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간전면 상만마을의 매천의 흔적을 알 수 있는 구안실, 일립정, 매천정 터를 알리는 안내판 '내 일찍이 나라를 지탱하는데 조그만 공도 없었으니 오직 인(仁)일 이룸이요 충(忠)은 아니로다 겨우 윤곡(尹穀)을 따를 수 있음에 그칠 뿐 때를 당하여 진동(陳東)을 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노라' - 황현의 절명시 중 4수 윤곡은 송나라 담주 사람이다. 거란의 군대가 담주성을 포위하여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두 아들에게 서둘러 관례를 행하였다. 지하에서 조상을 뵙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집에 불을 놓아 가족과 동반 자결했다. 진동은 송나라 태학생으로 고종 때 간신 황잠선, 왕백언의 처단을 직언하다가 참혹하게 처형당했다. 진동과 윤곡, 단지 죽음의 방법이 다를 뿐 스러져 가는 나라에 목숨을 던진 절의의 대표로 후세에 회자되는 인물이다. 그로부터 800여년 후인 1910년 대한...
편집에디터2020.12.23 13:001.정렬사 사당 11월, 가을의 끝자락이다. 한 해의 끝은 12월이지만 11월이 더 끝 같다. 끝에 다다른 것 보다 끝에 도착하기 직전이 더 끝 같다. 은행잎이 진 자리는 땅이 노랗게 물들었고, 단풍잎이 진 자리는 붉게 물들었다. 나목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가을비에 젖어 검은 갈색으로 변한 가지는 육탈한 뼈처럼 보인다.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또 초록의 새순들이 돋을 것이다. 대지는 다시 호흡하며 한 생을 순환한다. 그렇게 한 바퀴, 두 바퀴, 꽃은 피었다가 지고, 바람은 불었다가 멈추고, 눈비가 내렸다가 그치고, 물이 얼었다가 녹고 나면, 떠날 것들은 떠나고 남을 것들은 남아 다시 거대한 자연의 윤회 속으로 들어간다. 공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세상을 주유(周遊)하다가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년 어느 물가에 앉아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 없이 ...
편집에디터2020.11.26 14:010.영모정 앞 영산포나루로 향하는 황포돛배 사진 백옥연 열다섯 아리따운 처녀 시냇가에서 (十五越溪女) 부끄러워 말없이 이별하네 (羞人無語別) 돌아와 겹문을 닫아걸고 (歸來掩重門) 배꽃 같은 달을 보며 눈물짓네 (泣向梨花月) - 무어별(無語別), 임제 임제의 무어별은 시중유화(詩中有畵)다. 임과 이별하는 열다섯 처녀의 애틋한 마음이 네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다. '월녀(越女)'는 중국 남쪽 절강성에 사는 여인들로 미녀를 이르는 말이다. 이별의 장소 시내는 마을 안팎을 구분 짓고 있다. 말 한마디 건네 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중문을 닫아건다. 사랑의 기쁨도 이별의 슬픔도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내 마음을 알아줄 이는 하늘의 달 밖에 없다. 배꽃 같은 달에 임의 얼굴이 어리고, 안타까운 내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잘 묘사한 이 시는 허균의 ...
편집에디터2020.10.29 13:451.물염정_속세에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물염적벽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그 짱짱하던 매미들의 합창도 사라지고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몇 닢 안 남았다. 계절의 색(色)과 소리(聲)가 교대하는 시간이다. 가을은 추분에 둘로 나뉜다. 앞은 냇물처럼 선선한 가을이고, 뒤는 강물처럼 깊은 가을이다. 이 무렵이 '우렛소리가 멈추고 곤충이 땅속으로 든다'고 하는 때다. 깊어가는 가을, 세상에 물들지 않는 '물염(勿廉)의 땅'을 찾아 간다. 화순 동복(同福), 동남쪽으로 모후산이 진산으로 솟아있고, 북서쪽으로 백아산과 무등산의 연봉들이 멀리 병풍처럼 두른 곳이다. 산에서 발원한 물이 시리도록 맑은 동복천을 이룬다. 물은 산과 돌을 감고 돌아 이서면 창랑, 보산, 장항 일대 7km에 걸쳐 붉은 벼랑을 연출하니, 적벽(赤壁)이다. 노루목 적벽, 보산 적벽, 창랑 적벽, 물염 적벽. 적벽은 ...
