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57-2> 평화와 인권의 공원…역사적 '기억의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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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57-2> 평화와 인권의 공원…역사적 '기억의 저장소'
■‘제주4·3평화공원’ 가보니||진실 밝히려는 '기억투쟁' 결정체 ||희생자 1만4000여 위패 모셔져 ||진실 대면할 수 있는 ‘평화기념관’||첫발 뗀 여순사건 나아갈 길 제시
  • 입력 : 2022. 04.03(일) 17:52
  • 홍성장 기자

4·3평화공원의 대문을 상징하는 조형물. 철망 구조물 속에 4·3당시 희생자를 상징하는 3만개의 제주석이 채워져 있다.

'제주 4·3평화공원'은 4·3을 기억하고 추념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2001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3단계로 조성된 4·3평화공원은 화해와 상상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인권의 공원이다. 한 때 금기시됐던 4·3이지만 진실을 밝히려는 제주사람들의 기억투쟁은 계속됐고, 4·3평화공원은 그 투쟁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쌍둥이 사건'으로 불리는 '여수·순천 10·19사건'과는 사뭇 다르다. '여순사건'은 이제야 진실규명을 위한 첫 걸음을 뗐고, 갈길이 멀다. 제주4·3에서 여순의 길을 찾으려는 이유이고, 4·3 74주년을 맞아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까닭이다.

지난 1일 찾은 제주4·3평화공원. 이틀 뒤 있을 '74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준비가 한창이다. 우뚝 솟은 두개의 철망 구조물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4·3평화공원의 대문을 상징하는 문주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철망 안에 검은색의 돌이 채워져 있다. 3만여개의 제주석인데, 4·3당시 희생자를 상징하는 돌이다. 4·3 당시 추정 희생자가 3만 여명이다.

문주를 지나면 저 멀리 우뚝 솟은 두개의 탑이 보인다. 위령탑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화된 대립'을 하나의 위령탑에 화해와 상생의 어울림으로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각 마을별 정화수로 조성된 연못, 제주도의 오름과 분화구를 표현한 주변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화된 대립을 하나의 위령탑에 화해와 상생의 어울림으로 표현했다.

위령탑을 빙둘러 1만 4231명의 4·3사건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가 세워져 있다. '귀천'이라는 조형물도 인상적이다. 어른 남녀, 청소년 남녀,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어린이를 상징하는 5벌의 수의가 그려진 조형물이다. 4·3 당시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희생자를 달래는 상징조형물이다.

4·3희생자의 성명, 성별, 당시연령, 사망일시, 장소가 기록된 각명비다.

제주4·3 74돌을 맞아 4·3평화공원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드넓은 위령광장을 지나면 위령제단과 위패봉안실이 있다. 위패봉안실은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추념 공간. 봉안된 위패는 1만4471명이다.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에서 심의 결정된 1만4577명 중 생존자 106명을 제외한 이들이다.

4·3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인을 위로하기 위한 공간도 있다. 위패봉안실 옆에 마련된 '행방불명인표석'이다. 3994기의 비석이 행방불명된 지역 등으로 구분돼 세워져 있다.

호남지역 행방불명인표석. 4·3다시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인을 위로하기 위한 비석이다.

제주4·3평화공원의 상징조형물 '비설'도 빼놓을 수 없다. 1949년 1월 초토화 작전이 벌어질 때 봉개동 변병생(당시 25살) 여인과 그의 어린 딸(2살)이 거친오름 동쪽 눈밭에서 희생됐다. 이를 위로하기 위해 모녀를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위령탑을 돌아 내려 오는 길 옆 동백나무에 핀 붉은 동백이 아련하다. 붉은 동백은 제주 4·3의 상징이기도 하다. 4·3 당시 희생된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없이 스러져 간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4·3의 역사를 담는 그릇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기념관이 보인다. 기념관에는 4·3의 역사적 진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한 상설전시관 등이 마련돼 있다.

평화공원 내 '제주4·3평화기념관'은 4·3의 역사적 진실을 대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커다란 그릇 모양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오랫동안 금기시돼 온 4·3을 담은 진실의 그릇이다.

4·3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상설전시관은 테마별로 6개로 구성됐다.

1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는 백비. 하얀 비석이 아닌 비어있는 비석이라는 의미의 백비다. 4·3의 바른 의미를 기다리고 있다.

첫 만남은 '역사의 동굴'이다. 제주섬에 지천으로 널린 용암동굴을 옮겨놨다. 동굴은 4·3 당시 수많은 이들이 살기 위해 숨어들었던 공간이다. 이 공간을 통해 74년 전 역사속으로 들어간다. 이어서 만날 수 있는 것이 '백비'다. 아무런 글자도 새겨지지 않은 비석이 누워있다. 백비는 흰색의 비석이 아니라 비어 있는 비석. 4·3의 바른 이름을 기다리고 있는 백비다.

두 번째 공간은 '흔들리는 섬'이다. 도화선이 된 1947년 3·1 발포 사건 등이 1948년 4·3봉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바람타는 섬'은 4·3 무장봉기의 발생 과정과 배경, 향후 초토화 작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5·10단선·단정 반대 사건 등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불타는 섬'은 초토화 작전 이후 한국전쟁까지 제주에서 자행된 학살의 면모를 다룬 전시실이다.

강요배 작 '제주도민의 5·10'. 4·3평화기념관 상설전시관에 설치된 작품이다.

'흐르는 섬'은 민간에서 시작된 진상규명운동, 그리고 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 보고서 등 4·3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이 정리돼 있다. '평화의 섬'에는 좌우 벽면과 천장에 4·3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4·3의 기억을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으로 다시 생각하자는 의미다.

좌우 벽면과 천장에 4·3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어 4·3의 기억을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다.

4·3평화기념관에는 '다랑쉬굴'도 재현돼 있다. 1948년 11명의 민간인이 토벌대에 의해 질식사한 동굴이다. 긴박했던 피난생활과 학살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는 "4·3평화기념관은 역사적 '기억의 저장소'로 '기억의 자살'을 막는 방주와 같은 곳"이라며 "4·3의 온전한 기억을 전승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성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주4·3 74돌을 맞아 4·3평화공원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4·3 74돌을 맞아 4·3평화공원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홍성장 기자 seongjang.h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