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 오키나와에 간다고 하면, 오키나와에 다녀왔다고 하면 다들 한 마디 씩 한다. 그곳은 꼭 가봐야 하는데 아직 가보지 못해서 안타까워하거나 홍길동이 건설하려고 했던 율도국이 실은 오키나와를 모델로 했다고 하거나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려다가 바람을 잘못 만나 오키나와에 도착했던 적이 역사적으로 많아서 그곳 사람들은 한민족에 더 가깝다거나(피가 섞여서) 제2차 대전 등의 비극을 언급하며 다른 나라와 다른 특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아마도 지리적으로 인접하기도 하지만 지난한 역사가 인지상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2023.04.27 17:34오키나와 여행하면 일반적으로 추라우미 수족관, 만좌모 등을 떠올린다. 그 만큼 풍광이 좋다고 하는데, 걸어서 오키나와 한 바퀴를 돌려고 작정한 나도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나하 시에서 나고 시에 있는 숙소로 가는 길에 보았던 만좌모를 향해 나고 시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그 시간이 오후 4시 16분이었다. 120번 버스를 타면 30분 정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좌모(Manza mo, 万座毛)는 18세기 초 류큐 왕이 방문했을 때 만 명도 앉을 수 있는 초원이라고 말한 것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2023.04.13 12:52지리적으로 보면 규슈(九州)의 남쪽 끝에서 대만 방향으로 약 1,300Km에 이르는 해상에 활처럼 연결된 섬이 200개나 있다. 지질학에서는 류큐호(琉球弧) 내지는 류큐열도(琉球列島)라고 부른다. ‘오키나와’라는 말은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먼저, 오키나와섬(본도)을 말하며 다음으로는 오키나와섬 주변의 섬들(오키나와 제도)를 일컫는다. 넓은 의미로는 미야코 군도, 야에야마 군도를 포함한 오키나와 현 형정구역 전체를 말한다. 오키나와의 행정구역에는 40개의 유인도가 있고 그 안에 41개의 시정촌(市町村)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2023.03.23 15:04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을 문화라고 할 때 문화라는 용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문화는 그것이 속한 담론의 맥락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하게 문화는 도구의 사용과 더불어 인류의 고유한 특성으로 간주된다.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언어·관념·신앙·관습·규범·제도·기술·예술·의례 등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또한 시간에 따라 자연스러운 변용의 과정을 거친다. 문화는 정체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면서 그 시대의 정신과 성향에 따라 몸집을 달...
2023.03.09 13:08여행을 하다보면 성탄절과 새해를 타국에서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공식적인 행사가 있는 곳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보려고 노력했다. 오키나와에서는 공식적인 카운트다운 행사 같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오키나와라서가 아니라 코로나로 모든 나라가 침묵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조촐하게 2022년 마지막 날은 나하 시에서 술 한 잔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화려하고 복잡한 것이 싫어서 뒷골목으로 빠졌던 것이 의외로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어둠 속, 불 밝힌 홍등 ...
2023.02.23 17:07아침 일찍 숙소 공용 휴게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바깥을 보는데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실은 일주일 내내 나하 시에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를 미리 확인했다. 이곳도 제주도처럼 하루에 몇 번씩 얼굴을 바꾼다. 다행인지, 내가 가는 곳은 날씨가 내 편인 경우가 많았다. 비바람이 불었지만 맞을 만해서 편의점에서 650엔 주고 비닐우산을 하나 사서 숙소 근처 국제거리에 있는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과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일일 버스 패스 티켓을 샀다. 1,820엔이다. 2만원 상당의 요금을 하루에 다 사용해...
2023.02.09 12:54오키나와전쟁은 1945년 6월 23일에 종식되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인 1945년 3월말부터 6월 23일까지 3개월 남짓 전투에서 전사자만 20여만 명에 달했다. 일본은 본토 사수의 마지막 거점으로 오키나와를 방어했고, 미국은 일본 본토 공격의 교두보로 오키나와를 점령하려고 했다. 하지만 양측 모두 그리 녹록하지 않은 듯했다. 오키나와 전투는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 조그마한 섬에서 1만 명 이상을 잃었다. 본토에서 옥쇄투쟁을 벌일 경우 수십만, 수백만의 자국민이 피를 ...
편집에디터 2023.01.26 16:20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도상거리 800km를 걸은 지 31일 만에 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한 달 이상 걸었을 때 제일 낯설게 다가온 것은 내 외모였다. 집에서 입고 온 옷도 한 치수 정도 커졌다. 한 달 내내 빨고 입고 빨고 입어서 보풀이 일었다. 햇볕 아래에서 걷다 보니 피부가 나도 몰라보게 새까맣게 탔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을 때면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낯선 나와 조우했다. 새까맣게 그을리고 볼이 홀쭉해졌지만 눈동자만은 반짝 빛나고 있었다. 순례길을 걸으면 외...
