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류하는 물때를 기다리는 뱃사람들의 지혜를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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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역류하는 물때를 기다리는 뱃사람들의 지혜를 배워라"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물때
크게는 우주운행의 원리요
작게는 하루, 한 달, 일 년의
순환의 원리라 할 수 있다
  • 입력 : 2018. 03.08(목) 21:00
물이 나면 건너고 물이 들면 바다가 되는 신안군 반월박지도 노두. 필자 제공
제 철을 모르는 철부지(철不知)

철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아이들이 엉뚱한 일을 저질렀을 때 혹은 어른들이 무리한 일을 행했을 때 흔히 내뱉는 말이다. 무슨 뜻일까? 사시사철의 사시와 사철은 같은 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계절을 말한다. 철이 사시사철의 줄임말이니 철을 모른다는 것은 계절의 흐름을 모른다는 뜻이다. 네 개의 계절을 합하면 1년이 되므로 1년의 흐름을 모른다는 비유다. 농업이나 어업 본위의 시대에는 계절이 들고남을 아는 것이 대단히 큰 지식이었다. 일 년에 거의 1모작밖에 할 수 없는 우리네 생태환경에서는 실수하여 한 계절을 허비하는 게 곧 굶어죽는 일에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일 년만 사시가 있는 게 아니다. 한 달에도 사시(四時)가 있다. 회(晦), 삭(朔), 현(弦), 망(望)이 그것이다. 회는 음력에서 한 달의 맨 끝 날을 가리킨다. 그믐밤이니 당연히 어둡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삭은 매월 초하루다. 현은 활시위처럼 생긴 달을 뜻하므로 반달이 되는 날이다. 망은 보름달이다. 휘영청 보름달이 뜨면 제의도 하고 소원도 빈다. 응당 무언가를 바란다는 뜻으로 전용되었다. 달이 이지러졌다가 생성되는 이치를 받아 만들어낸 말들이다. 생리를 뜻하는 월경(月經)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맨스(month), 경도(經度), 월사(月事), 월후(月候)가 모두 같은 뜻이다. 그래서 '달거리'라 한다. 생명을 잉태하는 인체의 메커니즘도 사시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썰물과 밀물 혹은 만조와 간조

남도지역에서 한 해와 한 달의 사시 운행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 사례가 물때 인식이다. 전국에서 섬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남도지역의 생태적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아 활동하는 어민들뿐 만이 아니다. 근래는 낚시꾼들이 물때에 가장 밝은 듯하다. 물때만 알아서는 순환과 흐름의 이치를 다 아지 못한다. 바람을 더불어 알아야 한다. 달의 인력이 만들어낸 밀물과 썰물은 바람과 연동되어 있다. 보름이라는 시간을 주기로 반복되는 물때는 어로활동의 시간을 한정하는 제약조건이다. 바람은 어로활동의 가불가를 결정할 수 있는 조건이다. 내가 집필한 전남무형문화유산 물 때 항목을 참고해 간단하게 설명해본다. 만조는 물이 최고로 늘어난 상태에서 다시 썰물이 나가기 전 상태다. 간조는 물이 최저로 빠진 상태에서 밀물이 들어오기 전 상태다. 조석(潮汐)은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시작점 즉 만조와 간조의 일별 시간이다. 사리는 만조와 간조의 수위차가 높고 조류 흐름도 가장 빠른 시기다. 음력으로 보름과 30일이 해당된다. 조금은 만조와 간조의 수위차가 작고 조류 흐름도 가장 약한 시기다. 남도에서는 대개 음력 초야드레 조금, 스물사흘 조금이라 한다. 8일과 23일이 가장 물의 흐름이 약하다는 뜻이다. 무시는 조금 다음날 조금물때와 비슷한 수위와 조류속도가 약한 시기다. 예비 조금이라고 할 수 있다. 남도쪽 조수간만의 차는 물의 유동이 가장 큰 사리 때 약 4M다. 옹진, 인천지역으로 올라가면 9M정도 된다. 발해만 내안으로 들어갈수록 들물과 썰물의 유동 폭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매 여섯 시간 마다 이 들고남을 반복하니 물때의 이치가 참 오묘하다.



