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마음의 병을 가진 한 소녀를 만난 기억이 있다. 시작은 작은 귓병이었다. 귓속에서 쉬지않고 종알종알 떠들어대는 누군가의 목소리는 점점 다양해지고 커졌다. ‘저 사람은 널 미워하고 있어!’ ‘너가 진짜 원하는게 이거야? 아니잖아. 아니라고 얼른 말해!’ 매 순간 자신을 향해 말을 걸어오는, 파괴적인 언어로 자신을 짓누르는 ‘어떤 존재들’ 때문에 그 소녀는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쫓겨나다시피 그만 둔 학교, 디자이너의 꿈…. 한순간에 모두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됐다. “내가 죽어야 날 괴롭히는 저 목소리...
2023.03.05 13:59전남에서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고독사 사망자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 5년간 매년 고독사가 증가한 곳은 전국에서 대전, 경기 그리고 전남 3곳 뿐이다. 전남은 2017년 인구 10만명당 4.1명에서 2021년 6.8명으로 고독사 사례가 매년 늘었다. 역설적이게도 전남도의 ‘고독사 제로’ 정책은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됐다. 홀로 사는 어르신을 모시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꾸려진 ‘지킴이단’이 돌봄대상을 직접 찾아...
2023.02.21 16:42지난해 김근식, 박병화 등 아동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성범죄자들이 잇따라 출소하자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의정부와 화성 등 주민과 정치권 인사들은 법무부에 ‘성범죄자 거주 반대 건의문’을 내고, 일대에 ‘성범죄자 퇴거 촉구’ 플래카드를 내거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조두순이 출소했던 지난 2020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조씨는 주민들의 항의에도 기존 거주지인 안산에 돌아왔고, 되레 같은 지역에 거주했던 피해자가 짐을 싸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조씨와 피해자의 집은 불과 1㎞ 거리였다. 흉악 성범죄자가 출소...
2023.02.16 13:25“보기에는 좀 그래 보여도 이렇게 싹 다 깎아놓는 게 나무나 사람들한테 좋은 방법이에요. 이것보다 관리를 세밀하게 하면 돈도 더 들고요.” 최근 ‘광주·전남 가로수 관리 실태’를 취재하던 중 만난 한 수목 관리인이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그는 가지 몇 개만 남기고 죄다 가지치기 한 나무를 가리키며 ‘이게 표준이다’고 말했다. 나무의 생장을 고려하지 못한 채 무참히 잘린 이 가로수들이, 정말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그런 나무는 있을 수 없다. 과도한 가지치기는 나무의 에너지 생산능력을 훼손해 수명을 ...
2023.02.12 14:25“잠은 좀 주무셨나요?” 지난 6일 이른 아침, 목포 산정동 실종자 가족 대기소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한 남성에게 말을 걸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종종 들리는 한숨소리로부터 전날 밤을 어떤 심정으로 보냈을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앞서 4일 신안 임자도 대비치도 서쪽 16.6㎞ 해상에서 인천선적 24톤급 통발어선 청보호가 전복됐다. 현재까지 승선원 12명 중 3명이 구조되고 4명이 실종됐으며 5명이 사망했다. 사망한 5명은 침실, 기관실 등 선체 내부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나머지 실종자도...
2023.02.07 16:43‘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이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만큼 국민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국민 참여는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선결 과제기도 하다. 이같은 선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주민 조례법)이 시행 1년을 넘겼다. 하지만 광주·전남의 주민 조례 제정 실적은 단 한건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법안은 주민이 직접 조례 입안을 의회에 청구해 지방의회 기능을 확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
김해나 기자2023.02.06 17:53복지기관을 출입하다보니 주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게 된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사연을기계적으로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럴때마다 빈곤 포르노에 그치는 콘텐츠를 양산하는 거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이도 썼다. 집 화장실이 더러워 용변을 참는 아이들, 38도에 육박한 집에서 선풍기를 틀고 생활하는 할머니, 연탄이 없어 구공탄을 사다 때우는 노인 등. 올 겨울에도 당연히 썼다. 몸이 아픈 홀어머니와 살면서 태권도 선수가 꿈이라는 소년, 꽁꽁 언 골방에 텐트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2023.01.31 16:41일상생활 속에서 자원순환 실천 사례와 아이디어 12가지가 지난해 12월 도출됐다(본보 1월10일자 8면). 광주 남구가 주관한 자원순환 실천사례·아이디어경진대회에서 실천부분에 △최우수상·광주 동구 지한초 △우수상·봉선남양휴튼1차(스티로품 자동 파쇄기)·용산초교(기후환경생태교실 운영) △장려상·효천LH천년나무7단지(자원순환빗물저금통)·양림펭귄마을협동조합(제로웨이스트 날 운영)·선광학교(우유팩 재활용), 아이디어 부분에 △최우수상·윤소희씨(폐 카트리지 자원순환) △우수상·권유나씨(현수막 LED전광판 재활용)·박지애씨(담배꽁초 수거 보...
