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전라도여"…이 움츠러듦의 비애를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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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칼럼
"하필 전라도여"…이 움츠러듦의 비애를 끝내자
  • 입력 : 2019. 04.22(월) 15:13
  • 김기봉 기자 gbkim@jnilbo.com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현재 진행형

금호그룹 경영위기·여수산단 대기업 불법에도 지역 비하

역사적 고비 때마다 사람의 도리 다했는데 이유없는 차별

자강(自强) 통해 편견 불식하려면 광주형일자리 성공해야

"요 빌어묵을 서울이란 디서는 전라도 사람이야 허먼 무시허고 차별허고 의심허고 손꾸락질 안혀? 똑겉이 대학 나오고 똑겉이 똑똑헌 사람들이 전라도라고 혀서 출세길이 맥히고 취직이 안되고… "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서 막일꾼으로 나오는 천두만은 전라도의 설움을 그렇게 토해냈다. 그의 한탄이 개발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한 소설 속 '픽션'일까. 아니다. 현재 진행형 '논 픽션'이다. 호남 대표 기업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최근 경영위기에 직면하자 관련 기사 댓글엔 전라도 비하 내용이 많았다. 한진해운이나 대우조선해양 부실로 국내경제 위기감이 고조됐을 때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댓글을 본 적이 있는가. 얼마 전 여수국가산업단지 입주 대기업들이 미세먼지 원인 물질을 불법 배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해당 기사엔 "또 전라도…"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전라도에 연고도 없는 대기업에 뒤통수를 맞은 전라도 사람들이 하릴없이 난도질을 당한 꼴이다.

오랫동안 지속한 이유없는 차별 때문에 전라도 사람들은 '무담시' 움츠러든다. 흉악범이나 희대의 사기꾼이 검거됐다는 뉴스가 나오면 전라도 사람들은 출신지에 눈길이 간다. 만약 출신지가 전라도라면 이렇게 내뱉는다. "왜 하필 전라도여!" 이 움츠러듦의 비애, 천두만의 넋두리처럼 "전라도 사람 아니면 몰르는 설움이제…."

따지고 보면 전라도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지천이 옥토(沃土)였던 호남은 풍요로웠다. 억울한 건 그게 독(毒)이 됐다는 점이다.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를 쓴 한겨레신문 정남구 기자는 전라도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전라도의 풍요를 탐내 빼앗아간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허구에 기반한 편견을 걷어내면 전라도는 '사람의 도리'를 다한 고장이란 점이 드러난다. 탐관오리에 맞서 봉기했고 일제강점기 땐 학생들이 독립운동의 맨 앞줄에 섰다. 제주 4·3사건 때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었기에 여순사건이란 아픔을 겪었다. 지금에 와선 '정의로운 거부'였다고 평가받지만, 한동안 여순반란사건으로 매도됐고 전라도엔 '빨갱이'란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5·18도 마찬가지다. 불의한 권력에 맞섰는데 돌아온 건 차별이었다. 한술 더 떠 빨갱이 딱지가 덧씌워졌다. 5·18 만행을 감추려는 신군부의 공작이 아닌가. 그 후예들은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리고 여전히 5·18 폄훼와 전라도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분노하고 있을 순 없다. '전라도의 비애'를 끊어 내야 한다. 방법은 크게 3가지. 먼저 합리적 이유가 없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된 이 법은 성 소수자 인권을 둘러싼 논란 때문에 표류하고 있지만, 전라도 사람 입장에선 어떤 형태로든 제정돼야 한다고 본다. 둘째 지역감정의 엇갈린 두 축이었던 호남과 영남의 활발한 교류이다. 광주에 5·18있다면 대구에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이 있다. 두 지역 모두 불의에 저항한 역사가 있다. 이를 매개로 한 두 도시의 연대와 협력이 착근하면 지역감정과 지역 차별을 허물어뜨릴 수 있다. 올해부터 대구엔 5.18 버스가, 광주엔 2.28 버스가 달린다. 한 걸음 나아가 두 지역의 물리적 거리를 좁혀 더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내륙 철도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

셋째 자강(自强)을 통한 편견의 불식(拂拭)이다. 우리 스스로 실력을 키워 전라도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광주형 일자리를 발판으로 삼았으면 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 상생형 일자리 창출 모델이다. 성공하면 취업난에 시름하는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국내 제조업의 고비용 저효율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자연히 전라도의 위상도 높아진다. 그러나 난관이 많다.

광주형 일자리의 이론적 초석을 다진 박명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달걀론'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그는 자동차산업 유치가 달걀의 중심인 '노른자', 일자리 수준 개선이 노른자를 감싸고 있는 '흰자', 그리고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노른자와 흰자를 보호하는 '껍질'이 바로 '사회적 대화와 연대'라고 했다. 즉, 양극화 해소라는 목표를 공유하는 '사회적 합의와 연대'라는 껍질이 튼튼해야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걸음씩 양보해 보다 나은 세상을 열어보겠다고 시작한 광주형일자리의 원형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역 사회가 뜻을 모아야 하는 이유이다.

김기봉 디지털뉴스국장·논설위원

김기봉 기자 gbkim@jnilbo.com gibong.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