'조금'과 '사리'라는 물 때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물때와 관련해서는 전남대학교 김현이 석사학위논문에서 밝혀둔 정보가 매우 유용해 보인다. 필요한 부분을 몇 개만 인용해본다. 보름주기 물때는 말 그대로 15일의 하루하루에 그날의 바닷물의 상태를 가리키는 이름을 붙인 구분체계다. 그래서 물때의 명칭을 15개 사용한다. 이 명칭들이 한 달에 두 번 반복된다. 예컨대 음력 1일과 16일의 물때는 항상 '일곱물'이다. 음력 10일과 25일의 물때는 항상 '한물'이다. 특정 날짜에 특정 물 때 명칭이 고정되어 있어 음력 날짜와 물때가 일치한다. 지역에 따라서 세는 방법이 다르다. 고흥지역은 남해안의 여덟 물때다. 음력 15일을 기준으로 '보름일곱물-야달물-아홉물-열물-열한물-열두물-대갱기-아침조금-스무살한조금-한물-두물-서물-너물-다섯물-여섯물-그물 일곱물'과같이 센다. "물 다 났소?"라고 물으면 물이 모두 나갔습니까? 썰물이 다 나갔습니까? 라는 표현이다. 여수 남양면 지역에서는 모두 날물이라고 하고 고흥 나로도에서는 썰물이라고 한다. 방언에는 지역별 편차가 있다. '씨'는 갯벌이 드러나서 작업을 할 수 있는 때,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시(時)의 센 발음이라고 해석된다. 예컨대 "오늘 씨가 좋아서 갯것이 많이 잡힙디다", "오늘 씨가 어찌 되겄소" 등으로 말한다. 아침 조금은 음력 22일과 7일이다. 즉 열세물이다. '아침+조금'의 형태다. 아침조금의 어원은 아치조금/까치조금으로 보고 있다. 아치와 까치는 우리문화 여러 곳에서 사용되는 말이기 때문에 면을 달리해 소개하겠다. '조금'이란 밀물과 썰물의 차가 가장 적을 때를 이르는 말이다. 음력 7일과 8일, 22일과 23일을 말한다. 서정범이 쓴 '국어어원사전(보고사, 2000)'에서는 조금은 '조감>조금'의 변화 형태라 한다. '조감(潮減)'이 변한 것으로 본다.



바닷사람들은 물때와 바람을 어떻게 이용했을까?

바다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자연재해는 바로 바람이다. 바다에서 세찬 바람이 불러일으키는 풍랑은 곧 목숨과 직결된다. 남도의 가장 원해지역인 흑산군도의 예를 들어본다. 어업을 생업의 근간으로 삼았던 탓에 바다와 바람에 대해 상세한 인지체계가 발달한 지역이다. 풍선배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더욱 그러했다. 아무 때나 배 운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람을 적절하게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파람이 불 때를 기다렸다가 목포로 향한다.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이기 때문에 목포까지 하루면 당도할 수 있었다. 반대로 목포에서 섬으로 돌아갈 때는 샛바람을 이용한다. 바람이 잘 맞지 않으면 선상에서 사나흘씩 시간을 보내야 했다. 200여 년 전 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 사례가 단적인 증거다. 가고자 하는 방향의 반대쪽에서 바람이 불면 어떨까?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반드시 가야할 경우에는 역풍을 타고 전진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갈지자(之) 항해법을 이용한다. 갈지자 항해는 배를 돌릴 때가 매우 중요하다. '아두줄'을 조정하는 이를 '아두잽이'라고 하는데 아두질을 잘 못 하면 전복되고 만다. 그래서 숙련공이 필요하다. 남도는 서해와 남해를 포함해 물때와 바람 등의 환경에 매우 민감한 지역이다. 전승되는 물때 지식은 선사고고시대부터 활용되고 전승되어 온 환경적응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무형문화유산 중에서 가장 토대적인 민속지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물때를 안다는 것은 때를 기다린다는 뜻이기도

