 몽골군에 패망한 서하(西夏) 왕국의 변방. 사막 속의 흑성(黑城)을 찾아가다가 그 언저리에서 노란 단풍으로 물든 호양나무 숲을 만났다. 사막에서 이런 멋진 풍경을 만나게 될 줄이야. 어디선가 본듯하다 했더니 중국 무술영화 ‘영웅’의 무대였단다. 성벽과 불과 몇 개의 불탑만이 사막 속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흑성. 접근을 불허해 애간장을 태우며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다가 이런 오아시스를 만나게 된 것이 위안이 되었다. 사막에도 열악한 환경...
2024.11.14 17:39우연히 만난 소녀다. 양림동 선교사들 흔적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비어있는 한 낡은 건물 안을 들여다보다가 그곳에 홀로 서 있던 그녀를 보는 순간 사실 좀 놀랐다. 낯선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소녀 또한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더니 다소 상기되고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이 소녀는 지금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차림인지라 여기가 뭐 분장실이라도 되는가 하고 두리번거려 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은연중 문화적 잠식을 느끼게 하지만, 상상의 나래는...
죄를 면하고자 했다.2024.10.31 16:35일본 아스카에 있는 서양인이 백제가 보고 싶다고 찾아왔다. 반가운 일이어서 안내 겸 동행했다. 대표적인 곳들을 거치면서 그의 진지한 눈빛에 놀라다가 익산의 미륵사 터를 찾았다. 참 거대하고 섬세한 백제의 석탑이다. 긴 세월에 온전한 모습을 지켜내지 못했지만 근래의 발굴 작업 과정에서 출토된 화려한 사리장엄구와 그 안에 들어있던 금제사리봉영기로 인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이 모습은 2009년 발굴하기 직전의 자태다. 물론 이 방향에서는 지금 모습...
2024.10.17 10:56살다 보면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이 일하고 상관없을지라도 새로움에 대한 도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무엇을 얻겠다 가 아니라 그냥 몸부림치는 나를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요즘 세상에 탐험이라는 말이 어울리지도 않고, 오지(奧地)라고 말하는 곳도 없다 하겠지만, 그래도 찾아가 볼 만한 곳은 있다. 티베트고원 동서 횡단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피어난다. 먼 옛날에 구법승들이 천축국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악했다. 도를 구하면서 죽고...
2024.10.03 16:511937년이니까 우리 한민족 고난의 시절이다. 지도층의 무능과 앞다투어 나서는 매국노들로 인해 나라를 빼앗긴 설움에 어디에 있든 그 삶이 고단했다. 민심을 내팽개친 관리들과 일제의 폭압을 피해 스스로 새 삶을 찾아 떠난 곳이 바로 조상의 얼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간도 지방과 대륙의 곳곳이었다. 연해주의 원동 일대에서 살아가던 그들을 ‘고려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들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스탈린의 갑작스러운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멀고도 먼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내팽개쳐...
2024.09.19 10:431402년 우리 선조들이 만든 최고의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꼼꼼히 살펴 복원하고 그 지도 속 현장 답사에 나섰다. 그중의 하나가 중앙아시아의 ‘아랄해’다. ‘강리도’에는 그 어디에도 국경선이 존재하지 않는 열린 세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오늘날 이 바다와 같은 호수는 실크로드의 선상에서 우즈벡과 카자흐 두 나라에 걸쳐있다. 우즈벡 서북쪽의 변방 ‘무이 낰(Mo′ynoq)‘이다. 그 지도 속의 호수는 간데없고 ‘삭사울’이라는 가시풀만 자라는 사막 속에서 배들...
2024.09.05 15:28얼마 전이 광복절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 기뻐하던 때를 떠올리는 날이다. 그런데 이제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별칭 ‘용산총독부’에서는 독립기념관장에 매국으로 가는 친일파를 임명하는 만행을 저지르더니, 난데없이 아직 광복이 아니라면서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공영방송에서는 그 광복절에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를 흘려 내보냈다. 이게 어디 정상적인 국가인가? 살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보게 된다.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본받기 위해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다. 암울한 시절을 보낸 그들의 흔적을 살피고 ...
