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37> "글씨는 미술 작품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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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37> "글씨는 미술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문자, 미술이 되다
  • 입력 : 2022. 12.04(일) 17:43
  • 편집에디터

"글씨는 미술 작품이 될 수 있을까?"

흔히 극한 감정이나 아름다움의 감탄을 표현할 때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을 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할 때, 추상적 개념을 가리키는 기호로서의 글과 문자가 이미지를 증폭 시키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자는 사회적 약속이자 의사전달을 위한 기호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지시적 특성 외에 조형적이고 이미지 요소 자체로 기능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조선시대 '문자도'와 같이 기호로서 약속 된 형태나 소리로 발현되기도 하였다. 문자는 청각적 경험을 유도하고, 미술은 시각적 경험을 유도한다는 관념으로 추상적 이미지와 관념적 문자는 전통적인 전제를 넘어 상호 작용적인 특성을 구현하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기원전(B.C) 15,000여년전에 그려졌으며 인류 최초의 회화적 기록으로 벽화은 그림이 남겨진 문자 형태이다. 이 결과는 인류의 문명을 열어온 모든 문자는 회화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류의 모든 문자가 가지는 조형성은 가장 황금비적 비례의 미학으로 응축된 인류의 대표적인 문화적 지혜라 할 수 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_기원전(b.c)15000~10000년_스페인_ⓒ구글

이응노_구성_1971년_천에 채색_230×145cm_ⓒUngno Lee_ADAGP, Paris–SACK_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Seoul)

고암(顧庵) 이응노(李應魯, 1904~1989)의 1971년 작품 〈구성〉은 문자추상 경향의 대표작 중 하나로 천위에 기존의 작업과는 다른 기법을 보인다. 특히 위 작품은 융 같은 표면 위에 물감으로 그려 붓 터치가 남아 있는 그대로가 보인다. 작품은 거친 천에 문자 형상을 다른 색 천으로 붙인 후 주변에 붉은 실로 꿰맨 듯한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문자 추상을 하면서 조형적이고 평면적 작품에서도 꼴라쥬와 천 등 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해 거친 마티에르 위에 유연한 획이 어우러지는 이응노작가만의 서정적 경향을 나타냈다. 문자를 입체적 혹은 기하학적으로 정리해 조각·세라믹·회화·타피스트리(tapestry)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기도 한다.

손동현_문자도-코카콜라_종이에 채색_130×320cm(2pcs)_2006년

현대미술의 팝 아티스트 손동현(서울, 1980~)의 문자 작업은 전통적 문자도의 재현이 아니다. 전통 민화에서 '문자도'는 문자가 교육의 기능으로 활용되어 유교적 이념의 실천을 독려하는데 주목 되었다. 하지만 위 작품에서의 문자도는 코카콜라, 아디다스, 스타벅스 등 상업 로고를 팝(pop)적인 현대 미술작업으로 변형하였다. 요즘 현대인들이 자주 접하는 상업적인 브랜드와 미술적 이미지를 결합하여 문자의 의미를 디자인 영역까지 확장하여 활용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김창렬_회귀 SH07010_린넨에 아크릴, 유채_162×130cm_2007년_ⓒ네오룩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김창렬(金昌烈, 1929년~2021) 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붓글씨를 접했고, 외삼촌으로부터 데생을 배워 작가로 성장하였다. 작가는 물방울을 밑칠 하지 않고, 마포(麻布)로 된 생지 화면에 거친 표면을 그대로 사용, 실제보다 더 실제같이 새겨 넣는다. 초기 물방울은 "프랑스 신문 위에 그려 넣었다"는 작가는 "활자 위에 물방울을 그려 넣게 되면 더 투명한 물방울 느낌이 살아나는 것 같아 신문을 바탕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신문활자 대신 바탕에 천자문을 표현하고 "글자, 활자들이 물방울과 함께 표현되면 조형적으로 물방울의 투명성이 더 강조되는 느낌"이라고 자신의 작품 설명을 덧붙였다. 이는 허와 실, 음과 양, 무한과 유한이라는 동양적 발상이 바탕이 되어 글자들과 더불어 물방울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_ 전시장 전경_ⓒ 아모레퍼시픽_2019년

미국 페미니즘 개념미술가,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미국, 1945~)의 작업은 기존 서구의 남성 중심의 문화가 한정되어 예술에서 여성은 작품의 모델이나 뮤즈로서의 역할 만을 할 뿐 주체적으로 존재하지 못했었다. 이 안의 실재 이미지를 표현하기보다 사회와 문화적 시각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미술에서의 재현(representation)을 불신하고 이 속에 담긴 권력 행위를 텍스트로 드러내는 것을 작업의 기조로 삼는다.

" 지난 수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력을 가진 거울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 Adeline Virginia Woolf, 1882~1941) 글을 전시하고 직설적인 유명 시인 및 소설가들의 압도하는 문장들을 내세워, 이미지를 뛰어넘는 강한 메시지를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리스 서정시인, 시모니데스(Simonides of Ceos, c.556~468)의

"회화(繪畵)는 말 없는 시요, 시(詩)는 말하는 그림" 이라는 말처럼 고전 및 동시대 미술 작품 속에서도 문자는 꾸준히 이미지와 미술로 구현되고 있다. 이처럼 문자와 이미지의 이중형상 연출로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며 글은 쓰는 것이고, 그림(이미지)은 그리는 것이라는 통념적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적 용도와 역할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상기시킨다.

이선 〈광주 남구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