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영백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살림위원장 |
장면 #1. 꿈드리미.
4월 17일 교육청 기자회견이 있었다. 꿈드리미는 원래 학생 한 명당 1년에 약 100만원씩 바우처를 지급하는 보편복지인데, 보건복지부와 협의과정에서 ‘선별복지’로 제한을 받게 되었다. 보건복지부와 맞서든 사업을 새로 기획했어야 하는데, 선별 복지 모양새로 보편복지를 하느라 비극이 시작됐다. 선별 복지처럼 보이려면 지원을 받지 못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중위소득 120%의 외동이 가족이 희생양이 되었다.
아이가 둘이면 고소득 가정도 받는 지원에서 배제되자 이들은 울분을 토했다. 중1부터 고3까지면 차별의 값은 600만원에 달한다. 우리 학교는 한 학년 약 120명인데, 작년에는 9명, 2개 학년으로 확대된 올해에는 240명 중 단 한 명만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학교는 240명 중 239명이 왜 받을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는 행정을 떠맡았다. 게다가 각종 업무와 부담이 집중되는 3, 4월에 이런 일을 해내야 했고, 각종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개인 민감 정보가 은행 시스템에 과도하게 축적되는 것도 문제였다.
가장 큰 피해는 교육청이 보았다. 한 학년 약 200억에 달하는 돈을 쓰고도 칭찬보다 욕을 먹었기 때문이다. 갈등을 수습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직원들 노력도 애잔했다. 내년에는 애초 기획대로 사업을 펼친다면 좋겠지만, 또 막힌다면 다른 사업이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 장면 2. 다문화 한부모 가정 양육비 지원사업
우리 학교엔 다문화 학생이 많다. 관련 지원 공문을 꼼꼼하게 살핀다. 3월쯤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라는 곳에서 양육비 지원사업 공문이 왔다. ‘ㄱ. 생계가 곤란한 ㄴ. 한부모 ㄷ. 다문화 가정’ 모두를 충족해야 하는데, 300만원이면 지원이 괜찮다. 그런데, 준비 서류와 조건이 무려 20가지에 달했다.
신청서, 학교 추천서, 개인정보동의서. 통장사본. 여기까지는 좋다.
주민등본, 한부모가족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다문화 증명서류. 슬슬 숨이 막힌다.
부모중 한 명은 한국적 취득, 기초생활수급자 증명서, 지방세 세목별 과세 증명서, 확정일자 받은 임대차 계약서 사본, 병원진료확인서, 장애인복지카드, 20세 이상 자녀 2명 이상이면 신청불가, 북한이탈주민은 제외. 양육비 사용계획서, 기관추천서에 직인 필수.
양육비 전달식에 반드시 전원 참석 의무. 서류 심사 통과시 현장 실사 방문.
그중에서도 압권은 위치 표시가 된 집안 사진을 4장 찍어서 첨부하라는 것이었다. 인터넷에는 이 단체 행사에 얼굴이 노출된 청소년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장 예민한 약자층 청소년을 돈으로 굴복시켜 박제시키는 짓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마치 악덕 고리대 업자가 대출자를 납작 엎드리게 만드는 느낌인데, 공문을 읽는 것만으로 수치심과 분노가 일었다. 복지와 장학이 얼마나 반인권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담당자에게 항의 전화를 했는데, ‘이렇게 하면 우리도 힘들다. 하지만 더 필요한 사람에게 주려고 그런다’는 식으로 둘러대었다. 솔직히 전국에서 이 돈을 받은 이가 몇이나 될지 모르지만, 돈은 적게 들이면서 생색은 최대한 크게 낼 때 가장 유용한 형식이 아닐까 싶다.
# 장면 3. 한국장학복지재단, 꿈사다리 장학금.
특성화고인 우리 학교엔 중 3부터 취업을 생각한 학생들이 온다. 아무래도 가정 형편이 어려울 수밖에. 올해 교육 바우처 대상은 90명이 넘는다. 넷 중 하나이다.
한국장학 복지재단은 한국장학재단 설립법에 근거한 국가기관이다. 이들은 저소득층 부모에게 문자를 보낸다. 꿈사다리 장학금이 있는데, 한 번 선정되면 대학까지 지원하니 신청하라고. 그리고, 학교에도 복지재단 이사장이 쓴 편지를 교사에게 뿌린다. 학생에게 소중한 기회이니 추천해 달라고. 마치 교사가 신경 쓰면 혜택이 주어지는 양.
하지만, 이들은 학교별 추천 인원을 2명으로 제한한다. 어떤 담임은 자기 반 희망자도 채우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저소득층이 학교별로 고르게 진학하는 것도 아니고, 지역과 학교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절박함이 동일하더라도 어떤 학교 다니냐로 수혜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장학재단에 항의했더니 생활기록부의 교과, 비교과 영역을 고루 살펴 학교가 추천해달라는 것이라 둘러댄다. 무단결석 10일 이하. 대부분이 통과하는 기준이어서 변별력도 없다. 소통도 거부해서 결국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했다.
받는 이를 헤아리는 마음이 거룩하면 손길은 더욱 세심해질 텐데, 복장 터지는 복지, 장학이 많다. 받는 이보다 주는 손을 빛내려는 욕심이 앞선 탓일 것이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빌미 삼아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도움을 가장한 폭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