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박병훈·기고>관찰하기 참 좋은 계절,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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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박병훈·기고>관찰하기 참 좋은 계절, 봄
박병훈 톡톡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대표
  • 입력 : 2024. 02.28(수) 14:01
박병훈 대표
시도 때도 없이 하루에 수백 번씩 울리던 카톡과 문자가 잠잠해졌다. 정치 과잉의 시대에 한 동안 지지를 부탁하는 문자나 카톡을 확인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지지를 부탁하는 문자와 카톡이 잠잠해졌다는 것은 총선에 나설 후보들이 정해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일 터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선택받아 후보자로 결정되고, 어떤 사람은 버림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온갖 잡음과 소음이 들려온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눈에는 후보들 중에서 똑똑하고 번듯한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관찰하는 능력이 높은 사람에게 시선이 끌린다. 관찰을 하면 많은 것들이 보인다.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도 더 깊고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주변의 모든 사람이 가난했다. 반 친구들 가운데 극소수를 빼고는 쌀밥으로 된 도시락을 싸 온 친구가 없었다. 아예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어쩌다 달걀 프라이를 싸온 친구들은 도시락 바닥에 숨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친구들도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앞뒤로 둘러 앉으면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주변에 관찰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지금이 사순절 기간이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는 절기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의 친구였다. 예수는 관찰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관찰은 인류애와 공감으로 이어졌다. 간음하여 명예 살인의 희생자가 될 뻔한 여인을 구할 때, 죄 없는 사람이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관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수는 끝내 십자가를 진다.

마종하 시인은 딸을 위한 시에서 착한 사람이나 공부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겨울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이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관찰하라고 했다.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친구가 있을 때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먹으려면 관찰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런 관찰은 좀 더 나은 창의성과 인성을 만들어 낼 것이다. 관찰은 사람들 속에 숨겨진 진실을 보게 한다. 감춰진 비밀을 볼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효과적인 상담을 하려면 내담자의 말과 표정, 행동 하나하나를 잘 살펴야 한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관찰을 하면 그 삶의 다른 내면의 세계가 보인다.

내 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미술 경시대회에 나갔다. 큰 아이가 그린 그림은 독특했다. 나무 기둥 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나무 뿌리와 개미들과 다른 곤충들이 서로 어울려 놀고 있는 모습이었다. 창의성을 인정받아 상을 받았다. 무엇인가를 궁리하여 표현하고 현실화시키는 사람들은 관찰을 잘 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보고 뒤집어 보기도 하고 비틀어 보기도 하는 일을 연습해야 관찰의 힘이 생긴다. 물구나무를 서면 세상이 거꾸로 보인다. 문득 거꾸로 세우는 병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참기름 병이나 아끼던 양념이 떨어져 가면 거꾸로 세워 놓는다. 남은 한 방울도 소중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거꾸로 세우는 병에는 절박함과 사랑이 담겨 있다. 끝까지 남은 한 방울의 참기름으로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는 마음 말이다. 거꾸로 세운 병에는 관찰을 통해 배고픈 가족들의 기운을 세우려는 엄마의 애잔함이 담겨 있다.

우리 사회의 난제인 저출산 문제, 교육의 불평등, 양극화, 극심한 편 가르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관찰이 필요하다. 책상 앞에서 좋은 머리를 굴려가며 애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관찰은 세렌디피티를 만든다. 세렌디피티는 호기심과 열린 자세, 준비된 마음이 결합되어 생긴 발견이다. 봄이 발 밑에 왔다. 땅 속에서는 이미 경이로운 생명체들이 자기 색깔을 선보이려고 기지개를 켜고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벌써 봄과 예쁜 꽃들의 대화가 시작되고 있다. 자신만이 적격자라고, 자신만이 나라를 바꾸고 지역을 살릴 유일한 인물이라는 어찌 보면 오만한 목소리도 여기저기 들려온다. 그렇다. 이미 우리 옆에 다가온 봄부터 40여 일밖에 남지 않은 22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지금이야말로 관찰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