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의 '용정'에 있는 대성중학교 교실의 칠판에 윤동주의 '서시(序詩)가 작곡된 악보가 쓰여 있었다. 1941년 11월 20일에 쓴 이 시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유고집에 수록된 서시다 독립운동의 열혈청년은 아니었지만 진실한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순수하고 참다운 인간의 본성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일제의 감옥에서 비운의 생을 마감했던 항일애국 시인 윤동주 오늘도 그가 그리워짐에 시로 대신한다. 윤동주의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
편집에디터2022.08.11 14:29비경은 언제나 그랬다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지리산 뱀사골 깊숙한 곳에도 숨겨진 것이 있다 실비단 폭포가 그것이다 이끼의 생생함이 더해져서 일명 이끼 폭포라고도 부른다 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볼거리 중 하나라고 하는 걸 보면 분명 비경임에는 틀림이 없음이다 6·25전쟁 직후 빨치산들이 이 아래에 있는 단심폭포에서 맹세 서약을 하고 숨은 샛길로 반야봉 비트를 향해 오르면서 이 폭포의 가냘픈 매력에 빠져 잠시나마 현실의 고달픔을 털어낼 수 있었을까나. 그래서인지 더욱 애처로운 비경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지금은 반달가...
편집에디터2022.07.28 14:42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여름철에는 응당 이런 것이라고 하면서 살아보지만 요즈음 우리나라 날씨가 열대지방보다 더 덥다고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세상이 시끄럽고 인간들이 지은 죄가 크다 보니 자연이 참다못해 분노하는 것일까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도 차분하지 못하다 차분 그 자체에 빠져 있다간 살아남지 못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우리를 끊임없이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차 한 잔 들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밀려오는 먹구름에 가슴 철렁해지기도 하지만 뭔가 좀 시원스럽게 펼쳐질 것만 같아 그 불안한 기운을 가슴으로 맞이...
편집에디터2022.07.14 15:31갯내음 풀풀대는 갯길을 따라 걸어본 적이 있는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자유를 느끼고 싶을 때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겠지만 잔잔한 바다와 잿빛 갯벌이라는 두 얼굴을 번갈아 볼 수 있는 갯길 여행에 망설일 필요가 없다 갯바람 맞으며 뚜벅뚜벅 걷다보면 혼자라도 쓸쓸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대는 벌써 바람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바다가 속살을 드러내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전남 도립공원인 신안 증도와 무안의 갯벌은 짱뚱어, 농게, 칠게, 뻘낙지... 등등의 생태의 보고로 경제적 가치를 말하기 이전에 주민들의...
편집에디터2022.06.30 14:38여름이 시작되었다. 젊음의 계절이라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지질한 장마와 뜨거운 날씨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할까 은근히 걱정된다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바다도 생각나고 물소리 들려오는 계곡도 벌써 부르는 것 같다 셰계를 뒤흔든 일들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지만 이 계절이 되니 정말 가고파 지는 곳이 있다 또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미래'로 알려진 히말라야의 서쪽 라다크 지역이다 눈앞의 설산을 보면서 이색적인 문화에 빠져드는 것도 좋지만 우리에게서는 이미 떠나버린 것들이 그곳에 가면 살아 숨 쉬고...
편집에디터2022.06.16 15:02사라진 왕국 백제의 숨결을 찾아 떠돌고 있었다 1,400 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아득하다 하지만 그 숨결은 아직도 느낄 수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 있겠는가마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 분칠되기 일쑤여서 왜곡되고 숨겨진 진실은 오늘도 恨을 풀지 못한다. 신라가 끌어들인 외세는 이 땅을 짓밟았고, 의자왕은 망국의 한을 품고 대륙으로 끌려갔다 있지도 않았던 삼 천 궁녀는 또 무엇인가 죽어서나 간다는 낙양의 북망산 언저리에서 근세에 심상치 않는 무덤이 우연하게 발견되었다 확실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백제 왕의 무덤이라 했으니 그게 의자...
편집에디터2022.06.02 14:56오월은 또 이렇게 왔다 싱그러운 계절이라지만 언제부턴가 잔인한 계절이라고도 부르는 오월이다 '민주의 성지'라 말하는 광주에 오는 외지인들에게는 세월은 자꾸 흘러서 오래 전 일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5.18 묘역이 참배의 차원을 넘어 관광 명소가 되었다 이제 다소 식상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광주 시민들에게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오월이다 이어지는 정치인들의 들락거림에는 관심이 없고 오래 전에 구묘역에서 찍었던 사진들이라도 들춰보면서 그날의 함성과 울분을 되새기고 희생된 민주영령들을 추모한다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지만 아니, 많...
편집에디터2022.05.19 15:42나는 자주 여행을 떠난다 국내의 이곳저곳만이 아니라 물설고 낯설은 다른 나라의 깊숙한 곳도 마다하지 않고 무대포식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우리 인생 그 자체가 여행이지 않던가 몇몇의 지인들과 어울려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혼자서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다소 외롭기는 하지만 홀가분 그 자체가 보석이다 휴식을 위한 것, 단순 관광을 위한 것, 일을 위한 것, 아니면 죄를 짓고 도망을 치는 여행자까지도 그 순간만은 자유인이 되는 것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자는 행복한 것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가고 고원에서 만년설을 ...
