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배경 넘어"…광주·전남 투표소 향한 '힘찬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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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세대·배경 넘어"…광주·전남 투표소 향한 '힘찬 발걸음'
●제21대 대통령 선거 이모저모
투표 개시부터 유권자 발길 '북적'
109세·103세 어르신, 지팡이 짚고
"같은 국민으로"…이주여성 '한 표'
'인증도장 어디에'…귀여운 실수도
"살기 좋은 나라 만들길" 한 목소리
  • 입력 : 2025. 06.03(화) 19:18
  • 정유철·윤준명·정승우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 본투표일인 3일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1동 제2투표소에서 김정자(109) 할머니가 투표를 마친 뒤 시민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윤준명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 본투표일인 3일 광주광역시 서구 유덕동 제2투표소 앞에 투표 시작을 기다리며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윤준명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 본 투표일인 3일, 광주·전남 곳곳의 투표소에는 동이 틀 무렵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다양한 사연을 지닌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09세 고령 유권자부터 생애 첫 투표에 나선 만 18세 청소년, 거동이 불편한 이동약자와 먼 타지에서 온 이주여성까지 세대와 배경을 넘어 ‘참된 일꾼을 뽑자’는 한뜻으로 모인 이들의 발걸음은 우리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든든한 원동력이 됐다.

●“변화 위해서”…새벽 깨운 시민들

이날 오전 6시께 광주광역시 서구 유덕동 제2투표소 앞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찾아온 유권자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투표용지를 받아 든 시민들은 후보의 기호를 꼼꼼히 살핀 뒤, 기표소로 이동했다.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은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투표소를 나섰다.

채양임(71)씨는 “출근길에 앞서 서둘러 투표하러 나왔다”며 “마음속에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후보가 있다. 나라가 매우 혼란스럽고 어려운 상황인 만큼, 꼭 당선돼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고 귀띔했다.

비슷한 시간, 동천동 제4투표소인 광림초등학교 앞에는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나온 모자부터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 반려견의 목줄을 꼭 잡은 시민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이들이 행사한 한 표에는 지역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청년 정책 지원 등 각자의 간절한 바람이 깃들었다.

송관후(23)씨는 “청년들의 취업난과 생활고가 심각한 만큼 청년 지원 정책이 더욱 확대되기를 바란다”며 “지역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변화와 관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기를 넘는 어르신의 ‘한 표’

오전 9시께 동구 유권자 중 ‘최고령’인 김정자(109) 할머니가 ‘장수 지팡이(청려장)’를 짚고, 딸 이종순씨와 사위의 부축을 받아 계림1동 제2투표소를 찾았다.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를 몸소 겪어온 김 할머니는 이날도 어김없이 “좋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투표에 나섰다.

기표소를 나온 그는 “우리나라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기를 바란다”며 “광주가 더 발전하고,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갖고 마음껏 일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 표, 한 표가 소중하다. 젊은 사람들도 빠짐없이 꼭 투표해야 한다”며 “나 역시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꼭 선거에 참여하겠다”고 다짐했다.

남구 진월동 제1투표소에서는 백삼봉(103) 할아버지가 며느리와 손녀, 증손녀와 함께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함에 용지를 넣은 백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투표소를 나섰다.

그는 “오늘도 가족들에게 먼저 투표하러 가자고 독려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투표해왔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에 참여한 광주 거주 이주민 여성 세라씨가 투표를 마친 뒤 투표소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정유철 기자
●이주민의 삶과 꿈 깃든 선택

오전 10시께, 필리핀 출신 귀화 여성 세라(45)씨도 광산구 우산동 제4투표소를 찾아 미래를 향한 한 표를 행사했다.

지난 1999년 한국에 이주한 그는 2002년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하며 귀화했고, 현재는 네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여성이자 이주민 통역가, 광주전남필리핀공동체 대표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세라씨는 “외국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불법체류자 문제나 비자 제도를 개선해 더 많은 이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 참여는 세라씨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투표를 통해 표현한 그의 바람이 더 많은 이주민의 목소리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이 한 표가 더 많은 이주민을 대변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본투표일인 3일 광주광역시 서구 동천동 제4투표소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윤준명 기자
●서툰 첫 투표에 담은 희망과 다짐

생애 처음 투표권을 갖게 된 만 18세 청소년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책임감이 가득했다. 학교밖청소년 김려민(18)군은 오후 1시께 광산구 신창동 제3투표소를 찾았다.

긴장한 탓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던 김군은 ‘투표 인증 도장’을 기표소 안에서 찍고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밖에서 도장을 찍어주는 줄 알고, 그냥 기표소 밖으로 나와버리는 ‘귀여운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김군은 무사히 첫 투표를 마치게 됐다.

김군은 “인증 도장을 못 찍어 아쉬웠지만, 그마저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며 “밝은 미래는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마음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개인의 목소리가 존중받고,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며 “모두가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오후 3시께 투표하러 집을 나선 박유민(18)양도 “이번 대선이 첫 투표라 더욱 관심이 크다”며 “벌어진 임금 격차가 줄어들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위한 예산이 확대돼 함께 잘 사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깜빡’ 실수에 발만 동동 굴러

지역 곳곳의 투표소에서는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거나, 지정된 장소를 헷갈려, 투표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사전투표와 달리 지정된 장소에서만 투표가 가능한 본 투표의 특성상 일행과 함께 투표소를 찾았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거나, 같은 동네의 옆 투표소를 잘못 찾아가는 경우 등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신분증을 집에 두고 왔다”, “잃어버려 가져오지 못했다”며, 선거사무원을 붙잡고 한참동안 하소연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한 선거사무원은 “선거마다 신분증을 미지참하거나, 투표소를 헷갈려 그냥 돌아가는 분이 생긴다”며 “선거 관련 규정을 정확히 숙지해 소중한 한 표를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유철·윤준명·정승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