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100개쯤 깨부수려 한다, 내 껍질 깨부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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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화의 아트데이트
달항아리 100개쯤 깨부수려 한다, 내 껍질 깨부수듯
장경화의 아리송 ART데이트
‘여백- 번짐의 有, 은유의 無’ 수묵화가 정광희
고흥 부친에게 배운 한학
문방사우와 함께 접한 서예
  • 입력 : 2018. 07.12(목) 21:00
  • sgpark@jnilbo.com
정광희 작품 '나는 어디로 번질까'.
한학으로 시작된 수묵수업

전라도 고흥의 어느 시골, 한 부친은 한학을 깊이 공부하신 분으로 어린 아들에게 한문과 함께 담겨있는 정신과 삶의 자세, 지혜에 대한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어린 아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친을 통해 먹을 갈고 붓을 잡는 법을 습득하였던 기억을 온전하게 체득하여 문방사우(文房四友)가 낯설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였다. 이렇게 어린 아들은 부친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한학과 서예를 접하게 되었다.

어린 아들이었던 정광희는 점차 성장하면서 본격적인 서예공부에 대한 갈증으로 (운암) 조용민 선생 문하에 입문하여 서예 5체(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를 연마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20세로 서예를 통해 전통을 수업했던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이 시기는 그에게 전통서예의 답습이 아닌 현대적 재해석에 대한 관심으로 더욱 깊이 있는 수업을 위해 서예가 (목인) 전종주 교수가 있는 호남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는 대학에서 서예의 기초과정을 재 수업을 받게 되었다. 서예법첩을 임서하면서 답습과 연마를 거듭 거듭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 문자의 해체와 물과 먹의 사용법, 필의 운용에 있어 기법과 효과에 대한 실험도 반복하였다. 특히 갈필을 사용하는 효과와 느낌, 종이에 번져가는 먹, 물과 먹의 관계 속에 다양한 먹색 등 이 모든 것은 서예정신으로 시작되고 끝을 맺고자 하였다.

대학 4년간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에게 관심은 전통의 답습이 아닌 현대적 재해석에 대한 양식적 문제를 고민하고 실험을 반복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결국 그가 습득한 현대서예의 심화는 회화로의 가치를 이끌어 내는데 예술적 목표를 두고 대학원 진학(수묵화전공)을 실행하게 된다.

이렇게 연마한 그의 서예문자들은 종이 위에 회화적 요소와 함께 해체와 결합을 반복하면서 서예가가 아닌 수묵화가로의 변신을 시작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시기(2000년 초.중반) 그의 작품들을 보자면 거칠지만 전통 수묵정신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양식적으로는 진보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 작품은 해체된 문자와 함께 여백을 존중하면서 그의 성정(性情)으로 연출된 서예적 형식과 원리에 충실하고 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결국 부친으로부터 시작되었던 한학과 수묵정신은 서예기초과정을 연마하면서 전통서예 파괴를 통해 새로운 예술지평을 열고 확장시켜가는 수묵화가로 내공을 축적시켜 붓끝을 날카롭게 세우고자 했다.



‘ㅡ 한일’자에 감춘 고졸(古拙)미

정광희는 작품과정은 노동의 땀이 묻어나는 독특한 기법의 장지화면을 제작 활용한다. 작업 방식도 독특하다. 1㎝ 두께의 장지를 말아 일정한 화면을 구성하고 그 위에 고서(古書)를 접착시키거나 또는 자신의 하루하루 생활일기를 깨알글씨로 적서해 간다. 그리고 그 위에 장지를 덧입혀 바탕 글씨의 강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형상이 드러나게 하는 배채법(背采法)을 채용하고 있다. 이렇게 제작된 화면 위에 다시 ‘ㅡ한일’자 또는 사각형상을 덧입혀 먹의 진함과 연함을 교차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작은 판넬 작품은 연속된 과정 속에 제작되어 전시장의 큰 벽을 채우는 대작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전체적인 큰 틀에서 보자면 하나의 사각형상으로 그 속에서 먹의 강함과 부드러움의 불규칙적인 반복 이미지로 남게 된다.

