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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하면 대나무, ‘대나무’하면 죽녹원이 먼저 떠오른다. 죽녹원은 공원으로 꾸며진 대숲이다. 하늘이라도 찌를 것처럼 쭈욱- 뻗은 대나무를 보면 눈이 후련해진다. 대나무의 맑고 청신한 기운도 마음속까지 상쾌하게 해준다. 댓잎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나직하게 들려주는 연주음도 감미롭다. 대숲에서 즐기는 죽림욕도 좋다. 온갖 시름 다 잊게 한다. 피를 맑게 하고, 공기를 정화시켜주는 음이온 덕분이다. 실제 대숲의 체감온도가 숲밖보다 4∼7℃ 낮다. 대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한 것도 이런 연유다. 대숲에서 이슬을 먹고 자라는...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4.07.25 18:44‘날이 저물어 구례현에 이르니, 일대가 온통 쓸쓸했다. 구례읍성 북문 밖으로 가서 잠을 잤다. 주인은 이미 산골로 피난 갔다고 한다. 곧바로 손인필이 곡식을 갖고 찾아왔다. 손응남은 올감(早枾)을 바쳤다.’ 1597년 8월 3일 자 이순신의 〈난중일기〉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돼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첫날 구례에서의 이야기다. 때는 여름 무더위가 끝나고, 초가을 내음이 묻어나기 시작한 양력 9월 13일이었다. 이순신은 손응남이 갖고 온 올감을 한입 베어 물며 원기를 되찾았다. 올감은 이른 감, 갓 수...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4.07.11 18:13‘기행가사(紀行歌辭)’ 하면 송강 정철이 떠오른다. 실학의 상징 인물은 다산 정약용이 먼저 생각난다.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선입견이다. 기봉 백광홍과 존재 위백규가 있다. 백광홍(1522∼1556)은 정철보다 앞서 〈관서별곡(關西別曲)〉을 지었다. 가사문학의 첫 작품이다. 〈관서별곡〉은 왕명을 받은 백광홍이 관서지방으로 떠나는 순간부터, 도착해서 부임지를 순시하기까지의 여정과 심정을 그렸다. 25년 뒤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에 큰 영향을 줬다. 백광홍은 열 손가락에 꼽히는 조선시대 문장가다. 위백규(1727∼17...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4.06.27 15:25소나무와 감나무 한데 어우러진 장독대가 멋스럽다. 옛 풍경 그대로다. 그 너머로 기와집의 머리가 살짝 보인다. 한눈에 봐도 무게가 느껴진다. 보통의 집이 아님을 직감한다. 경험칙이다. “사당입니다. 불천위(不遷位) 중에서도 권위가 가장 높은 국불천위입니다. 불천위는 공신이나 덕망 높은 분에 대한 제사를 특별히 지내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를 가리킵니다. 사불천위, 향불천위, 국불천위 세 가지가 있어요. 불천위는 위패를 함부로 옮겨서도 안 됩니다.” 고영준 어르신의 말이다. 고영준 어르신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 순절한 ...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4.06.13 17:18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딱지(플라스틱)치기도 한다. 나무 둥치를 타고 오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연둣빛 웃음을 지어 보인다. 문득, 초등학교 다닐 때가 떠올랐다. 독후감 발표회를 여기에서 했다. 운동회 날이면 장기자랑 무대였다. 졸업앨범 사진도 나무를 배경으로 찍었다. 중학생 때도 매한가지였다. 사람들 눈을 피해 다른 동네 여학생을 만난 곳도 나무 아래였다. 그날 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친 달빛이 황홀했다. 나무 그늘은 마을 어르신의 쉼터였다. 마을 대소사도 여기에서 이야기됐다. ...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4.05.30 17:34싱그러운 봄날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온통 연녹색이다. 차밭도 떠오른다. 발길이 보성으로 향한다. 인지상정이다. 보성은 차의 주산지다. 보성에 대규모 차밭이 조성된 건 일제강점 때다. 활성산 일대가 따뜻하고 강수량이 많은 덕분이다. 바다와도 가까워 새벽안개가 자주 끼는 것도 한몫했다. 수분 공급이 잘 되기 때문이다. 보성의 차 재배면적이 1000㏊ 넘는다. 녹차 생산량은 전국의 40%에 이른다. ‘차밭하면 보성, 보성하면 차밭’이 연상되는 이유다. 보성차밭은 가장 인기 있는 남도 여행지 가운데 한 곳이 됐다. 누구라도,...
2024.05.16 17:42첫째, 사람이나 생물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不殺人 不殺物). 둘째, 충과 효를 함께하여 세상을 건지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忠孝雙全 濟世安民). 셋째, 왜와 서양 오랑캐를 물리쳐 우리 도를 밝힌다(逐滅倭夷 澄淸聖道). 넷째, 군대를 몰고 서울로 진격하여 권신과 귀족을 모두 없앤다(驅兵入京 盡滅權貴). 동학이 내세운 4대 강령이다. 봉건과 외세 반대를 내세우며 떨쳐 일어난 동학혁명이 올해 13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엔 동학혁명 관련 주요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백성이 주인 되어 외친 자유와 평등, 인권이 세계에서 ...