편집에디터2020.09.28 10:36식영정(息影亭)은 석천 임억령의 정자이다.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을 위해 지었다. 석천은 이곳에서 식영정20녕을 지었고 김성원 고경명 정철 등 네명의 제자들이 차운하여 이들을 식영정사선이라 부른다. 명승제57호로 지정. '옛 산사 문 앞에서 또 봄을 보내나니(古寺門前又送春) 지는 꽃잎 비에 날려 옷에 점을 찍네(殘花隨雨點衣頻) 돌아가는 길 소매 가득 맑은 향 배어나와(歸來滿袖淸香在) 산벌들이 떼 지어 멀리까지 따라오네(無數山蜂遠趁人)' 또 한 번의 봄이 지고 있다. 석천은 옛 산사 앞에서 봄을 전송하고 있다. 비를 따라 날리는 봄의 마지막 꽃잎들. 석천의 소매 위에 떨어져 꽃잎은 점이 된다. 그 향기를 따라 산 아래 먼 곳까지 벌들이 무리지어 따라오고 있다. 꽃비 내리는 봄날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그림이 그려지는 듯하다. 서정성 짙은 당풍(唐風...
편집에디터2020.08.27 15:581999건조된 나대용함_나대용 장군의 과학적 조선기술과 구국정신을 기리고 계승 발전하기 위해 잠수함 8호를 나대용 함이라 명명함. 1200톤급 잠수함 "이 돈을 보시오. 이것이 거북선이오. 우리는 이미 14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던 역사와 두뇌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오. 영국의 조선(造船)역사는 17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소. 우리가 3백여 년이나 앞선 것이었소.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어져 녹슬었던 것일 뿐, 잠재력은 14세기 그대로, 하나도 녹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라오."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1%에도 못 미치던 1970년 초. 아무도 꿈꾸지 않았을 때 현대그룹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조선소를 건설하기 위한 꿈을 꾸었다. 나라 안팎의 우려와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에 조선소를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배를 건조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편집에디터2020.07.30 15:18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1호 양씨삼강문_2차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민공 양산숙을 비롯 일가 9분을 배향한 삼세구정려_앞으로 황룡강의 흐르고 마을 뒤로 어등산이 감싸고 있다. 자로가 묻는다. 인격이 완성된 사람(成人)은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 답한다. 이(利)를 보면 의를 생각하고(見利思義),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치는(見危授命) 사람이다. 또 오랫동안 곤궁해도 평소의 말을 잊지 않는다면 성숙한 인간이라 할 것이다. 견리사의란 눈앞의 이익이 과연 의에 합당한지 따져보고, 무슨 일이든 의를 판단의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견위수명 역시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목숨을 내놓을 용기와 의로움을 강조한 말이다. 공자의 의를 뒤로 잇는 것이 맹자의 생사취의(捨生取義)이다. 두 사람의 의는 죽음에 앞선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생을 버리고 취해야 할 절대적 가치로서의 의가 있다. 우리...
편집에디터2020.06.25 14:24'변이중 화차'. 망암 변이중(1546~1611) 서거 400주년을 맞아 봉암서원(이사장 변온섭)이 전라남도_장성군과 함께 복원한 화차가 2011년 11월 장성 육군 포병학교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쾅~쾅~쾅~' 화차(火車)가 불을 뿜는다. 치우천왕이 그려진 조선시대의 화차가 불을 뿜는다. 길이는 가로·세로 각 2m에 소 두 마리 무게인 800kg, 총통구가 40개가 장착돼 있는 화차. 왜적을 물리쳤던 조선의 병기가 420년의 시간을 넘어 21세기에 화려하게 부활을 하는 순간이다. '변이중 화차'. 망암 변이중(1546~1611) 서거 400주년을 맞아 봉암서원(이사장 변온섭)이 전라남도・장성군과 함께 복원한 화차가 2011년 11월 장성 육군 포병학교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화차는 화약의 힘으로 화살을 다발 발사하거나 포탄을 멀리 쏠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한 수레다...
