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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 아래서 천년 이야기 나눠요. 뉴시스 경자년 세밑 불현듯 초꼬지불을 켜고 싶었다. 향수를 달래자는 뜻만은 아니다. 한두 달 기다리면 좋아지겠거니 하다가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되어버린 아쉬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고향에서는 '호롱'을 '초꼬지'라 한다. '초꼬지'의 표준말이 '초꽂이'이고 '호롱'이다. 촛불을 켜는 '꽂이'라는 말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하지만 '꽂이'보다 더 넓은 의미이기 때문에 나는 늘 '초꼬지'로 표기한다. 한자말로 쓰면 등잔(燈盞)이다. 기름을 담아 등불을 켜는 데에 쓰는 그릇이다. '남포등'은 램프(Lamp)의 한자식 표기다. 남포등 비슷한 등을 '호야등'이라 한다. 박주가릿과의 상록 덩굴꽃 '호야'에서 온 말이다. 호롱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기나 유리 또는 양철 따위를 이용해 작은 병 모양으로 만든다. 아래에는 석유를 담을 수 있도록 ...
편집에디터2020.12.30 11:24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인 '동지(冬至)'를 맞아 경남 남핵군 이동면 용문사에서 신도들이 팥죽을 쑤고 있다. 뉴시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삼척동자도 알 만한 황진이의 시다. 그녀의 격조와 웅숭깊음을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겠는가만, 이 촌부가 알 수 있는 것은 연모의 정이 깊을수록 겨울밤이 길다는 점 정도다. 임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뿐이겠는가. 코로나 시국이 깊어질수록 우리들의 겨울밤도 길고 깊어만 간다. 황진이는 왜 섣달을 표제삼지 않고 동짓달에 심사를 투사하였을까?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 동지이고 동짓달이기 때문이다. 1년 태양 황도의 위치를 15도씩 나누어 270도에 이르렀을 때가 동지다. 대칭점에는 하지가 있고 관련된 풍속이 오월 단오에 포섭되어 있다...
편집에디터2020.12.17 11:09송순단 음반 내지 몸으로 체화되고 맘으로 발원된 몸짓과 소리들이 소박한 타악기들에 얹혀 시공을 가른다. 땅의 조건과 하늘의 이치를 목으로 풀어낸 소리를 정가(正歌)라 했지만, 오로지 장구 하나 혹은 징 하나로 풀어내는 이 소리야말로 천지를 왕래하는 아정한 소리임에 틀림없다. 아정(雅正)이란 무엇인가? 기품이 높고 바르다는 뜻이다. 정가에 비해 속가(俗歌) 그 중에서도 천한 계급이 담당하던 씻김굿의 소리를 어찌 기품이 높고 바르다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악(樂)의 격조는 계급의 대물림이나 신분의 귀천으로 상속되는 것이 아니다. 귀천의 이데올로기가 가리고 있던 행간을 들추면 비로소 보인다. 어떤 선율이 흉금을 털어내며 어떤 리듬이 격조를 재구성하는지. 나는 본 지면을 통해 "송가인의 엄마는 왜 무당이 되었나", "송가인 신드롬", "남도 트로트" 등 개인사를 넘어선 노래...
편집에디터2020.12.10 14:55여수 선소 계선주(거북선과 판옥선을 묶은 기둥이라고 하나 벅수로 추정하기도 한다)-이윤선촬영 장생포는 지금의 여수 선소를 포함한 포구 이름이다. '곡(曲)' 혹은 '가(歌)' 등의 '노래'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장생포는 어떤 포구였으며 어떤 노래였을까? "시중 유탁(柳濯)이 전라도에 출진함에 위엄과 은혜가 겸비하여 군사들이 장군을 존경하고 두려워했다. 왜구가 순천부 장생포에 이르자 유탁 장군이 구원하러 감에 왜구들이 바라볼 뿐이었다. 장군이 곧바로 붙잡았다가 놓아주니 군사들이 매우 기뻐하며 이 노래를 지었다." '고려사악지'(1454년)의 기록, 이 노래가 다. '전라도에 출진함'은 전라도 아닌 곳에서의 출진 예컨대 '합포(지금의 마산 합포구)만호'였을 때를 추정하게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김준옥 교수 등이 밝혀두었다. 유탁장군이 '합포만호'였던 충혜왕 때는 왜구 침...
