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아이티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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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아이티의 비극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4. 03.14(목) 17:01
이용환 논설실장
지난 2006년 개봉된 아스거 레트 감독의 영화 ‘시테 솔레일의 유령’은 버림받은 나라 아이티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독립을 이룬 아이티. 절망과 폭력이 난무하는 그곳은 국민의 80%가 2달러 미만으로 연명하는 가난한 나라다. 아이티에서도 슬럼가로 유명한 시테 솔레일은 배가 고파 진흙쿠키를 만들어 먹는 아이들로 넘쳐난다. 단지 살기 위해, 서너 살 여자아이들이 남의 집에 들어가 고된 일을 해야 하는 ‘무급 식모’도 일상이다.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아이티는 눈물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1804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뒤, 오랜 군부통치를 겪은 아이티의 가난은 권력이 만든 아픔이었다. 당장 아이티 경제의 핵심이었던 토종돼지와 쌀의 몰락은 권력자의 무지가 가져온 비극이었다. 아이티의 토종돼지는 한국인에게 소와 같은 정서를 지닌 존재였다. 하지만 우량돼지를 보급하겠다는 권력자의 독선은 토종돼지를 순식간에 절멸시켰다. 미국에서 가져온 우량돼지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고 한다. 시장개방에 따른 쌀 수입도 농촌을 무너뜨리고 도시 빈민을 늘리는 요인이었다. (정화영 저 ‘아이티 나의 민들레가 되어줘’)

아이티는 ‘신이 외면한 나라’이기도 하다. 1492년 콜럼버스가 처음 상륙한 뒤 스페인과 프랑스 해적들에게 수없이 수탈을 당했고, 독립된 이후에는 강대국의 사주를 받은 독재자들의 철권통치로 민주주의를 빼앗겼다. 자연재해도 잇따랐다. 지난 2010년 1월 13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은 20여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비극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아이티의 전부일까. “회색빛 우울한 도시에서 듣고 보는 그들의 음악과 미술은 가난에서 태어난 한편의 시다.” 영화 ‘시테 솔레일’을 만든 아스거 감독의 평가다.

최근 갱단의 폭력으로 아이티가 최악의 사태에 내몰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거리에는 시신이 방치돼 있고, 약탈과 방화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작가 정화영은 그의 책에서 ‘쓰레기로 가득찬 아이티지만 거리에는 청년들의 희망이 묻어난다’고 했다. 누더기 천에 그린 고갱을 연상시키는 그림과 붉고 푸른 원색의 향연에 대한 찬사다. 악보 없이 노래가 되고 화음을 만드는 사람들도 그에게는 ‘진정한 아티스트’였다. 잘못된 정치에 신음하는 아이티. ‘가난에서 태어난 시인과 화가’들의 비극이 안타깝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