즉, 생활일기의 누적으로 적서된 장지에 배접을 겹쳐 먹빛은 진하게 보여 지는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이러한 깨알글씨의 생활일기는 읽을 수 가 없다. 단지 화면에 인식되어진 언어의 흔적이자 삶의 흔적으로 보여 질 뿐이다. 결국 그 생활일기는 이미지로 중첩시키거나 덧 입혀져 글자로 인식을 할 수 없게 되어 궁극적으로 사유의 공간으로 남겨져 확장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치 고요할 때 작은 소리도 잘 들리듯 작은 글씨의 행위가 이미지로 남아 은유의 공간이자 사유의 공간으로 남아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대표작으로 ‘성찰’(2014년작)과 아직 진행 중이지만 미완성 작품 ‘인생 5.18’(2012~)이 있다. ‘인생 5.18’은 아직도 518개의 판넬을 제작하는 과정 중에 있다. 작품을 구성하는 장지에 깨알글씨를 써 놓은 배접된 일기는 하나의 책이 되는 수묵그림으로 우리에게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ㅡ한일’자는 1980년 광주사람 하나하나에 집중되어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 행방불명이 된 사람, 아직 생존해 있는 사람 모두가 소중한 삶이다. 그 삶을 한일 하나 하나를 통해 5.18정신을 말하고 있다. 지금 그 정신은 어디로 번졌을까? 궁금함을 갖게 한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 들었던 광주의 이야기를 깨알글씨로 적서(積書)하고 그 위에 먹의 농담을 입혔다. 무수한 ‘ㅡ한일’자와 함께 깨알글씨는 전시장에 큰 틀로 구성되어 농담의 이미지와 여백이 함께 공존하게 하였다. 마치 먹의 농담으로 여백은 물결이 되고 바람 흔적이 되어 연출된 공간 속에 출렁거리는 듯하다. 그의 작품 ‘인생 5.18’은 연출되어지는 여백에 담겨진 시대와 역사에 대한 관조는 그 속에 존재하는 삶에 대한 애착의 긍정은 자연스럽게 투영된 공간으로 읽혀진다. 다시 말해 판넬 하나하나의 여백과 함께 ‘ㅡ한일’자는 삶의 존귀함으로 그에게 내제되어 있는 관조와 긍정의 세계를 투영하고 있는 생명의 깊이로 보여 진다. 이러한 그의 작품 ‘인생 5.18’은 어떠한 형상성으로 나타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는 것은 예술가가 갖는 시대적 책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예술가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기운은 문자와 여백, 수묵의 농담처리 등 완성도는 높은 반면 전반적으로 다소 세련미가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어수룩하고 투박함이 엿보인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그는 전라도 사람으로 어린 시절부터 시골에서 훈련되어진 예술적 감성이 작품제작에 있어 작동되었을 것이라. 1500년 전, 백제의 고졸미학이 우리 전라도에 깊이 자리하고 있음은 따로 언급할 여지는 없다. 우리는 이러한 고졸한 미는 오히려 편안하고 즐겁다 마치 콜라보다 햄버거보다는 된장국에 보리밥이 좋듯이 말이다. 그러한 연장선에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고졸한 형식미학은 편안하고 우리다움이다.