편집에디터2020.12.03 11:25사진01, 초분, 솔가지로 관을 덮는 장면, 최덕원 촬영 수년 전 본 지면을 통해 초분을 다룬 바 있다. 최길성이 보고한 전북 위도의 증골장(蒸骨葬) 사례를 다시 주목한다. 초분에서 뼈를 추려가지고 집으로 와서 시루에 넣고 찌면서 당골이 굿을 한다. 발목 묶인 제물(祭物) 수탉이 울면 영혼이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굿을 중지한다. 비로소 시루에서 뼈를 꺼내어 깨끗이 한다. 최덕원은 시커먼 뼈라도 시루에 넣고 찌면 새하얗게 고운 모습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임산부일 때는 반드시 초분을 한다고 증언한다. 빈(殯)이라는 초분의 장례법 모두가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던 독장 즉, 항아리 등에 넣어 돌로 묻어두는 아이들의 주검처리 형태와 연관된다. 왜 뼈를 찌거나 닦아내어 다시 매장하는 것인가? 초분으로 대표되는 이차장례에는 살보다 뼈를 중시하는 어떤 관념 즉 영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
편집에디터2020.11.26 12:28화순군 벽송리 고인돌 고인돌은 '굄돌'을 놓아 만든 무덤이라는 뜻이다. 굄돌 위에 대형의 판석을 덮었으니 사실은 '덮은돌' 혹은 '누운돌'이라는 이름이 정확할지 모른다. 세운 돌을 '선돌', 한자말로 '입석(立石)'이라 한다. 세운 돌과 대칭관계를 이룬다고 봤을 때 서있는 돌과 대칭되는 개념은 '누운돌' 혹은 '덮은돌'이다.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유럽 등지에서는 돌멘(Dolmen) 등으로 호명한다. 석붕의 붕(棚)이 시렁이나 선반 같은 것을 말하므로 '돌선반'이나 '윗덮개' 즉 '덮은 돌'에 의미를 둔 것으로 보인다. 'Dolmen'의 'men'이 돌이라는 뜻이고 'dol'이 탁석(卓石)이라는 뜻이니 테이블 모양의 돌 즉 이것도 위의 덮은 돌에 의미를 둔 호명 방식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위에 덮은 판석보다 밑에 고인 굄돌에 의미를 부여하는 '고인돌'이라고 이름을 지었을...
편집에디터2020.11.19 12:481963년 광주 신창동유적에서 출토된 옹관- 유물번호: 신창2568 옹관 1점.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광주 신창동 선사유적지 북쪽 1.5Km, 월계동 장고분(기념물 제20호)이 있다.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로 편년되는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바 있다. 늪과 못터, 토기 가마터, 배수 시설, 집터와 독무덤 등이다. 농경생활과 관련된 유적들을 다량 확인할 수 있다. 영산강의 습지와 낮은 구릉지대가 마치 작은 사막처럼 연결되어 있는 충적지대다. 영산강의 범람에 의해 형성되었을 늪과 못터가 10개 층, 크게는 3개 단위로 발견된 바 있다. 이곳에 살았던 이들이 영산강의 토착민들이다. 출토유물들은 빗 괭이, 나무뚜껑, 굽다리 접시, 검은 간토기 등의 목재류와 토기류, 칠기류, 석기류는 물론 탄화미, 탄화맥, 볍씨, 살구씨, 호도씨, 오이씨 등의 씨앗류 등이고 민물 조개류...