한해 한 달 속에 사시가 있는 것처럼 하루에도 사시가 있다. 단(旦), 주(晝), 모(暮), 야(夜)가 그것이다. 단은 지평선 혹은 수평선에서 해가 떠오는 모양을 형용한 글자다. 아침을 나타낸다. 주는 햇볕이 쨍쨍한 한낮을 말한다. 모는 해가 지는 저물녘이다. 야는 문자 그대로 밤이다. 이것을 육십갑자로 늘리거나 혹은 일 분 일초의 작은 단위 시간으로 수렴해도 원리는 같다. 시간을 분절하여 이름붙이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지난 칼럼에서 다룬 바 있다. 크게는 우주운행의 원리요 작게는 하루, 한 달, 아니면 일 년의 순환의 원리라 할 수 있다. 이 순환을 아는 자가 철든 자이고 비로소 어른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이 이치를 모르고 철이 지남을 깨닫지 못하면 철부지에 불과하다. 달의 흐름을 모르고 날의 흐름을 모르면 제때 맞춰 씨를 뿌리지 못하고 가꾸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추수 때가 되어도 수확할 것이 없다. 만약 물때가 맞지 않거나 비바람이 강하게 불 때는 어찌 해야 하나? 4차산업혁명시대가 도래했으니 기술력으로 돌파하는 방법도 있겠다. 마치 갈지자로 바람을 역류하여 항해를 하는 방법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기다려야 한다. 낙향하여 이른바 세월 낚는 강태공들이 역사에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류하는 물때를 기다리는 뱃사람들의 지혜와 같은 것이다. 철도 모르고 물때도 모르면서 무작정 나아갔다가는 필시 난파하기 십상이다.



남도민속학회장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한물 기준

번호

날짜

물 때 명칭

유형1

유형2

유형3

1

음력25일

10일

한마

한물

한물

2

음력26일

11일

두마

두물

두물

3

음력27일

12일

서마

서물

서물

4

음력28일

13일

너마

녀물

너물

5

음력29일

14일

다섯마

다섯물

다섯물

6

음력30일

15일

여섯마

여섯물

여섯물

7

음력1일

16일

일곱마

일곱물

일곱물

8

음력2일

17일

야닯마

야닯물

야닯물

9

음력3일

18일

아홉마

아홉물

아홉물

10

음력4일

19일

열마

열물

열물

11

음력5일

20일

한게끼

열한물

열한물

12

음력6일

21일

대게끼

한게끼

열두물

13

음력7일

22일

아침조금

대게끼

열서물

14

음력8일

23일

한조금

조금

조금

15

음력9일

24일

무심

무심

무시

 조금 기준

번호

날짜

물 때 명칭

유형1

유형2

유형3

1

음력8일

23일

한조금

조금

조금

2

음력9일

24일

무심

무심

무시/무쉬

3

음력10일

25일

한마

한물

한물

4

음력11일

26일

두마

두물

두물

5

음력12일

27일

서마

서물

서물

6

음력13일

28일

너마

너물

너물

7

음력14일

29일

다섯마

다섯물

다섯물

8

음력15일

30일

여섯마

여섯물

여섯물

9

음력16일

1일

일곱마

일곱물

일곱물

10

음력17일

2일

야닯마

야닯물

야닯물

11

음력18일

3일

아홉마

아홉물

아홉물

12

음력19일

4일

열마

열물

열물

13

음력20일

5일

한게끼

열한물

열한물

14

음력21일

6일

대게끼

한게끼

열두물

15

음력22일

7일

아침조금

대게끼

열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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