달 항아리의 번짐과 파격미

앞서 밝힌바와 같이 정광희는 전통서예의 충실한 수업기를 마친 이후 현재까지 전통적 양식에 머무르지 않고 형식적 실험과 도전으로 일관되어 왔었다. 오히려 전통과 관념을 깨고자 자아를 경계하였으며, 자기미학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형식미학을 추구하여 왔었다는 점은 높이 사고 싶다. 이 지점에 자기미학의 출발점은 수묵정신이요 자기 수행과정에 예술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연장 속에 그는 달 항아리를 이용한 새로운 수묵의 번짐을 시작하였다. 퍼포먼스를 통한 설치와 영상작업을 동시에 제작하는 결과를 얻고자 한다. 우선 그가 던진 화두인 ‘번짐’은 무엇인가? 수묵정신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정광희가 던진 화두 ‘번짐’은 종이위에 먹이 번져가듯 “우리사회의 주체를 자아로 두고 자신의 성찰과 자신의 깨끗한 샘물에서 오는 ‘번짐’, 나로부터 세상으로 번져가는 하나의 카테고리의 연결이자 사유이자 자유입니다.” 라고 한다. 이는 자신의 예술적 관점을 사회학적 해석과 결합을 의미하고 있어 보인다. 이는 곧 그의 예술세계를 자아를 뛰어 넘어 사회와 지구촌 전체로 세계관을 확장시켜가고 있음을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혹자 별로 다를 것이다. 그 또한 과거와 달리 현재적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과거에는 적서해가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다면 현재는 행동을 통한 몸과 정신의 합일치로 얻고자 함이다. 과거에는 고요와 침묵으로 내면을 보고자 하였다면 현재는 직관에 의해 내면을 보고자 함이다.

과거에 ‘ㅡ한일’자를 붓으로 그었다면 이제는 ‘달 항아리’에 먹을 담아 깨뜨리고자 한다. 그럼 왜 ‘달 항아리’인가? 아무래도 ‘달 항아리’가 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연의 ‘달’을 닮은 형상적 관점에서 ‘달 항아리’는 전통적 개념이자 관념의 상징으로 거꾸로 뒤집어 보는 그의 진보적 관점에서 파괴해야 하는 상징적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ㅡ한일’자의 일획과 달 항아리를 깨는 것은 일회성과 즉흥성의 동일한 속성에 기반 한다. 정신을 모으는 도구로서 동일하고 솔직한 자신만의 감정을 여과 없이 반영한다는 것, 또한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달 항아리’는 그의 성정(性情)에서오는 미적 감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제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수묵정신을 여백에 어떻게 담아내는 가에 관한 문제를 주목해보고자 한다. 투박하고 고졸한 미학적 어법에서 오는 관조의 예술세계가 투영된 여백, 사유와 생명의 공간으로 되살아나는 여백, 이러한 여백을 통해 무한한 형상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는 이러한 ‘번짐’을 통한 여백은 세상을 은유하고 존재의 가치와 생명의 아름다움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그는 이러한 ‘달 항아리’를 100여개쯤 깨는 퍼포먼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예술가는 자기 예술양식의 변화를 꾀하고자 할 때 그만큼 자신의 예술적 내공이 축척되어 있음을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이처럼 정광희도 예외 없이 자신의 예술을 두텁고 강함으로 진보하기 위해 오늘도 눅눅한 작업실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정광희 주요 경력

■ 1971년 고흥 출생

■ 호남대.중앙대학원 졸업

■ 개인전 8회(광주.서울.중국)

■ 초대전.

2018년 ‘퇴계, 안동에 깃들다’(대구신세계갤러리.대구) ‘침부지력’(7space.북경) 2017년 ‘진공묘유’(Sylvia Wald and Po Kim Gallery.뉴욕) ‘제5회 경계를 넘어 2인전’(탑골미술관.서울) 2016년 ‘제16회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광주시립미술관.광주) ‘창원조각비엔날레’(성산아트홀.창원) ‘한.중 현대미술 20인전’(광저우미술학원.광저우) 2015년 ‘재질의 은유’(7道공간.북경)

■ 주요작품 소장처

광주시립미술관

■ 기타경력

광주시립미술관 북경레시던시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장경화 조선대 미술대학 겸임교수

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2회)

뉴욕 얼터네티브 미술관 파견

뉴욕 록펠러우 재단(ACC) 기금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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