편집에디터2022.05.05 15:33전남 광양에 있는 해발 1,222m 높이의 백운산 남쪽으로 광양만과 한려수도가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론 지리산의 주능선이 펼쳐져 보이는 명산이다 도선국사의 부도 탑이 있는 옥룡사지로 가는 소풍길이 좋고 이른 봄철에 나오는 고로쇠 수액 채취가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백운봉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여럿 있겠지만 주봉과 따리봉 사이에 있는 아구사리 동산 한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얼룩지게 한 흔적들을 찾아보기 위함이다 여순사건의 주동자들이 처음 숨어든 곳이며 전남 빨치산의 최후 보루였던 곳이 바로 이 산이지 않던가....
편집에디터2022.04.21 16:22하늘이 돌고 땅이 돌아 모든 것이 어디론가 가버렸을 것만 같은데 또 다시 그 계절은 찾아와 유혹한다 꿈속에서 한 평생을 살았는데 또 다시 이 봄날이 불러들이는 것을 어찌할까 이것 또한 꿈이려니 생각해야겠지만 마음은 벌써 봄바람을 타고 두둥실 이다 선산의 무덤가에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난 꽃들이다 잠깐만이라도 이 꽃들에 묻혀 누워 있고 싶었지만 조상님을 기리는 시제의 날이라서 간단한 제수를 먼저 올렸다 조상님들에게 한 잔 올리고 산신령에게도 한 잔 올리고 나도 한 잔 마시고 이 꽃들에게도 한 잔...
홍성장 기자2022.03.31 15:09열화정의 동백 간밤에 일진 광풍이 몰아갔으나 창밖은 그대로이고 어김없이 봄은 또 찾아온다 세상에 지쳐있는 사람들아 봄바람을 타고 남녘으로 와라 여기저기서 꽃망울이 터질 기세다 매화도 피고, 산수유도 피기 시작하지만 열화정의 동백이 우리와 함께 겨울을 견디고서 붉디붉은 꽃들이 눈물이 되어 떨어진다 가지에 매달고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가 더 운치가 있어 보인다는 동백 봄의 전령사라 일컫지는 않지만 연못 위에 붉은 꽃수를 놓고 있는 모습도 놓치지 말자 요즘 신세대들에게도 나름대로의 감정이 있겠지만 '동백아가씨'라는 노래가 국민가...
편집에디터2022.03.17 14:33지금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날이 어두컴컴해서 낮인지 저녁인지도 헷갈린다 붉게 둥근 것이 태양이러니 하지만 뜨는 것인지 지는 것인지 그것도 헷갈린다 응당 태양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이지만 요즘 같아서는 그것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뜨는 것도 진다고 우기면 되고, 지는 것도 지금 뜨고 있다고 빡세게 우긴 놈이 임자니까 요즘 세상이 정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절이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하지만 정말 그 정의라는 게 있기는 하는 것인가 거짓으로 우기는 놈도 밉지만 그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자들이 더욱 한심스럽다...
편집에디터2022.03.03 14:40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전하노라 며칠 전이 정월 대보름이었다 떠오르는 둥근 달을 보면서 소망들을 비셨는가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면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전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지금은 흔하지는 않지만 마을 입구에 세워진 솟대다 솟대는 마을 공동체 신앙의 하나다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을 위하여 정월 대보름에 마을 입구에 세우는 것으로 그 기원은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분포는 만주, 몽골, 시베리아 등에 이르는 장승과 함께 북아시아 샤머니즘 문화권의 오랜 역사를 지닌 신앙물이자 전통문화다 새를 통하여 하늘과 인간세상...
편집에디터2022.02.17 16:32얼마 전 득량만 수문리 선창가에서 유령제가 있었다 6.25 직후 있었던 보도연맹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합동 유령제다 장흥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였던 유재성을 비롯한 장흥 지역의 40여명이 이승만 정권의 보도연맹이라는 덫에 결려 별빛조차 희미한 심야에 굴비 엮듯 결박되어 끌려가 득량만 바닷속에 수장되었다 그 시간에 수문리 마을 사람들은 멀리서 개구리가 떼로 우는 소리를 들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득량만 바다가 안다 이제야 목 놓아 울 수 있는 것인가 늦었지만, 너무도 늦었지만 좌우를 떠나 무고하게 돌아가신 모든 이들을 해원하는 ...
편집에디터2022.02.03 15:52동이 트기도 전에 어둠을 뚫고 산길을 올랐다 경주 남산의 신선암 마애불을 찾아가는 초행길이다 칠불암에도 아직 이른 시각인지 목탁소리가 없다 바윗돌 사이를 조심스럽게 오르며 얼마쯤 왔을까나 숨이 좀 차는 가 싶을 때 동쪽 하늘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고 시야가 트이는 곳에 큰 바위 몇 개 그 밑에서 뭔가의 움직임이 있어 보니 놀랍게도 사람들이었다 그 이른 시각에 두 여인네가 먼저 와 자리하고 있었던 것 운이 좋았던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동해에서 떠 오르는 아침 해의 첫 햇살이 마애불에 닿는 순간 우주의 기운이 온 천지로 ...
편집에디터2022.01.20 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