조진용 기자 jinyoung.cho@jnilbo.com2023.01.29 15:13‘일본의 현재를 보면 한국의 10년 후가 보인다’ 과거 일본에서 일어난 여러 사회현상이 일정 주기가 지난 뒤 한국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두고 한국과 일본의 발전 속도를 빗대기 위해 사용하던 말이다. 부동산시장이나 고령화에 따른 사회 변화 등 한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에서 일본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일도 잦았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 우리와 일본은 너무나도 유사한 인구 구조와 산업 형태로 경제를 지탱했다. 한국 입장에선 일본의 선례를 보고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
김은지 기자 2023.01.25 13:11‘5·18민주화운동’ 용어가 삭제된 2022 개정 교육과정과 관련해 연초부터 지역사회가 들끓었다. 초·중·고 사회과목 교육과정에 항상 등장했던 ‘5·18민주화운동’이 개정 교육과정에서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자, 지역사회는 “민주주의 훼손”이라며 반발했다. 교육부는 ‘교육과정 대강화’차원에서 이뤄진 개정안이라고 해명했다. 교사들의 교과과정 재구성 ‘자율성’을 높이고자 교육과정의 서술항목, 내용을 간소화하는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역사적 사건 서술을 최소화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교...
양가람 기자 2023.01.15 14:40지난해 부산 기장군에 있는 오시리아 관광단지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부산으로 오시라”는 의미를 내포한 오시리아는 그 이름 값대로 전국구 ‘핫플’이 됐다. 현재 롯데월드, 아난티 힐튼, 이케아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기업들이 입주를 완료했다. 관광단지의 퍼즐인 쇼핑, 레저, 체류까지 맞춰져 전국에서 찾는‘필수 코스’로 발돋움했다. 오시리아의 한해 관광객은 1000만명이 훌쩍 넘는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오시리아와 어느 순간 멈춰있는 어등산 관광단지의 현재가 겹친다. ‘닮은꼴’인 두 사업은 지난 2005년 함께 출발했지...
최황지 기자 2023.01.10 17:04순천 도심을 관통하는 경전선 전철화 사업이 기본계획 확정 고시를 앞둔 가운데 국토교통부의 입장에 귀추가 주목된다. 경전선 전철화 사업은 1930년 건설 이후 한 번도 개량되지 않았던 광주~순천 구간을 전철화하는 사업이다. 시속 60㎞가 250㎞로 빨라지면서 기존 5시간 이상 걸렸던 광주~부산 간 이동시간이 2시간대로 단축된다. 하지만 고속철 중 4.2㎞ 구간이 순천 도심을 가로질러 조성된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됐다. 현재 노선대로 2028년 개통이 되면 전철 운행이 기존 하루 6회에서 하루 40회 이상으로 늘면서 30분에 ...
김진영 기자 jinyoung@jnilbo.com2023.01.03 17:01지난해 12월 화순군 정기인사가 발표됐다. 헌데 어인일인지 군청 공무원들의 관심이 시큰둥했다. 타 자치단체 같으면 온통 관심사가 인사현황일텐데 말이다. 영 관심이 없는 모양새였다. 왜 그럴까 의아했다. 며칠 뒤 이유가 밝혀졌다. 인사발표 나기 2~3주 전부터 이미 승진자에 대한 구체적인 실명이 소문으로 난무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실제로 비슷한 인사내용으로 밝혀졌다. 화순군은 민선8기 들어 2회 정기인사가 진행됐다. 첫번째는 지난 7월 취임 이후 곧바로 첫 인사가 났다. 하지만 이때도 비밀이 다 새어 나간 뒤였다. 이미 5급 승진자...
화순=김선종 기자2023.01.02 16:37지난해 6월 9일 학동 철거공사 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이후 7개월만인 1월 11일 화정동 신축 아파트를 짓던 공사장에서 건물이 무너졌다. 이 참사는 7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두 사고를 지켜봤던 광주시민들의 불안감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한 층 한층 올라가는 콘크리트층, 보기만해도 아찔해지는 크레인 등 그날의 참상이 아직도 잊혀지긴 어렵다. 때문에 최근 일어난 바닥 뒤틀림 사고에서 우리가 느꼈던 공포는 이유없이 나온 게 아니다. 지난 19일 광...
김혜인 기자2022.12.27 18:11불요불급(不要不急).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기자가 어릴 적 한문 공부를 할 때 '제일 불요불급한 것은 공부다'는 농담을 하곤 했었는데, 요즘 들어 흔히 예산을 책정할 때 많이 쓰이는 단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주시의회는 지난 14일 본회의를 열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상정한 7조1102억원 규모의 내년도 광주시 일반·특별회계 세입·세출 예산안을 의결했다. 시의회는 시가 당초 제출한 29개 실·국 전체 예산안(7조2535억원)에서 2089억8200만원(2.9%)을 삭감했다. 내년...
김해나 기자2022.12.19 1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