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한명철>"저기가 무등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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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한명철>"저기가 무등산인가요?"
한명철 한전산업개발 사외이사
  • 입력 : 2022. 06.06(월) 14:15
  • 편집에디터
한명철 사외이사
경남 하동 출신인 내게 무등산은 친구와 같다. 어릴때부터 산을 좋아했기에 전국 어느 곳의 산에 오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무등산도 그렇다. 무등(無等)의 한자 뜻처럼 등급, 계급, 차별이 없는 것을 보여주듯 무등산은 찾을 때마다 편안함을 준다. 인구 150만명 대도시 한복판에 턱 자리잡고 있는 무등산은 외지인에게 부러움의 대상이고, 광주•전남인들의 호연지기와 의로움을 길러준 정신적 탯자리였구나 생각에 숙연함이 들기도 한다.

이번 지방선거 운동 기간에도 무등산을 찾았다. 산에 오를때마다 전혀 낯설지가 않는 것은 무등산에서 갖는 행복감의 하나이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뚝뚝 떨어지고, 안경의 시야를 가려 쉴틈없이 땀방울을 훔쳐야 하나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린 기분좋은 시간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뗄 때 불현 듯 설훈 국회의원 얘기가 떠올랐다. 1987년 대통령선거 당시 평민당 마산 원외위원장이었던 그가 경남대 학생으로서 평민당원인 나에게 들려줬던 무등산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마산 출신으로 1980년 고려대 복적생이었던 설훈 의원이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구속돼 남한산성 군 형무소에서 순천교도소로 이감중 호송차안의 헌병에게 "저기가 무등산인가요"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호송차 안의 유리창 너머로 비친 무등산이 그렇게도 슬프게 다가왔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두번째 옥고를 겪고 고려대에 복적하자 마자 신군부의 조작 사건으로 세번째 영어의 몸이 된 상황에서 광주 학살을 지켜봤을 무등산을 본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온 것이다. 무등산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도 하면서도, 힘들 때마다 그를 품어준 어머니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순천교도소에서 출소한 그는 운동권 동지와 결혼했고 신혼여행을 일부러 광주로 내려와 무등산과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찾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을 다짐했다. 영남 출신인 설훈의원은 광주•전남을 정말 사랑한 경상도 사나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젊은 시절부터 비서로 모셨고, DJ 대통령 당선을 위해 13, 14대 국회의원 공천을 받고도 이철 전의원에게 양보했던 통큰 마음은 곧 그의 호남을 위한 진심이었다. 특히 5·18 유공자인 그는 궁핍한 생활에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고통받았던 호남지역 인재 육성의 소망을 담아 담양 한빛고등학교에 광주민주화운동 보상금 1억8000만원을 모두 기부했다. 그의 호남 사랑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5•18역사왜곡 처벌법을 비롯해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법률 제정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가 보여준 정치도 의롭고 당당했다. 뜨겁게 민주화운동을 했던 시절, 민주와 대의의 길을 걷겠노라고 약속한 무등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굴절됨없이 한길을 걷지 않았냐는 생각에 나도 무등산을 올 때마다 힘주어 밟곤한다.

올해 42주년 광주민주화운동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했고 역대 보수정당에서 보지 못했던 모든 소속 국회의원들이 광주에 내려와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했다. 대통령도 보수정당 국회의원과 장관들도 광주시민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청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기대했던 윤 대통령의 광주민주화운동 헌법전문 수록 약속은 발표되지 않아 아쉬웠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횃불임에도 극우 보수세력들에 의해 폄훼되고 왜곡돼 국론 분열의 수단으로 악용돼 너무 안타깝다. 하루빨리 5월정신이 헌법 전문에 수록돼 국민 모두가 이를 존중하고 함께 80년 오월 현장에서 국민 모두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고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가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 광주의 오월이 전국을 넘어 세계속에서 의로운 시민정신의 표상으로서 기념되고 존중받을때, 광주의 무등산은 더욱 넓은 품으로 전세계인을 받아들 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뛴다. 지난 달 산행에서는 녹색으로 물들어간 무등산의 나무에서 내뿜는 산소가 유달리 달게만 느껴졌다. 경상도 사나이 설훈의원이 그렇게 무등산을 좋아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같다.

※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