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98 > 버스타고 오키나와 한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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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98 > 버스타고 오키나와 한 바퀴
오키나와를 읽다 ⑤
  • 입력 : 2023. 03.23(목) 15:04
21세기 비치에서, 죽은 산호초 무덤이 많다.
지리적으로 보면 규슈(九州)의 남쪽 끝에서 대만 방향으로 약 1,300Km에 이르는 해상에 활처럼 연결된 섬이 200개나 있다. 지질학에서는 류큐호(琉球弧) 내지는 류큐열도(琉球列島)라고 부른다. ‘오키나와’라는 말은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먼저, 오키나와섬(본도)을 말하며 다음으로는 오키나와섬 주변의 섬들(오키나와 제도)를 일컫는다. 넓은 의미로는 미야코 군도, 야에야마 군도를 포함한 오키나와 현 형정구역 전체를 말한다. 오키나와의 행정구역에는 40개의 유인도가 있고 그 안에 41개의 시정촌(市町村)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은, 오키나와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이다.

점점 오키나와 공항에 가까울수록 에메랄드 빛 바다를 품고 있는 아열대 수목이 무성히 우거진 섬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북위24도에서 27도에 이르는 광대한 해역에 걸쳐 발달한 산호초 군락. 그 우아한 색채의 조화가 기내 안에서도 투명하게 보여 태양빛에 반짝이는 산호초 정원을 유영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도 남았다. 온화한 기후, 아름다운 해변, 여유로움…. 오키나와는 일본의 하와이로 불릴 만 했다.

오키나와를 방문하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처음방문객과 재방문객의 관광 활동유형 및 방문 장소의 차이를 분석한, 2018년 조사된 모 논문 결과를 잠깐 살펴보면 이렇다. 첫째, 처음방문객들이 주로 전형적인 주요 관광지를 더 많이 방문하는 반면, 재방문객들은 주요 관광지 방문보다는 마사지 및 에스테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둘째, 재방문객들이 처음방문객들에 비해 좀 더 많은 문화체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확인했다. 셋째, 처음방문객들은 인기 있는 관광명소를 더 많이 방문하는 반면, 재방문객들은 유명하지 않은 관광지를 방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주요 관광 루트의 쇼핑몰 방문에는 처음방문객들과 재방문객들 간에 차이가 없었던 반면, 주요 관광 루트에 없는 쇼핑몰 방문비율은 재방문객이 높았다. 넷째, 재방문객들은 처음방문객들보다 더 많은 쇼핑몰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런 통계 자료에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나는 오키나와 여행을 소위 ‘개고생 여행’이라고 이름 붙였다. 쇼핑은커녕 유명하지 않은 관광지만을 버스나 걸어서 쫓아다닌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 또한 내 의도였으니 기꺼이 감수해야했다.

국내에서 오키나와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차를 렌트할 계획이었다. 검색한 하루 차량 렌트비는 5~6만 원이었다. 막상 오키나와에서 차를 빌리려고 하니 12~15만 원을 달라고 했다. 그것도 겨우 두 대 정도 렌트카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형편상 세 배나 뛴 렌트 비용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차가 없다고 여행을 못하겠나, 라는 오기도 생겼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 번이나 다녀오고 요르단이나 이스라엘에서도 대중교통과 걷기로 구석구석을 탐방했던 나였다. 원래 내 전문은 ‘걷기’라는 것을 상기했다.

짱짱한 오기로 나하 시에서는 국제거리 관광안내소에서 일일 버스 패스 티켓을 샀다. 1,820엔. 2만원 상당의 요금을 하루에 다 사용해야 한다. 그게 가능한 곳이 일본이다. 이곳은 구간이 더해질수록 요금이 더해지니, 장거리를 탈 경우 버스 패스를 사는 게 훨씬 경제적이다. 버스패스는 고속버스 마을버스를 탈 때에는 혜택이 없다.

나하 시에서 나고 시로 향할 때가 1월 1일이었다. 웬만한 영업점은 문을 닫았다. 관광안내소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그곳에서 1일 버스 패스권을 샀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발이 묶일 내가 아니었다. 휴대폰에 ‘OTOPa(Okinawa Transport One Pass)’어플을 깔았다. 온통 일본어로 안내가 되어있지만 해석 못할 이유 또한 없었다. 원래 가격은 1일 권이 2,500엔, 3일 권이 5,000엔이었지만 30% 정도 할인이 들어가서 하루에 1,820엔, 3일에 3,640엔인 티켓를 확보할 수 있었다. 3일 간격으로 버스 패스를 결제하여 본격적으로 강도 높은 도보 여행을 시작하였다.

솔직히 말하면 버스와 도보로 류큐열도를 다 돌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길쭉한 섬이기도 했지만 섬과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모든 버스가 구석구석까지는 운행하지 않는다. 막차도 8시 정도면 끊겼다. 요령이 필요했다.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 검색 뒤, 환승해야 할 경우 버스와 버스 사이, 시간과 시간 사이를 계산하며 최단 거리 동선을 짜기 시작했다. 환승할 거리가 6km를 넘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 2만~3만 보 걷기는 기본이었다. 전투복은 기본이었다. ‘개고생’여행이 맞았다. 되레 고생을 해서 재미가 쏠쏠했다. 잘해내고 있다는 만족감도 상대적으로 컸다. 버스 안에서 고개를 들면 볼 수 있었던 바다, 버스를 타면 탈수록 돈을 번다는 그 얄팍한 계산의 짜릿함과 버스 기사의 친절함 등이 내가 그곳에서 받은 선물이었다.

오키나와 버스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느림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신용카드 한 장이면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한국과 달랐다. 인터넷 어플을 이용하는 고객은 거의 소수에 불과했다. 인터넷 어플은 인터넷 연결이 기본으로 되어 있어야 했다. 운적석 옆 바코드를 찍은 다음에 화면에 뜨는 패스권을 보여주어야 한다. 장소에 따라서 잘 터지지 않은 곳이 있어서 난처했던 적도 있었다. 난처하다는 생각은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 한해서였다. 기사 아저씨는 느긋하게 기다려주었다. 승객들도 완전히 차가 정차한 뒤에 일어나는 것이 몸에 익숙해져 있었다. 의외로 현금 계산이 많았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승차할 때 종이를 받는데 그 종이에는 숫자가 적혀있다. 버스 앞면에 전광판이 있고 전광판에는 여러 숫자와 숫자 아래에 적힌 금액을 볼 수 있다. 구간이 더해질수록 금액은 올라간다. 내릴 때 종이에 적힌 숫자 아래에 적힌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 의외로 현금 계산이 많아서 인기 있는 버스 노선에서는 정거장마다 지체되는 시간이 길었다. 아무도 불평하거나 짜증내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나는 느긋한 버스를 타고 바쁜 걸음으로 오키나와를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걸어서만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 또한 몇 있다. 다음 편에서는 그런 에피소드를 소개할 예정이다.







코우리 섬, 하트 바위
코우리 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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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리 대교
걷다보면 볼 수 있는 흔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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