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이차장(二次葬) 살의 장례와 뼈의 장례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이차장(二次葬) 살의 장례와 뼈의 장례
  • 입력 : 2020. 11.26(목) 12:28
  • 편집에디터

사진01, 초분, 솔가지로 관을 덮는 장면, 최덕원 촬영

수년 전 본 지면을 통해 초분을 다룬 바 있다. 최길성이 보고한 전북 위도의 증골장(蒸骨葬) 사례를 다시 주목한다. 초분에서 뼈를 추려가지고 집으로 와서 시루에 넣고 찌면서 당골이 굿을 한다. 발목 묶인 제물(祭物) 수탉이 울면 영혼이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굿을 중지한다. 비로소 시루에서 뼈를 꺼내어 깨끗이 한다. 최덕원은 시커먼 뼈라도 시루에 넣고 찌면 새하얗게 고운 모습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임산부일 때는 반드시 초분을 한다고 증언한다. 빈(殯)이라는 초분의 장례법 모두가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던 독장 즉, 항아리 등에 넣어 돌로 묻어두는 아이들의 주검처리 형태와 연관된다. 왜 뼈를 찌거나 닦아내어 다시 매장하는 것인가? 초분으로 대표되는 이차장례에는 살보다 뼈를 중시하는 어떤 관념 즉 영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주검 자체를 자궁의 메타포인 동굴에 넣는 행위로부터 비롯된다. 육신과 영혼을 분리하고 썩어 없어지는 살보다는 오랫동안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 뼈에 거듭남과 재생 등의 관념을 부여했다는 뜻이다. 초분장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러한 스토리텔링 또한 죽음의 극복이나 치유의 한 측면을 다룬다.

뼈와 살의 분리, 인간의 몸에서 영혼을 증류해내는 방식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대로부터 장례식을 인간의 몸으로부터 영혼을 증류해내는 기술로 독해하기 시작하였다. 이창익은 그의 연구 「죽음의 연습으로서의 의례」에서, 장례식은 부패하는 신체로부터 영혼을 구제하기 위한 일련의 세밀한 절차들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단일한 장례식이 몸의 장례식과 영혼의 장례식 혹은 살의 장례식과 뼈의 장례식으로 이중화되는 사례들이 예시된다. 내가 『산자와 죽은 자를 위한 축제』(민속원)에서, 장례를 두 개의 단위 즉 주검의 처리와 영혼의 처리로 나누어 분석했던 것도 이런 일환이다. 예컨대 살의 장례식을 일차장례식으로, 뼈의 장례식을 이차 장례식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일차장에서는 영혼이 깃든 뼈를 살로부터 구분해내는 작업을 하고 이차장에서는 영혼의 귀천 혹은 재생의 염원 등을 담은 서사극 축제, 특히 씻김굿의 영돈마리를 통해 증류주(음복주)를 만든다는 것이 내 책의 요지다. 망자가 더 오래도록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혹은 어떤 형태로든 재생을 염원하는 표현이 바로 망자의 주검을 다루는 방법과 절차에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프레이저가 보고한 『황금가지』의 다양한 사례들은 우리들에게 방대한 영감을 선사해준다. 캄보디아의 외딴 밀림 속 신비스러운 '불의 왕'과 '물의 왕이 있다.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이 나라의 일반적인 관례와는 달리 이 신비스러운 두 왕은 화장(火葬)을 한다. 손톱과 이빨, 뼈 같은 것은 부적으로 경건하게 보관한다. 시체를 장작더미에 태우는 동안 죽은 주술사의 인척들은 왕이라는 싫은 직책에 오르게 될까봐 숲으로 달아나 숨는다. 사람들이 가서 그들을 찾는데, 은신처를 제일 먼저 들키는 사람이 다음 차례로 왕이 된다. 1891년 2월 한 프랑스인 장교가 이 외경스러운 왕을 만나지 않았다면 마치 우리가 단군신화를 설화로 대하듯 서구는 물론 인류사에 하나의 우화로 남았을 법한 이야기다. 우리에게도 유사한 장속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세 개의 복주머니를 준비한다. 한 주머니에는 손톱을 다른 주머니에는 발톱을, 또 다른 주머니에는 머리칼을 담는다. 육신은 죽었어도 손톱발톱 그리고 머리칼은 일정 시간 자라기 때문이다. 무슨 뜻일까? 손톱발톱이 피부의 하나이긴 하지만, 죽어서도 죽지 아니하는 뼈에 대한 관념의 대신이라고 나는 풀이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승려들이 다비식을 마치고 획득하는 사리(부처나 성자의 유골)도 뼈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 아니겠는가.

