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이등병의 엄마’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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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세상 읽기> ‘이등병의 엄마’를 보고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광산갑 지역위원장.광주비정규직센터 이사장
  • 입력 : 2018. 07.05(목) 21:00

1963년 7월 9일에 미영이 태어났습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딸을 그리워하며 전역을 기다리던 아빠가 전역을 한 달 앞 둔 어느 날 사망했다는 전보를 미영의 엄마가 받았을 때 미영은 갓 생후 7개월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복막염으로 수술 중 약물 과민반응으로 사망 후 화장.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서양화가를 지망하는 청년 예술가였던 아빠가 평소 사용하던 스케치북과 그림물감, 스케치를 위한 연필과 목탄이 그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미영에게 남겨진 유산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빠를 군대에서 잃었고, 아빠는 월남에 돈벌러 갔다는 엄마의 말만 믿고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7월3일 광주가톨릭평화방송국 5층 대강당에서는 연극 ‘이등병의 엄마’ 공연 1주년을 맞아 영상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군사상유가족협의회 호남지부와 국민TV광주지역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노무현재단, 광주지역일반노조가 함께 주최하여 120여 좌석을 꽉 메우고 성황리에 상영되었습니다. 저도 국민TV와 민족문제연구소, 노무현재단의 회원으로서 상영회에 아내와 함께 참여했습니다.

이등병 정호는 단란한 가정의 건강한 아들로 구김살 없이 자랐습니다.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훈련소 앞에서 군의문사 진상을 규명하고 순직처리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하는 유가족 어머니들과 만나게 된 정호 엄마는 훈련소에 입대하는 아들에게 불길한 소리를 한다며 외면합니다. 정호 엄마에게 입대한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이며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으니까요.

정호는 착실하게 군 생활을 잘하고 있으리라는 가족들의 기대와 달리 내무반의 상급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며 힘든 군 생활을 버텨가야 했습니다. 결국은 상급자 폭행으로 인해 초래된 사고로 전기에 감전되어 사망하게 됩니다. 군은 사실을 감추고 정호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 실수로 감전되어 사망 한 것으로 꾸미고 순직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호 엄마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외면했던 군사상유가족협의회와 힘을 모아 국방부에 끊임없이 진상규명과 순직처리를 요구하면서 사망 사고의 진실도 규명하고, 순직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국방부의 냉동고에는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군의문사의 시신들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여전히 군에서 사망자들이 발생하고 있고, 자살로 인해 세상을 등지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 사망했지만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한 장병들이 많습니다. 자살로 사망했으리라고 믿어지지 않고,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냉동고에 보관된 우리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늘 내 아들에게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강원도에서 이등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한 저와 제 아들도 그리고 미영의 아빠도 모두 대한민국의 아들입니다. 대한민국은 그들을 건강한 모습으로 가정에 돌려보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완벽한 신체를 가졌다고 판정되어 군복무를 시작한 장병들이 건강한 심신 그대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군복무에 부적절한 심신을 가지고 있었거나, 군복무중 취약한 심신이 된 장병에게 군복무를 강요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은 국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군복무중 사망한 장병들의 가족, 특히 군의문사 유가족들의 아픔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어린 공감의 시간을 가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1964년 3월 어느 날 돌아가신 미영의 아빠는 그 해 12월에 태어난 저에게 미영의 삶을 맡겼는지 모릅니다. 30년 전 어느 날 만난 미영에게 저는 아빠가 되어주겠다고 약속 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지는 못했지만 늘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보면서 그 아픔의 깊이가 다시 느껴졌습니다. 유가족 중에 한 분이 소리내어 펑펑 우시는 동안 제 가슴도 울고 있었습니다.

정치는 가장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의 편에 서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국방의 대열에서 가장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바로 이 분들 입니다. 군의문사 유가족 여러분들의 곁에 정치가 바로 서고, 국가가 그들의 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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