2024.08.22 13:08불볕 아래 광활한 사막이 펼쳐졌다. 순간적으로 고요가 흐르는 듯하더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갑자기 내달렸다. 저절로 흘러나오는 함성과 함께. 꽉 막힌 반도에 갇혀 지내다 보니 이 낯선 광경 앞에서 나오는 본능적 발로인가. 연암 박지원이 요동 벌판을 첫 대면 하면서 읊었던 “호곡장(好哭場)이니 가이곡이(可以哭矣)로다!”가 생각나고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시구절도 떠오른다. “한 잔 술에 만 리가 보이도다. 저 사막 너머에도 내 술친구가 있으려나.” 아득...
2024.08.08 13:54창밖에는 바다가 있어요 날이 무덥고 뜨겁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때가 되면 다 지나가는 것이라 여기고 어쩔 수 없이 견디고 있는 것이 우리 아니던가. 와중에 어떤 이들은 멋진 여름휴가를 계획해 떠나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에어컨 밑이나 근처의 계곡에서 시원한 수박으로 달래보려 하지만 세상을 말아먹고 있는 잡놈들 소식에다 불행한 일들이 연일 들려오고 있으니 더욱 열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여기 창밖에 바다를 불러왔다. ...
시원한 바람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가져오고.2024.07.25 18:44남국의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었다. 찰랑거리는 물결 소리를 들으며 야자수 어우러진 백사장을 걷노라니 내가 먼 곳에 와 있음이다. 그 백사장 산책길에서 뜻하지 않은 만남이 있었다. 거대한 코끼리다. 나처럼 산책 중인지는 모르겠으나 야생으로 떠도는 것은 아닌 듯. 수영하거나 산책하는 자들 사이에 끼어든 이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로 평범한 풍경이 달라졌다. 낯선 풍경으로 보이지만 낯익은 풍경으로 여겨진다면 세상이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음에 당신의 시간이 다...
2024.07.11 10:14배고프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돼지꿈을 꾸면 떡을 얻어먹게 된다고 좋아했었다. 또 생긴 것이 그런 것인지 복 받으려면 돼지를 닮아야 한다고 했고. 그렇다고 누구한테 그렇게 생겼다고 말하면 좀 곤란해지기 일쑤다. 어쩜 듣는 돼지 선생도 기분 나빠할지 모르니까. 여행 중에 보니까 돼지도 꼭 우리 속에서만 키우는 게 아니었다. 요즘 시류가 개나 고양이를 가족이라 하면서 같은 침대까지 쓰면서 애정으로 돌보는 것을 보면 돼지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이 성토할 일이다. 하물...
2024.06.27 14:25철학의 땅이라는 인도 대륙을 여행 중이었다. 어떤 이는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다짐하고 왔다지만, 나는 그 당차고 무서운 다짐에 놀라울 뿐 그저 만나고 떠나고 하면서 흘러 다녔다. 여행이 별것이던가 새로움과의 만남이 이어지고 그 속에서 내 안의 우주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결코 헛되지 않은 시간일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가 잘났다고 난리다. 그러나 그 잘난 것들이 모여서 이 세상의 주인인 양 푸른 별 하나를 좀먹고...
2024.06.13 17:22서부 티베트의 성지 ‘수미산’을 찾아가고 있었다. 워낙 척박한 지대여서 마을을 지나거나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멍멍하게 흘러갔다. 그래도 이따금 멀리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들이 보여 지루함을 덜 수 있었고 이대로 가면 세상의 끝이 나오려나 했을 때 몇몇 유목민 천막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의 흐름도 다르고, 방향도, 공기도 없는 혹성에 불시착한 기분이 이런 것인가? 꼬락서니가 별반 다리지 않는 나였지만 한 아이가 달려오다 말고 멈칫거...
2024.05.30 17:35반사경 같은 거울이 서 있다. 무슨 용도로 그 자리를 지키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저절로 그 거울을 올려다보게 된다. 낯설게 느껴지는 내 모습이 그 안에 있으면서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하고 묻는 듯. 괸시리 쑥스러워지고 말지만 내 뒤에 비치는 세상 모습에 탈출구를 찾는다.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술에 취한 것도 아니다. 일그러진 자화상인가 싶었는데 일그러진 세상이 용용하게 거기 있다. 요즘 세상이 날로 지저분해져 홧김에 염불한다고 했나! 아니면 ...
2024.05.16 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