편집에디터2020.11.12 10:23메인사진-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순다캘라파 항구에 정박중인 목선들. 2017. 9. 이윤선 전라도 진포 바깥 군산바다에 나타난 진언상, 1406년 8월 11일 태종실록의 기록에 나오는 이름이다. 2017년 이맘때쯤 이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풍경이기도 하다. 그 한 장면을 다시 소환한다. 나주바다, 지금의 신안군 북쪽 언저리를 돌아 왕등도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이른 아침이었다. 내안 방향에서 왜구들의 배가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모두 열다섯 척이었다. 조류 흐름을 타고 있던 터라 왜구의 배들이 순식간에 이물에 이르고 말았다. 대비할 틈도 없었다. 뱃전으로 뛰어오르는 왜구들을 향해 결사항전을 벌였다. 긴 칼과 삼지창이 무용지물이었다. 복부가 터지고 머리가 잘려 물속에 곤두박질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피투성이가 되어 물에 떨어진 자들이 고물 너머로 쏜살같이 밀려났다. 들물 받은 배들이 엉키...
편집에디터2020.11.05 11:22칼 귀츨라프-위키백과 1832년 개신교 선교사 귀츨라프의 극동아시아 여정 "공충감사 홍희근이 장계에서 이르기를, 6월 25일 어느 나라 배인지 이상한 모양의 삼범죽선 1척이 홍주(洪州)의 고대도(古代島) 뒷 바다에 와서 정박하였는데, 영길리국의 배라고 말하기 때문에 지방관인 홍주목사 이민회와 수군 우후 김형수로 하여금 달려가서 문정(問情)하게 하였더니, 말이 통하지 않아 서자(書字)로 문답하였는데, 국명국은 영길리국 또는 대영국(大英國)이라고 부르고(중략), 조선까지는 수로로 7만리인데 법란치, 아사라, 여송을 지나고 지리아 등의 나라를 넘어서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순조실록 32권 7월 21일 기사 내용이다. 개신교의 최초 선교사라는 귀츨라프 일행이 지금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에 속하는 고대도 뒤편 바다에 정박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832년...
편집에디터2020.10.29 12:29무안분청사기 명장전시관-무안군 일제강점기 야마다만키치로우(山田萬吉郞)라는 일본인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여를 무안지역에 살면서 가마터와 분청사기를 연구했다. '미시마하끼메(三島刷毛目)'란 이름의 책이다. 무안문화원에서 무양향토문화총서 9호로 '야마다만키치로우가 바라본 무안분청사기 귀얄문'(2020년)이라는 번역본을 출간했다. '삼도'는 분청(粉淸)을, 쇄모(刷毛)는 귀얄을 말한다. 분청은 조선시대 자기의 하나다. 청자에 백토로 분을 발라 다시 구워낸 양식이다. 회청색 혹은 회황색을 띤다. 귀얄은 풀이나 옻칠할 때 쓰는 솔의 하나로 수수붓이라고도 한다. 주로 돼지털이나 말총을 넓적하게 묶어서 만들기에 그 문양이 투박한 느낌을 준다. 책의 목차들을 보니 무안의 분청, 무안출토 분청 고찰, 무안분청을 통해서 본 조선도자기 등 모두 무안지역의 분청사기를 추적하고 분석한...
편집에디터2020.10.22 13:13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된 신안 반월 당숲, 뉴시스 잃어버린 도깨비, 항간에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도깨비를 몰아낸 이들은 누구인가? 어두컴컴한 밤에만 출몰하던 도깨비들이 밤을 낮처럼 쓰는 전깃불에 밀려 산으로 바다로 도망 다니다 종내는 사라지고 말았다. 탄소문명이 도시 밖으로 몰아낸 것들이 어찌 도깨비뿐이겠는가. 밤이면 밤마다 마을이면 마을마다 도깨비들과 함께 살았던 우리들에게 이 상실의 무게는 얼마큼일까? 밤도 없고 낮도 없으니 만물이 소생하는 아침도 없고 만물이 죽는 저녁도 없다. 시작과 끝이라는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니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모호해지는 것 같다. 여러 나라들 중 자살률 일등한지가 십 수 년이 넘었고 고독사율마저 그 상위를 점하려 한다. 잠들지 못하는 도시는 거대한 공룡처럼 웅크리고 앉아 도대체 도깨비들의 출몰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 이 문명의 공...