<다음 회부터는 오키나와에 관한 여행기를 7회에 걸쳐서 연재합니다.>2023.01.12 14:44스페인 산타아고로 가는 프랑스 첫 순례길 첫 시작점은 생장피드포르(Sanit-Jean-Pied-de-port)이다. 파리에서 5시간 정도 테제베를 타고 바욘에 도착해서 또 완행열차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피레네 산맥 아래 조그마한 마을이다. 불어를 못하는 내게 시골 한적한 역사 자동발매기는 승차권 발권용이 아니었다. 그저 낯선 기계일 뿐이었다. 해가 질 무렵 겨우 생장에 도착해서 낯선 이들과 한 방에 짐을 풀었을 때도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을 만들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
편집에디터 2022.12.29 15:53왜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할까? 겨울 방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방학 계획을 물으면 대부분 자격증 공부 아니면 여행이라고 말한다. 정년을 앞 둔 직장인들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한 1년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다. 여행은 누군가에게 도전이면서도 휴식이며 자유가 된다. 힘든 여행을 했어도 지내놓고 보면 추억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 강연을 하거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지를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가능하면 '일찍', '혼자', '그곳'을 '경험'하라고 ...
편집에디터2022.12.15 15:2111월 28일 밤이었다.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을 끼고 논문을 읽고 있는 내 귀에도 환호성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옆 연구실인지 맞은편이지 아니면 위층인지 아래층인지, 전 층인지 그 소리는 멀면서도 가까웠고 갑작스럽다가도 잠잠했다. 직접 경기를 보고 있지 않던 나는 인터넷에서 현재까지의 경기 내용을 검색했다. 초반에 두 골을 내주고는 후반전에서 동점골(2:2)을 만들어 낸 직후였다. 급격히 기온이 떨어졌던 월요일 밤, 낮 동안 간간이 내리던 비가 어둠이 짙어질수록 그 굵기를 더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팀은 ...
편집에디터2022.12.01 15:47오래전,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의도치 않게 밤을 새운 적이 있었다. 오후 늦게 시작된 눈발이 점점 굵어져서 마침내 온 대지를 점령해버린 날이었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멈춰버렸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마지막 버스를 타기 위해서 정거장으로 향할 때였다. 종아리까지 푹푹 들어가는 눈을 밟으며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야 했던 그 밤 나는 Pink Floyd를 알게 되었다. 그 뒤 앨범을 통째로 영화화한 앨런 파커(Alan Parker)의 〈핑크 플로이드의 벽(Pink Floyd- The Wall)〉을 비디오로 보게 되었고 CD를 소유하게 ...
편집에디터2022.11.17 16:56록웰이 그린 인근 마을 그림.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의 제노포비아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처음 미국에 도착한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흑인 노예를 대체할 값싼 노동력으로 유입된 이들은 나중에는 금광에서 금을 캐는 일을 했다. 미국 백인들은 이 중국인 노동자들이 백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해 위협으로 여겼다. 중국인을 역병, 해충이라고 부르며 비하했다. 결국 1882년 연방정부는 중국인의 미국 이민을 금지하는 중국인 배척법을 통과시켰으며, 나중에는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이민을 금지시켰다. 이민금지법을 폐지하는 '1965년 이민국적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유럽 백인이민자들만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이민 온 아시아인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의 희생자로 살아야 했다. 그런 미국이 1965년 아시아인뿐만 아니라 중남미, 아프리카 이민자들에게 문을 열었다. ...
편집에디터2022.11.03 16:14브루클린 다리 1866년 뉴욕에 유독 혹독한 추위가 닥쳐왔다. 이스트 리버가 얼어붙을 정도였다. 당시 뉴욕과 브루클린은 독립적인 도시였다. 유일하게 페리가 두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운송) 수단이었는데 강이 얼어버려서 운항이 중단되었다. 다리 건설이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뉴욕 동쪽의 이스트 리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구상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독일 이민 출신 토목공학자인 존 뢰블링이었다. 뢰블링은 강 속에 케이슨을 이용하여 거대한 석재 주탑을 세우고 강철 케이블을 사용한 현수교를 상상하고 있었다. 새로운 강철 제련법을 이용할 참이었다. 마침내 뢰블링은 이러한 모든 신기술을 이용하여 다리 공사를 착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원대한 꿈을 실현하는 순간, 그의 가족에게 저주가 찾아왔다. 브루클린 다리 저주의 시작은 1869년 6월, 설계를 마친 뢰블링에게 먼저 왔다....
편집에디터2022.10.20 15:14달랏 야시장 풍경. 차노휘 베트남은 위도 8도 30분~23도 22분 사이에 위치한다. 기후 특징은 위도상의 차이보다는 고도상의 차이로 남부는 열대몬순기후에, 북부는 아열대기후에 속한다. 이 때문에 남부는 건기(11~4월)와 우기(5~10월)로 나뉘어져 연중 여름인 반면 북부에는 4계절이 있다. 여름은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해양풍으로 고온 다습하며, 북부의 겨울은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대륙풍으로 춥고 다습하다. 이로 인해 북부에는 겨울과 봄에 자주 가랑비가 오며 특히 습도가 높아 생활에 어려움이 많다. 달랏 야시장 풍경. 차노휘 궂은 날씨와 상관없이 북부는 엄연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통의 도시였다. 중국 운남성에서 시작해서 베트남을 관통하는(전체 길이는 1,200km, 베트남 내에서는 475km) 홍강이 있어서였다. 홍강 주변은 곡창지대일 뿐만 아니라 수산, 건설,...
편집에디터2022.10.06 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