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미주리 주 캔자스 시티에서 미국 13개 도시 투어 개막 공연을 펼치고 있는 마이클 잭슨. 뉴시스 |
●레코드사 이적 후 '킹 오브 팝' 칭호
마이클 잭슨은 에픽 레코드사로 이적한 후 연이어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킹 오브 팝'이란 칭호를 얻게 된다.
그의 트레이드인 딸꾹질을 하는 것 같은 특유의 보컬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디스코, 펑크, 록, 오페라의 요소를 가미한 음악 등 다양한 형식의 노래들을 선보였다.
그 누구도 선보이지 못한 그만의 독특한 노래와 춤이었다.
1997년 잭슨5의 멤버, 2001년 솔로가수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1999년 잭슨5로 보컬그룹 명예의 전당에, 2002년 송 라이터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992년 자선단체 힐 더 월드 파운데이션을 설립, 불우아동 지원사업도 펼쳤다.
●'문워크'와 '안티 그래비티 린'
뮤직 비디오와 무대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시작하며 대중에게 강인한 인상을, 세계적 스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다.
팝핀, 록킹 등 펑크 스타일에 기반을 둔 춤을 주로 췄다. 양발을 이용해 미끄러지듯 뒤로 이동하는 '문워크'는 그의 대표적인 춤으로 자리했다.
특히 '스무스 크리미널(Smooth Criminal)'.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7위의 뮤직 비디오에서 선보인 바닥에 발을 고정한 채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안티 그래비티 린(Anti Gravity Lean)' 동작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 동작에는 숨겨진 트릭이 있다. 특별 제작된 구두 밑바닥에 홈을 파고, 무대 마루 바닥에 특수 설치된 고정 쇠붙이에 구두 밑바닥을 결합시켜 순식간의 동작으로 몸을 지탱하면서 기울이는 동작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안티 그래비티 린'이다. 보는 사람은 이 동작에 그만 입이 벌어지고 만다. '문워크'나 '안티 그래비티 린'은 마치 곡예하는 마술을 보는 듯 하다. 그 두 동작에 세계는 "역시 마이클 잭슨"이라며 경탄해 마지 않았다.
노래가 아닌 춤 동작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고, 오직 마이클 잭슨 만이 해낸 결과물로 세계는 그를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 조명 폭죽 부상으로 백반증 걸려
1980년대 초, 누구나 마이클 잭슨의 하얗게 변해가는 얼굴을 보고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적 근거를 두고 이야기 해보자. 마이클 잭슨의 얼굴, 목에 하얀 반점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피부가 일부 하얗게 돼자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실제로 마이클 잭슨의 피부가 하얗게 되어간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1984년 '펩시'광고 현장에서 촬영 중 조명에 튄 폭죽이 그의 머리에 떨어지면서 순식간에 머리 전체에 불이 번지게 됐다. 이때 입은 화상은 멜라닌 세포를 파괴시켜 피부에 흰색 반점이 생기는 백반증 증세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화상 부위인 이마에서 온몸으로 번져가기 시작, 결국 검은 메이크업으로 백반증의 증세를 가릴 수 없게 되자 새로운 피부색에 맞춰 하얀 메이크업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백반증은 사람들에게 너무 낯선 병이었고, '돈이 있는데 뭘 못해? 전신 박피수술을 했다더라'며 결국 그를 백인이 되려는 흑인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사후, 그가 실제로 백반증을 앓았다는 LA경찰의 검사결과가 나왔다. 의사 검진결과와 소견서, 시대별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네곡 나란히 정상 앨범 '베드'
마이클 잭슨의 앨범 '베드(Bad)'는 록 음악사상 최초로 한 앨범에 담긴 동일 가수의 노래 네곡이 빌보드 핫 100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28주간 연속 TOP앨범차트 5위권을 유지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앨범에 담긴 '사랑을 멈출 수 없다(I just can't stop loving you)' '날 일깨워준 당신(The way you make me feel)'등 3곡이 핫 100차트 정상을 차지한데 이어 2주전부터 '거울 속의 남자(Man in the mirror)'가 핫100차트 1위에 오름으로써 이같은 기록이 달성됐다.(1988년 4월 12일자 동아일보 기사 중)
●'팝의 황제' 고소 당하다
'레이더 온라인 닷컴'은 "마이클 잭슨이 생전에 은밀하게 아동 성적학대 조달 공공기관을 운영했다"고 피해자 중 한명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매체는 "마이클 잭슨에게 어렸을 적 학대를 당했다는 여성이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12살이던 1986년 마이클을 처음 만났고, 1989년 15살이 될 때까지 계속 성적학대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 여성은 마이클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과정과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했고, 정신적 고통에 따른 100만 달러 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한 걸로 알려졌다.
마이클 잭슨은 1993년 아동 성추행 혐의로 민사소송을 당했고, 법정 합의로 마무리됐다. 2005년에도 아동 성추행 혐의에 연루됐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마이클의 두번에 걸친 아동 성추행 혐의로 인해 그를 보는 세간의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했고, 비난의 여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추락은 시작됐고, 인기 가도가 아래로 향하는 것을 그인들 어찌 막을 수 있었을까.
1993년 9월 15일 처음 소송을 당해 고난의 길로 들어선 이후 2003년 11월 21일 마이클은 법정에서 "거짓말은 단거리를 달리지만, 진실은 마라톤을 달립니다. 진실은 이 법정에서의 마라톤에서 승리할 것입니다"고 말했다. 이것이 떳떳한 그의 진심이었을까.
●마이클 잭슨, 한국에 오다
1999년 6월 25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내한 공연이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1996년 그의 단독공연 이후 두번째 내한 공연이었다. 4만명의 관객이 몰린 이날 공연에는 '보이즈 투 맨' '여명' '바네사 메이' '파트리샤 카스'가 참여했고, 각국의 슈퍼스타들이 총 출동해 5시간여 동안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마이클이 남북 재결합을 상징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조형물 위에서 노래하는 장면과 한국에 처음 모습을 보인 팝계 최고의 디바 '머라이어 캐리'의 무대가 하이라이트였다.
당시 30만원에 달한 고가의 티켓가격과 예고 없이 30분 일찍 시작한 공연, 그리고 공연 당일까지 출연자가 공개되지 않는 등 진행상 미숙함으로 인한 비판의 목소리 또한 높았다.
●'스릴러' 앨범, 4000만장 판매
'스릴러(Thriller)'는 CBS레코드사의 집계에 의하면 미국이 3200만장, 캐나다 220만장, 프랑스 180만장, 일본 70만장 등 전세계에서 4000만장 이상 팔렸다.
음반시장이 좁아 라이선스 음반의 경우 5000장이 팔리면 성공이라고 보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곡은 5만장이 팔렸다.
이 외에도 'Heal the world'재단을 세워 한번에 800억원을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등 연예인 중 가장 많은 기부를 했고, 뮤직비디오에 이야기를 도입, 세계를 돌며 123번의 공연, 그래미 시상식 8개 부문 수상, 여동생 '자넷 잭슨'과 뮤직 비디오 신 투자 금액 세계 신기록, 생애 통산 앨범 판매 세게 1위 등 마이클 잭슨만이 갖고 있는 기록들은 다양하다.
통기타 가수ㆍ문화공연시민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