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들었다 그날만은 아니지만 우리는 버릇처럼 촛불을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거리에 나갔고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어린 자식들 손길에 이끌리듯 하나 둘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누구를 타도하기 위해서인가 나라를 걱정해서인가 아니면 하늘이라도 원망하기 위해서인가 이제 좀 나아지는가 이제 좀 살만한 세상 오는가 싶었고 이제 골목길에서도 술맛 나는 세상 오는가 싶었지만 악귀의 무리들은 소나기를 피해갔고 역시 믿을 놈은 없었으며 어리석은 민중은 또 ...
2023.11.02 12:42요즘 지구가 너무 빨리 돌아서인가. 중심잡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어지러운 것 같지는 않지만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아침과 저녁 생각도 달라지니 무엇 하나 내 것이고, 우리 것이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 국가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이때 우리가 말하는 한국의 美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검색을 해보니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조화를 중요시하며, 여백과 운치가 있는 것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다. 또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
2023.10.19 14:05알타이 산맥은 몽골과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하는 고지대의 오지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로 일컬을 정도로 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우리 한민족 원류 중의 하나인 ‘부여족’의 뿌리가 이곳이라는 것이 여러 설화나 민속 등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도 그 가능성이 조금씩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알타이’라는 말이 ‘황금(金)’이라는 뜻인데, ‘신라’의 지배층이었던 경주 ‘김(金)’씨가 이곳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천마총 발굴...
2023.10.05 12:43어둠이 채 가시기 전인 이른 새벽부터 순례자들의 순례가 시작된다. 순례자들 사이에 끼어서 첫 번째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광활하게 펼쳐진 황무지 너머 멀리 만년설의 고봉 ‘구르라 만하타(Gurla Mandhata 7728m)’가 웅대한 자태를 뽐내고, 그 밑에 ‘마나사로바’ 호수가 검푸른 바다색으로 가물거리고 있다. 이렇게 수미산을 걸어 도는 것을 ‘코라’ 또는 ‘파리카라마’라 하는데, 보통 시계 방향으로 시작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도는 무리들도 있다. 이곳 순례자들은 대부분 멀리서부터 걸어온...
2023.09.14 12:18먼저, 참으로 부끄럽고 애통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옛날, 즉 1402년인 조선 초기에 세계 최초로 아프리카까지 그려 천하를 넘어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던 것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다. ‘좌의정 김사형’, ‘우의정 이무’, ‘참찬 권근’, ‘검상 이회’ 이 네 분이 당시 최고의 세계지도를 그려낸 그 주역들이다. 그러니까 희망봉이 발견되기 훨씬 전이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야단법석을 떨던 때 보다 무려 90년 전이다. 물론 지금 시각으로 이 지도를 보면 곳곳에서 엉뚱...
2023.08.31 12:37사할린 동포 ‘배도흘’의 안내를 받아 ‘코르사코프’라는 남쪽 항구에 갔다. 언덕 위에 오르니 부둣가 저 멀리까지 바다가 가없다. ‘망향의 언덕’이란다. 일제가 패망하자 돌아가는 일본인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면서 이곳 동포들은 너나없이 이 언덕에 올랐다. 자신들을 조국으로 실어다 줄 배가 오리라 믿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배는 끝내 오지 않았다. 조국이 이들을 버렸다기 보다는 애당초 기대를 말았어야 했다. 그때가 벌써 78년 전 일이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이다. 그...
2023.08.17 16:08페르시아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란 여행을 마치고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루트를 따라 튀르키예로의 국경을 넘다가 이란의 국경마을 ‘바자르간’에서 이른 아침에 나는 또 사고를 치고 말았다. 예기치 못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 속에서 또렷한 원추형의 만년설산이 코앞에 덩그렁. 순간적으로 자력에 끌리듯 그 산을 향해 무작정 올랐지 뭔가. 알 수 없는 확성기 소리가 요란하고 무장한 국경수비대가 들이닥쳤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들어 조사를 마치고 풀려났지만 난감한 순간이었다. ...
2023.08.03 13:50타클라마칸 사막 가장자리를 돌아 파미르를 향하고 있었다. 불같은 사막 속의 또 다른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예로부터 대상들이나 구법승들이 오가던 길이지만 정벌의 꿈을 안고 원정을 나선 고선지 장군도 이 길을 갔다. 또 혜초 스님도 천축국에서 넘어와 이 길을 지나면서 중국 사신을 만나 오언시를 남겼다. 그대는 서쪽 이역이 먼 것을 한탄하고 나는 동방으로 가는 길이 먼 것을 애달파한다. 길은 거칠고 산에는 눈이 쌓였으며 험한 골짜기에는 도적도 많다. 새도 놀라 뾰족...