뼈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지극한 관념

뼈에 대한 이 지극한 관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썩는 살과 오랫동안 보존되는 뼈에 대한 분리 관념 말이다. 이 생각들이 좀 더 확장되면서 육신과 영혼의 분리 혹은 영혼의 구제나 재생, 부활을 따지는 종교의 발전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일차장으로서의 육신을 탈각하고 이차장으로서의 영혼을 좀 더 오래 혹은 영원히 존재하게 하는 장법으로 발전된 셈이다. 이차장으로서의 초분장이 살과 뼈의 장례를 분리하는 대표적인 장례법이다. 내가 현지 조사한 자료를 포함해 여러 선학들이 보고한 자료들에도 초분장에 대한 현지인들의 구술은 대동소이하다. 자연적으로 육체의 살을 없애고 뼈를 좋은 곳(선산 등)으로 모시려고 초분을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뼈에 영혼이 담겨 있다는 영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주검 자체를 동굴에 넣거나 혹은 고인돌이라는 인공굴에 넣었다가 점차 육탈 후 뼈만 추려서 매장하는 장례법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난 칼럼에서 고인돌과 옹관을 인조굴로 해석하고, 독(瓮)이라는 용어 자체가 도가지, 도가니 등의 용례로 알 수 있듯이 돌(독)과 관련 있음을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고인돌 아래 매장 혹은 풍장(風葬)되었을 주검이 살과 뼈를 분리하는 방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고고학자들의 현답을 좀 더 추적해봐야겠다.

남도인문학팁

진도군 덕병리 장승제에서 소의 턱뼈를 바치는 이유

뼈에 대한 관념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고분에서 발굴되는 동물의 뼈들을 고고학자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레이저의 보고는 중요한 시사점들을 제공해준다. 예컨대 돼지 형태의 곡물정령은 추수 때와 파종기에 각각 등장한다. 코울란트의 노이아우츠에서는 그 해에 처음으로 보리씨를 뿌릴 때, 농장주의 아내가 돼지 등뼈와 꼬리를 삶아서 밭에서 씨 뿌리는 일꾼에게 가져온다. 일꾼들은 꼬리를 잘라서 밭에다 꽃아 놓는다. 곡식 이삭이 그 꼬리만큼 길게 자란다고 믿기 때문이다. 파종기에 미혼 남자를 밭에서 잔인하게 살인하는 사례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 돼지의 형상으로 그는 파종기에 땅에 묻히며, 추수 때 무르익은 곡식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내가 공부한 바로는 미혼 남자보다는 주로 처녀가 이런 시작이나 증식, 생산의 기제로 죽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돼지뼈를 재생과 생산 및 풍요를 기원하는 즉,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영혼력으로 관념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프레이저의 이 이론들을 유감주술(혹은 모방주술)과 접촉주술이라고 한다. 비슷한 것이 비슷한 효과를 내며 그것과 접촉하면 비슷한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의 당산제(거리제로 호명한다)에서는 두 기의 석장승에 해마다 소 턱뼈를 바친다. 인근의 군내면 세등마을 당산제에서도 소턱뼈를 바친다. 벌교읍 대포리 당제에서는 도깨비고사라고 해서 끄렁치에 소뼈(한 마리라고 여기는 분량)를 담아 개펄에 헌식한다. 분화된 생각들이긴 하지만 모두 뼈에 대한 지극한 관념들을 뿌리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문이다. 화장(火葬)이 보편화된 현재, 이것이 영혼관에 대한 치열한 논의를 거친 풍속인지 인류사의 한 지점에 내 질문을 던져둔다. 죽음관과 영혼관은 곧 삶의 태도에서 비롯되며 또한 삶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늦가을 문턱 가로수 아래 나는 그저 무심한 아파트숲을 응시할 뿐이다. 죽음의 극복이나 치유의 측면들을 고려하지 않는 저급한 관념들이 진중한 논의도 없이 우리들의 도시를 배회하는 것은 아닌지.

사진02, 초분, 솔가지 위에 마람으로 둘러 덮는 장면, 최덕원 촬영

사진03, 초분, 용마람을 덮은 후 줄로 단단히 고정하여 초분을 완성하는 장면, 최덕원 촬영

사진04. 진도 조도 가사도 초분(2012), 이윤선 촬영

신안군 도초도 도락기 초분(2001)-한국의 초분(국립민속박물관, 2003) 캡쳐

신안군 도초도 도락리 초분(2001)-한국의 초분(국립민속박물관, 2003) 캡쳐

영광군 안마도 앉은초분(2001)-한국의 초분(국립민속박물관, 2003) 캡쳐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