2024.05.02 18:31시간 참 빠르다. 매화 흐드러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매실이 달렸다. 휑-하던 들녘도 마늘, 양파와 유채꽃으로 생기를 띠고 있다. 산자락과 과원엔 배꽃, 사과꽃, 복숭아꽃이 활짝 피었다. 봄까치풀, 광대나물, 별꽃, 꽃마리 등 들꽃도 지천이다. 앙상하던 나뭇가지도 어느새 연둣빛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파리 한 줌 쥐어짜면 손바닥에 연녹색 물이 들 것 같다. 도로변 마을 앞에 나무가 길게 줄지어 있다. 팽나무가 많다. 느티나무도 보인다. 도로변 가로수이고,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이고, 마을숲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수령 수백 ...
2024.04.18 10:44가란도는 신안 압해도에 딸린, 섬 속의 섬이다. 갯골을 사이에 두고 압해읍 분매리와 마주하고 있다. 거리는 불과 200여m 남짓. 조붓한 바닷길 위로 분매리와 가란도를 잇는 나무다리가 2013년 개통됐다. 길이 275m, 폭 2.5m의 가란목교다. 햇볕을 피할 파고라와 전망 공간도 중간에 만들어져 있다. 섬인데도 배를 타지 않고,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목교는 사람과 함께 이륜차의 통행만 허용된다. 섬주민이 마실 수돗물도 이 다리를 통해 들어간다. 장흥댐 물을 공급할 상수도관이 해상보행교 밑에 설치됐다. 댐물은 길이 ...
2024.04.04 10:32매화, 산수유꽃 흐드러지면서 남도의 꽃봄이 무르익고 있다. 꽃바람은 강을 따라 북상한다. 영산강변에도 꽃바람이 넘실댄다. 강변 따라 도로가 개설된 뒤 강변도로를 타는 기회가 늘었다.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강변도로를 타고 가다가 차를 멈췄다. 강변에서 봄기운 완연한 누정이 눈길을 끈다. 장춘정(藏春亭)이다. 봄을 감추고 있다니, 사철 겨울이란 말인가? 안내판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선입견과 달리,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고봉 기대승의 〈장춘정기(藏春亭記)〉에 유래가 적혀 있단다.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
2024.03.21 10:36우리 사이 좋은 사이(김의경, 이영순), 매일매일 행복한 집(김기수, 김왕진), 마음이 먼저 꽃을 피우는 집(강춘자, 최상원), 기적이 일어나는 행복한 집(양행식, 김미선), 슬픔은 없이 오직 기쁨만 있는 곳(최남수, 고영심), 눈꽃처럼 맑고 깨끗하게(김현옥, 이명례)…. 주소와 함께 대문 옆에 걸린 문패(門牌)의 문구다. 얼굴에 옅은 웃음을 짓게 한다. 자연스레 발걸음도 멈춘다. 문패가 집집마다 걸린 곳은 곡성 능파마을이다.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능파리에 속한다. “3∼4년 됐을 거요. 마을사업 할 때 한꺼번에 달았응...
2024.03.07 13:46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읍내에서 마을로 가는 길처럼 반듯하게 쭈-욱 뻗었다. 그다지 길지 않지만, 품새는 유명 가로수길에 버금간다. 새봄을 부르는 비가 내리면서 안개까지 내려앉아 몽환적이다. 가로수길 입구에 문학비가 서 있다. 소고당 고단(1922~2009)의 규방가사를 새긴 비다. ‘고향이 그리워서 서둘러 온 친정길/ 우리친정 장흥평화 수려한 산천이여/ 사면을 바라보니 신구감회 갈마든다...’ 이 마을을 친정으로 둔 고단은 조부에게서 한학과 신학문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저수...
2024.02.15 10:35광주호 주변엔 누정과 원림이 많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민간정원 소쇄원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식영정, 환벽당, 서하당 일대는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면앙정, 송강정과 함께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원림과 누정은 모두 1500년대에 들어섰다. 내력이 더 깊은 누정도 있다. 독수정(獨守亭)은 조선 초에 건립됐다. 고려 때 병부상서를 지낸 전신민이 세웠다. 고려에 대한 충절을 혼자라도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건물이 북쪽을 향하고 있다. 그는 아침마다 고려의 옛 도읍지 개경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은둔하...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4.01.25 10:46총소리가 울리고, 이순신이 두드리던 북소리가 끊긴다. 그것도 잠시, 다시 북소리가 울린다. 바다 위에서 치열한 백병전까지 펼친 전투는 조·명 연합수군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대장선의 분위기가 침울하다. 군사들은 모두 엎드려 흐느끼고 있다. 이순신이 전사한 것이다. 처절한 전투가 끝나고, 이순신의 장례 행렬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상여를 본 백성들이 통곡을 한다. 뛰놀던 아이들까지도 장례 행렬에 시선이 멈춘다. 상엿소리가 구슬프다. ‘본영으로 가자, 고금도로….’ 영화 ‘노량’의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의 대미가 고금도로 ...
2024.01.11 11:00‘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흐르는/ 유달산 일등바위에 올라/ 거북이 등처럼 떠가는 섬들을 보라// 고하도 용머리를 휘돌아/ 삼색 깃발 나부끼며 귀항하는/ 고깃배가 끌고 오는 갈매기 떼를 보리….’ 김충경 시 ‘목포에 가면’의 앞부분이다. 유달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섬들 가운데 맨 앞자리에 선 섬이 고하도다. 고하도는 ‘용섬’으로 불린다. 섬의 생김새가 용을 닮았다고 이름 붙여졌다. 실제 섬의 지형이 용처럼 길게 늘어서 목포의 남쪽을 감싸고 있다. 목포로 향하는 큰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준다. 고하도는 목포시 달동에 속한다. ...
2023.12.28 1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