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화에서 5월로 이어진 광주화맥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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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남종화에서 5월로 이어진 광주화맥 총정리
■녹두서점 김상윤씨 , 민중미술작품 수집 30년 정리||이르면 이달 말께 은암미술관서 소장전||한희원, 송필용, 주홍 등 작품 25점 전시
  • 입력 : 2020. 03.08(일) 17:38
  • 박상지 기자

김상윤 고문이 친구로부터 구입한 200호 대작 한희원 작가의 작품 '밤'

민중의 삶과 현실, 시대의 외침을 화폭에 담은 민중미술은 시장 중심의 미술계에서 홀대를 받아왔다. 전통적 화법과 의식 속에 머물러 있는 대부분의 미술인들은 민중미술의 회화성에 비난을 퍼붓곤했다. 한때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민중미술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지만, 특정 시대에 머물러 있을 뿐 역사의 고비고비를 화폭으로 기록한 민중미술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내에는 6·25 동족상잔을 담은 작품은 몇점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4·19혁명을 그린 작품도 손장섭 화백의 작품이 유일하다. 문학 동네가 민족상잔이나 현실 문제에 격렬히 반응한데 비해 미술계는 '시대적 색맹'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현실을 외면한 결과이다.

이르면 이달 말께 부터 광주 동구 은암미술관에서 지역의 아픔을 화폭에 담은 민중미술을 총망라한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무등의 예맥'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민중미술 작품 25점을 통해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굳어져 온 지역미술의 정체성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지난 30여년간 지역 민중미술 작품을 꾸준히 수집 해 온 김상윤(73) 윤상원기념사업회 고문이 처음으로 하는 소장전이기도 하다.

1980년 5·18당시 녹두서점을 운영하며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김 고문은 1987년 전남사회문제연구소를 경영하면서 민중미술 작품을 접하게 됐다. 홍성담 작가의 5월판화집 '새벽'을 시작으로 한희원, 송필용, 신경호, 박문종, 하성흡, 주홍 작가 등 지역작가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사들였다.

김상윤 고문은 "민주화운동 현장에 있다가 사업을 하다보니 마음이 너무 허전했다"면서 "5월이 담긴 작품들을 수집하면서 시대에 대한 갈증과 허기를 메웠던 것 같다"고 작품수집 동기를 밝혔다.

흔히 콜렉터라고 하면 자산가를 떠올리지만, 김 고문의 상황은 달랐다.

당시 1년 매출액이 기껏해야 50억원도 채 안되는 조그만 회사이다보니 매달 가져가는 월급은 빠듯하기만 했다. 경영자라도 회사 돈을 사사로이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5월에 대한 갈증과 허기를 채우기 위해선 모든 취미생활을 극도로 제한해야만 했다. 골프나 당구를 쳐 본 적도 없었고, 바둑두기 조차 사치라 여기며 작품 구입비를 마련했다.

극도의 절제된 삶을 통해 사들였던 과정 또한 특별하다. 화랑에서 구입하기도 했지만, 전시장에 불쑥 찾아가 그 자리에서 작품 값을 치르며 작가들의 기를 한껏 살려주는가 하면 어디라도 눈에띄는 민중미술작품이 있으면, 가지고 있는 비싼 소장품과 바꿔오기도 했다. 한희원 '밤', 송필용 '남녘의 땅' 이준석 '화엄광주' 박문종 '면앙정' 서미라 '지실 백일홍' 신경호 '당신의 창' 등 작게는 50호 크게는 200호가 넘는 지역 작가들의 대표작을 대작으로 소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민중미술 작품은 흔히 전투적이고 처참한 투쟁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을 떠올리지만, 김 고문이 소장한 작품들은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드는것이 대부분이다. 시대를 기록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 작품이 예술품으로 살아남으려면 예술성을 획득해야 함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김 고문은 "누군가는 아름다운 장소와 자연을 담고 있는 작품이 어떻게 민중미술작품이냐고 묻곤한다"면서 "화폭에 담긴 나무와 장소는 그간 지역의 역사를 목격해온 산 증인이다. 사림과 의병의 역사, 광주의 아픔을 담고있다. 작품 속 배롱나무는 그냥 배롱나무가 아니고, 거기에 서 있는 소나무 또한 그냥 소나무가 아닌거다"라고 설명했다.

떨어지는 꽃잎에, 그저 우뚝 서있는 소나무에 잔잔한 울림이 있는 이유다.

김 고문의 민중미술작품 수집의 30년을 총망라한 전시는 당초 오는 25일부터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휴관이 길어지고 있어 이르면 이달 말에서 4월에 열리게 될 전망이다.

채종기 은암미술관장은 "올해 518 40주년이라 의미있는 전시를 열어보고 싶었다"면서 "김상윤 고문의 소장품은 남종화의 맥을 이어오다 518을 계기로 민중미술장르가 태동한 광주 미술계의 정체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전시"라고 밝혔다.

허달용 작 '거름내기-살아나는 오월'

민중미술작품 수집 30년만에 처음으로 소장전 여는 김상윤 윤상원열사기념관 고문.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