편집에디터2020.05.28 15:35강진 수암서원 가는 길 월출산 유채밭, 4월은 노랗다.색이 분명하다._사진 백옥연 '눈 먼 김포세관… 안타깝게 유출된 분청사기 상감 묘지, 김해 공항서 단속 걸리자 서울로 빠져나가'(1998년 9월2일 조선일보) '보물급 이선제 묘지 기증식 중앙박물관에서 열려' (2017년 9월19일 KBS) 앞의 것은 1998년 문화재적 가치가 큰 묘지(망자의 행적을 적어 무덤에 묻은 돌이나 도판)가 일본으로 밀반출 되었다는 기사이고, 뒤의 것은 그로부터 19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기증식이 열렸다는 기사이다. 높이 28㎝, 장폭 25.4㎝ 크기로, 1454년(단종 2)에 상감기법으로 만들어진 필문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분청사기 묘지석이다. 앞면과 뒷면, 측면에 이선제의 삶과 가족에 대한 내용의 명문(銘文) 248자가 새겨져 있다. 광주 남구 만산동 묘소에서 도굴된 묘지를 고미...
편집에디터2020.04.30 15:44옥봉 백광훈이 배향된 옥봉사_사진 백옥연 용강사(龍江詞) 妾家住在龍江頭 저는 용강 어귀 살아요 日日門前江水流 날마다 문 앞에는 강물이 흘러요 江水東流不曾歇 강물이 흘러흘러 쉼이 없듯 妾心憶君何日休 님 그리는 제 마음도 쉼이 없어요 江邊九月霜露寒 9월이라 강변엔 무서리 찬데 岸葦花白楓葉丹 갈대꽃 희게 피고 단풍잎 붉네 行行新雁自北來 줄지어 기러기는 북에서 와도 君在京河書未廻 서울 계신 님은 편지가 없네 (후략) - 옥봉 백광훈 용강(龍江) 어귀에 사는 여인, 집 앞에는 강물이 흐른다. 끝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님을 향한 그리움이 한시도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소식이 없다. 가을이 다 끝나가고 무서리가 내리는데 행여 님도 누각에 올라 달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할까. 님이 바라보고 있을 저 달을 마주하러 산에 오른다. 벼슬하지 않아도 좋으니 어서 돌아왔으면…. 아침 내내 까...
편집에디터2020.03.26 14:18나주시 문평면 동원리에 위치한 송재서원 전경_사진 백옥연 책문(策問). 왕은 묻고, 신하는 답하는 군신의 정치토론. 당대에 가장 시급한 정책에서부터 정치, 문화, 개혁, 인사, 국방, 외교, 교육, 혁신에 이르기까지 한 국가가 당면한 온갖 현안에 대하여 임금이 물으면 신하는 원칙과 소신에 따라 거침없이 답하는 자리였다. 책문은 시대를 묻는 것이었으며, 그 문답에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혜와 통찰을 얻고는 했다. 또는 통치권자와 세상을 향해 정의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자리이기도 했다. 1534년(중종29), 정3품 당상관 이하 문신들에게 시국을 묻는 시험이 있었다. 책문은 예양을 높이고 풍속을 아름답게 하는 방안을 묻는 예양책(禮讓策)이었다. 당시는 김안로가 우의정에 있으면서 정적을 제거하는 권력의 횡포가 절정에 이를 때였다. 이때 죽음을 각오하고 쓴 통렬한...