편집에디터2020.10.15 15:26즐거운 만가 축제와 진도북놀이, 2013. 이윤선 촬영 남도풍속의 핵심을 보려면 진도를 보라 남도풍속의 지형은 넓고도 깊다.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도 어렵고 풀어서 설명한다고 해서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삼국시대의 향가로부터 오늘날의 가요까지, 영산강이며 섬진강에서 한라 백두까지 남도에서 발원하고 재구성된 문화들이 켜켜이 쌓이고 확산되었다. 이 스펙트럼을 가늠하기란 어린 날 운조리(망둥어) 잡으러 개옹에 나갔다가 잊어버린 검정고무신짝 찾는 일보다 어렵다. 전문적인 연구자라도 그럴진대 일반인들이야 말할 것이 없다. 그래서다. 어딘가 혹은 무엇인가 샘플이 필요하다. 다행이 우리는 다양한 장르가 국가의 강제나 지방정부의 요청에 의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하고 더러는 잔존 유산으로 남아있는 지역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진도다. 전국 유일이라고 말하면 다른 지역에서 오해하겠지만 인구 삼...
편집에디터2020.10.07 11:111963년경 목포예술제, 손에 부채를 들고 노래하는 장면-목포예총 제공 판소리가 유네스코 지정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된 것은 2003년 11월 7일이다. 2001년 종묘 제례 및 종묘 제례악이 지정되고 나서 두 번째 맞이한 경사였다. 이에 앞서 1964년 다섯 번째로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그만큼 판소리가 갖는 국내외적 위상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유네스코 지정 판소리의 영문명은 'Pansori epic chant'이다. 에픽은 장편서사시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고 챈트는 구송(口誦)이라는 점을 강조한 번역이다. 춘향전 심청전 등 예로부터 전해져 온 장편 이야기를 노래로 꾸민 장르임을 분명하게 해두었다. 또 챈트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비롯해 불교의 독경이나 범패 등 성가 혹은 송가를 말하는 것이어서 반복적인 곡조로 부르는 노래 양식임을 알 수 있다. '판...
편집에디터2020.09.24 15:04대나무를 두드려서 만든 죽필(문상호) "아버지는 어린 내게 글쓰기를 시키셨다. 선거 때마다 나누어주던 한 장짜리 달력의 뒷면이며 어쩌다 얻은 빛바랜 종이들이 내 공책의 전부였다. 아버지, 무슨 글자를 쓸까요? 무슨 글이든 써라. 글자라고 생긴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 일자무식 아버지는 내가 쓰는 것이 무슨 글자인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셨다. 단지 여백을 채우기를 바라셨다. 희거나 빛바랜 폐지들이 까맣게 채워지는 것을 흡족해하셨다. 마을 구장께 쌀섬 져다주고 수학했던 천자문, 일찍 깨친 한글들, 아무런 의미 없는 그림들을 마구 그렸던 것 같다. 망뫼산 꼭대기 성근 별 같던 글자들은 그렇게 우리집 마당에 내려앉았다." 내가 2020년 목포문학상(남도작가상) 소설부문을 수상하면서 남긴 소감 중 일부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이 소설이든 시이든 혹은 논문이든 내게는 이 땅 민중...
편집에디터2020.09.17 13:0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까마귀 모른 식게 우리 집 제사상이나 차례상의 구성은 늘 본상과 정체모를 상, 그리고 성주상 등이었다. 물상들에 대한 지각이 생긴 후였을 것이다. 어머니께 정체모를 상에 대해 여쭸다. 작은아버지 말씀을 하셨다. 혼인하지 못한 채 돌아가신 내력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늘그막에 나를 낳으셨으니 1900년생인 작은아버지를 내가 알 리 없었다. 아버지는 동생을 잃고 수년간을 자다가 울고 자다가 울고를 반복하셨다 했다. 친형제라지만 무엇이 그토록 아버지를 애달프게 하였을까? 작은아버지는 도회지에 나갔다가 돌아오자마자 격리되셨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병막이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어떤 전염병이었던 모양이다. 거적과 마람(...
편집에디터2020.09.10 13:26