2023.07.20 12:37장마가 시작되어서 날이 후덥지근하다 금년에도 기록적인 폭염이 올 거라고 하는걸 보면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음이다. 그냥 그대로의 자연현상인가 아니면 인간들이 저지른 죄 값인가 가뜩이나 짜증나는 소식만 들려오는 세상에 기대하는 것은 없다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죄 없는 술잔만 기울이고 있을 것인가 얼마 전 찾아 간 캄차카 풍경으로 달래본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곳이기도 하면서 누구나 쉽게 가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보니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
2023.07.06 15:17장마가 시작되는가. 비가 내린 뒤에도 뭔가의 미련이 남는지 구름이 좀처럼 떠나지 못하고 발아래 바다를 이룬다. 햇살 좋고 꽃이 피어야만이 잘난 것은 아닌 듯,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세상이 있고 없고다. 문전옥답이라는 말 대신 여기서는 문전비경이라고나 할까. 비경은 아무에게나 다가오는 게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너무도 쉽게 맞이하고 있으니 그 복은 또 어디에서 왔을꼬. 나를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산 좋고 물 좋고를 알아버리면 낭패라 한다. 세상을...
2023.06.22 14:31건물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옛적에는 뉴욕의 빌딩 숲 사진을 보고 놀랐는데 지금은 우리 주변도 별 다르지 않다. 경제 수준의 척도를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는 것 같다. 요즘 드나들면서 눈에 띄는 것은 여기저기 인간의 집짓기 현장이다. 살기도 팍팍하고 인구도 급감하고 있다는데 무슨 계산으로 저리도 많은 집들을 짓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것도 하늘 높이 올라가는 초고층으로……. 땅덩어리가 작아서 그러려니 하면서도 높은...
2023.06.08 12:15뻥~ 뚫렸다. 총탄에 유리창이 뻥~ 뚫렸다. 아니 우리들의 가슴팍이 그날 조준되어 뻥~ 뚫린 것이다. 누구는 죽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43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우리는 지금 살아 남아있다. 무엇으로 살아 왔는가. 무엇으로 죽을 것인가. 그날이 기억되고, 오늘이 쌓여서 역사가 되어 왔지만 인간의 역사를 얼마큼 신뢰할 수 있을까. 또 그 5월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분노의 눈물과 슬픔은 말라버렸어도 가슴속의 응어리는 아직도 다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좀 ...
2023.05.25 12:13잠자리가 불편한 것도 아닌데 잠을 이루지 못한다. 뭉그적대다가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솔찬한 것이 벌써부터 여름에 젖어드는 것인가 별들도 사연이 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아니면 무언가가 두려워 불침번을 서는지 몇 개가 깜박거린다. 세상은 시끄럽지만 산사의 밤은 그래도 고요하다. 이런 풍경 속으로 갑자기 별똥별이 스치거나 난데없는 혼불이라도 날게 된다면 아름다운 풍경인가, 두려운 풍경인가. 세상의 모든 것은 허상이라 말하지만 그 높은 차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탓할 ...
2023.05.11 10:20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북촌 너분숭이에 하염없이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연중 관광객들이 넘치는 제주 섬이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날씨가 좋지 않는 날이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4.3 유적지’라는 표지판이 서 있기는 하지만 웃고 즐길만한 것이 없는 곳이어서 그럴 것이다 한 날 한 시에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이 학살된 곳이다 널려있는 몇 개의 작은 돌무더기 울며 죽은 엄마의 젖을 빠는 것도 못마땅했나 왜 그랬을까 왜 이 어린애들은 죽어야만 했을까 70년이 ...
2023.04.20 13:55산들의 정상은 거의가 천왕봉이라 부른다 무등산 또한 그러하고 가까이 지왕봉, 인왕봉도 있다. 천(天), 지(地), 인(人)은 곧 삼태극(三太極)이니 우주를 떠받들고 있는 기운 찬 곳이 바로 이곳이던가 정상을 향하다 올려다 본 풍경이다 입석들이 줄을 짓고 있어 저기가 정상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정상에 조금 못 미치는 곳이었다. 꼭 정상에 올라야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에 나섰으면 정상에 발을 딛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하니까 조만간 정상이 개방되면 찾는 이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2023.03.30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