편집에디터2020.02.27 13:231. 지지당 송흠의 신도비(왼쪽) 동서고금을 통한 최고의 재사(才士)는 누구일까? 난세에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명멸하였지만, 지금까지 그 이름이 높이 회자되는 인물은 장량과 제갈량이 아닐까 한다. 두 사람은 다른 시간 속에서 전쟁의 시대를 살며 정의와 지혜로 한 세상을 풍미했다. 오늘 이야기는 '지지(知止)'에 관한 것으로, 멈추는 것을 아는 장량으로부터 시작한다. 장량의 자는 자방으로 우리가 흔히 부르는 장자방이다. 소하(蕭何), 한신(韓信)과 더불어 '한삼걸'로 불린다.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여 한(漢)을 세웠다. 유방은 "군막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장자방이다."고 했다. 그 후 사람들은 유능한 참모를 '나의 장자방'이라고 한다. 한의 통일로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한 장자방은 조그만 유후지역의 제후를 청하고 몸을 낮추어 은둔해...
편집에디터2020.01.30 14:29광주광역시 남구 압보촌 제봉산 아래 위치한 포충사_1592년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제봉 고경명, 준봉 고종후, 학봉 고인후, 월파 안영, 청계 유팽로 배향함_사진 백옥연 "아, 여러 고을 수령들과 각 지방의 선비와 백성들이여! 충성하는 자가 어찌 나라를 잊겠는가. 마땅히 목숨을 버릴 것이다. 혹은 무기를 제공하고, 혹은 군량을 내놓으며, 혹은 말을 달려 선봉에 서고, 혹은 쟁기를 버리고 논밭에서 떨쳐 일어서라. 분발하여 힘닿는 대로 모두 다 의를 위하여 나선다면 우리나라를 위험 속에서 구해 낼 것인즉 나는 그대들과 함께 있는 힘을 다할 것이다." '고경명의 마상격문 중에서' 격문은 토(吐)한다고 하더니, 왜 토한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저 바람 부는 들판에 서서 범이 포효하듯,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상에서 백발을 휘날리며 이 결의에 찬 격문을 토하는 자,...
편집에디터2019.12.26 15:401.재동서원 전경_여산송씨고흥문중 제공 늦가을, 바람은 불고 낙엽은 진다. 산길에 낙엽들이 쓸려 다니니, 세상천지가 소슬하다. 다 놓아버릴 것처럼 끝으로 이어지는 길. 그 끝에 문이 있다. 하현달이 산문을 비추고 있다. 하나 둘 사람들이 산문을 향해 모여들고 있다. 급한 걸음들, 울음을 머금은 애통한 발걸음들. 조상치 사부자(四父子)는 영천에서, 송간은 여산에서, 이맹전은 선산에서, 정보는 연일에서, 조여는 함안에서, 권절은 안동에서 왔다. 정지산과 성회, 엄홍도 부자(父子)는 날을 앞당겨 왔다. 사람들이 부복하고 애통한 목소리가 산사에 울려 퍼지니. '물은 곱고 산은 깊고 달은 밝사오니 하늘에 납시신 임금의 영현이시여 내림하사이다. 가엾으신 성은이 망극 하옵기에 석철을 본받아 임금의 의관과 궤장을 갖추어 단을 모아 제사 지내오니 회계산 위에 대우사의 제사의식을 인용함이로소...
편집에디터2019.11.28 16:54장흥군 유치면 조양리 소재 강성서원 전경 광주에서 장흥 가는 길은 세 갈래다. 동쪽으로 화순 지나는 길, 서쪽으로 영암 지나는 길, 그리고 가운데로 나주를 통하는 길이다. 같은 장흥이어도 목적지가 어디냐에 따라 다들 알아서 제 길을 가는 것이로되, 이번에 나는 가운데 길로 간다. 나주 금정 지나 유치로 가는 길이다. 쭉 가다가 덤재를 넘으면 길은 탐진강과 동행한다. 길 양옆으로 해발 2백~3백m 안팎의 고만고만한 산들이 연달아 지나간다. 아직 산이 높지 않으니, 물도 깊지 않다. 그러다가 유치 근방에 이르면 산들이 높고 험하다. 물도 제법 많아져 강폭이 넓어지고 수심도 깊어진다. 강은 가지산 보림사에서 내려오는 또 한 갈래와 만나, 탐진강을 이룬다. 물은 도도히 흘러 장흥읍을 관통하고 강진만에 이르러 바다가 된다. 강과 동행하는 10월의 길이 아름답다. 길가의 산벚나...
편집에디터2019.10.24 1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